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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려 쓰는 가족

가정위탁아동, 그 삶의 이야기 ep 01.










 매년 새 학기가 너무 싫었다. 도망가고 싶었다. 등굣길 마음은 어두운 색들만 골라 덕지덕지 칠한 것 같았다.

회색 종이에 나눠주는 <학생 실태조사서>

난 이름 외에 마땅히 적을만한 게 없었다.


비워낼 수밖에 없는 부모님 칸과 그로 인해 매년 받는 상담.



 "나는 왜 다른 아이들처럼 살 수 없어요?"

내 설움 어린 질문에 정확하게 답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대답할 책임이 있는 어른도 없었다.

억울함과 서러움이 섞인 나의 눈에는 늘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 울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나 몰래 간경화를 12년 동안 앓아오셨던 아빠는 끝내 간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다. 투병생활 끝에 의식을 잃은 날, 내게 아픈 걸 들켰다. 아빠는 그런 분이셨다. 하나뿐인 딸에게도 많은 것을 알려주지 않는 사람.


 병실 안으로 쉽게 걸어 들어갈 수가 없었다.

퉁퉁 부운 다리, 복수가 차 남산만 하게 부푼 배와 약물로 노랗게 물들어가는 아빠의 눈.

나는 막힌 숨을 몰아쉬며 밖으로 나왔다. 늘 기둥 같고 대쪽 같은 아빠가 반쯤 송장처럼 누워있는 모습이 이상하고 괴로웠다.



-


"아빠가 집에 가고 싶다고 하셨어."


 의식이 없는 아빠가 뱉은 말에 의사 선생님은 굳은 표정으로 허락하셨다고 했다.

하지만 침대 채 아빠를 옮기는 일은 쉽지 않았다. 우리 집 아파트 엘리베이터는 침대를 태우기에 너무 작았다. 할 수없이 침대를 90도에 가깝게 접어 태우고 올라갔다.


"아파요.."

아빠는 배에 가득 차 있는 복수 때문에 괴로워 보였다.

늘 어떤 문제도 티 없이 혼자 짊어졌던 나의 영웅.

나의 아빠.

내 얼굴에는 울음이 들어찼다.

 

 그 날이 마지막 날이었음을 나만 빼고 모두가 알았는지 방 안에는 지인들과 목사님, 의사 선생님이 둘러앉아 계셨다.

나도 그 곁에 앉아 아빠가 건강할 때 부르던 찬양을 함께 불렀다.

노랫소리가 끝나자 거실에는 깨질듯한 정적이 흘렀다.


순간 공포감이 나를 휘감았다. 나는 재빨리 아빠의 감은 눈을 손으로 열어가며 "아빠! 아빠!!"하고 불렀다.

사방에서 동시에 울음이 터져 나왔다.

죽음을 알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 열한 살

나에게 책임감이 있는 유일한 사람


아빠를 잃은 날이었다.




  장례식을 마치고, 참석했던 친척들은 작은 회의를 열었다.

 

 주제는 <부조금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열거하며, 자신이 그 돈을 받아야 하는 이유를 주장했다. 아빠가 남기고 간 마지막 돈을 일당 나눠 받는 것이 당연해 보였다. 그들은 찢어지게 가난한 삶을 방패 삼아 나에게 남겨질 아빠의 마지막 유산을 깔끔하게 나눠 가지고 떠났다.


어린 난 그 상황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아빠의 부조금을 일당으로 받아간 친척 중 한 곳으로  가정위탁을 가게 되었다. 그곳은 이미 많은 자녀들이 있었기에 내게 떨어질 관심은 너무나도 적었고, 내게 나올 보조금을 정당하게 쓸 만큼 경제적 상황이 건강하지도 못했다. 그곳은 각자 살아남아야 하는 자연과도 같았다.


 게다가 나는 그곳에서 잠깐 맡겨진 아이였다. 기한이 정해져 있는 가족들에게 얼마큼 마음을 열어야 할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곧 그 걱정조차 내게는 어린 기대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들은 애초에 내게 곁을 내어줄 생각이 없었다.


가정위탁 [복지 ] 친부모가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상황에서, 보호가 필요한 영유아 및 아동을 다른 가정에서 일정 기간 보호해 주는 일.

 







-


 "이 옷 좀 그만 입고 다녀!"

 나는 사랑받지 못한 티가 났다. 도움과 손길이 필요한 나이일수록 티를 숨기기가 어려웠다.

매번 돌려 입는 옷 때문에 친구들 사이에서 무시를 당했다. 어쩌다 내 가정 사정을 알게 된 친구들은 마치 불행이 옮는 것처럼 나를 멀리 두고 싶어 했다.

 

어린 나는 모든 원인이 나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나 자신이 너무 못나보였다.




 사랑받고 싶었던 나의 선택

 

 나는 꽤 용감했다. 돈이 없어서 무시받는다면 직접 벌면 된다고 생각했다. 전화로 알바 자리가 있는지 물어보면 어린 나에게 아무도 일을 맡기지 않을 것 같아서 직접 동네에 있는 모든 가게를 돌며 일을 달라고 부탁했다. 예상대로 대부분 주인들은 당황스러워하셨다. 잠시 붙들고 왜 알바를 구하냐며 다그치기도 했다.

가게 문을 여는 것도 눈치가 보일 즈음에 한 치킨집에서 내게 전단지를 돌려보겠냐며 일을 시켜주었다.

나의 첫 경제활동이었다.

 

 가방 안에 무겁게 전단지를 넣고서, 경비아저씨를 피해 몰래 아파트 집집마다 붙이며 계단을 타고 내려왔다.

보통은 초등학생 아이가 전단지를 붙일 거라고는 생각을 안 하기 때문에 의심 없이 붙일 수 있었지만 가끔 운 나쁘게 걸릴 때면 무섭게 혼나고 쫓겨났다.


장당 35원짜리 전단지 알바. 뭐든 배울 수 있는 나이에 나는 사회를 먼저 배웠다.











가정에서 배우지 못한 것


 

태어나서 겪는 가장 작은 사회는 가정이다. 아이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사회에 나갈 수 있도록 필요한 교육을 받는다. 부모님에게서 감정을 조절하는 법, 사과하는 법, 나를 지키는 법을 배우면서 사회의 구성원이 될 준비를 한다. 부모님은 자녀와 마찰이 생기고 싸우더라도 그들이 배워야 할 것을 알려준다.


 내게는 책임지고 가르쳐 줄 어른이 없었다. 이건 사방이 으로 세워진 곳을 눈을 감고 걸어가는 것과 같았다. 남들은 잘만 걸어가는 길에서 나 혼자 매번 벽을 만났다. 어떻게 넘어야 할지 몰라 헤매고 돌다가 겨우 넘어가면 이미 또래들은 멀리서 웃으며 뛰어가고 있었다. 어디서든 나는 가정교육을 받지 못한 아이, 배운 것이 없는 아이로 여겨지며 특별 취급을 받았다. 아무도 내 인생에 기대를 걸어주지 않았고, 아무도 내 삶을 칭찬해주지 않았다.




학교에서 또래들과 어울리는 것은 내게 전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좋아하는 연예인과 아이돌이 어느 프로에 나왔었는지 조잘대는 아이들과 유행하는 드라마가 바뀔 때마다 따라서 바뀌는 친구들의 배우 취향.

그 아이들에게서 자연스럽게 묻어 나오는 소녀스러움이 너무 미웠다.

낡아가는 칫솔과 바꿀 때가 지난 속옷 따위를 걱정하는 내 삶이 너무 초라해 보였다. 내게는 그들의 고민이 휴지만큼 가볍게 느껴져서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나와 환경이 다른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는 일은 내게 상처 난 마음을 직면하는 일과 같았다.

누구 때문에 내가 가난하고 외로운지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어디를 향해 원망해야 할지 자신이 없었다. 다 내 탓일까 봐.







이미지 출처 : 네이버이미지


 오디오로 사연듣기 : 팟캐스트 '빌려쓰는가족'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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