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 인생
인생 뭐 있어? 재밌게 살면 되지.
인생 뭐 있어? 지금 만족하고 감사하면 되지.
20대. 저의 20대는 가치를 따라 산 시간이었습니다. 가치가 있었고 의미가 있었습니다. 하루하루가 보람찼습니다. 그럼에도 삶에 의미가 충만해서인지 그 안에는 늘 작은 재미와 작은 기쁨들이 있었습니다. 어려운 일, 두려운 일들도 기쁘게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객관적인 상황은 엄혹하거나 괴로워도 제가 괴로운 적은 별로 없었습니다. 누군가는 괜찮았냐고 물을 만한 일들도 전혀 힘들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재미를 따라 산 건가, 아닌가 잘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제가 좋아서 한 일이라서' 라는 표현이 더 저에게 가까운 듯합니다. '고뇌'하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ㅎㅎㅎ 생각없이 행동하는 스타일에 가까웠습니다. 별명 단.무.지(단순 무식 지X). 미쳐 있었습니다. 의미가 있으니 재미도 따라왔습니다.
그 시기의 철학과 실천을 일상에서 따라살 수 없는 시점이 되자 공허함이 찾아왔습니다. 평범한(?) 인생으로 돌아왔을 땐 뭔가 쫓을 것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그 공허함은 곧 천성을 따라 '재미'로 채워졌습니다. 여러 가지 일을 했는데 일마다 다 나름의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재미가 없어지면 오래 지속하지 못했습니다. 일이 재미없어지면 재미를 찾기 위해 다른 곳으로 옮겼습니다. 일이 재미없어지면 다른 일로 갈아탔습니다.
일 외의 다른 재미도 쫓았습니다. 어차피 어릴 때부터 덕질 인생이었습니다. 어릴 땐 야구에 미쳐 있었습니다. 야구 선수를 쫓아 야구장을 쫓아다니고 집에도 찾아갔습니다. ㅎㅎㅎ (하, 정말 미쳤네요 ㅎㅎㅎ) 그의 등판 번호부터 기록까지 달달 외웠습니다. 저절로 외워지더라고요.
30대. 아이 낳기 직전부터는 한 배우를 쫓았습니다. 드라마는 무조건 실시간 최초 방영을 봐야 합니다. 메이킹 영상도 모두 찾아 봅니다. 덕질 계정을 따로 파서 SNS를 하고, 각종 온라인 팬카페 가입은 물론, 디씨에도 빠졌습니다. 그의 생일이면 '오늘은 죽어도 네가 애기 봐야 돼!' 외치고 남편에게 아이 맡겨 놓고 팬미팅에 갔습니다. 애엄마 아닌 척 짧은 치마 입고 쫓아다녔습니다. 돈도 많이 썼습니다. ㅎㅎㅎ 팬미팅과 굿즈, 드라마 CD와 블루레이는 기본이고 인터뷰가 나오는 잡지도 몽땅 샀습니다. 어릴 때 하던 덕질과는 스케일(=돈 쓰는 스케일 ㅎㅎ)이 달라집니다. 그가 광고하는 물건? 당연히 여러 개 삽니다. ㅎㅎㅎ 광고하는 음료가 있다면 매일 출근길에 기쁜 마음으로 사 먹습니다. 무조건 먹습니다. 취향 따윈 사치입니다, 로 시작했지만 결국 길들여져 맛있게 먹게 됩니다. 여러 개 사서 동료들에게도 먹으라고 나눠 줍니다.
지금의 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재미 있어 보여서 시작했습니다. 해 보니 진짜 재밌더라고요. 역마살? 안 좋은 건가요? 저는 제 역마살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밖으로 나다니는 거 좋아하는데 완전 행운입니다. 새로운 공간을 찾아다니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즐거웠고 아이 키우며 너무 좋은 경험이었던 이미 5년쯤 하고 있던 공동육아를 전도(?)하러 다니는 듯한 일이 재미있었습니다.
인생 뭐 있어? 재밌게 살면 되지.
인생 뭐 있어? 지금 만족하고 감사하면 되지.
늘 재미를 따라 살아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의미를 쫓는 마음이 저에게 숨어 있었습니다.
아이 낳고 복직하여 무난(?)하게 직장 생활을 하던 중, 40대가 되면서 현타가 왔습니다. 이 나이가 되면 아무 데도 흔들리지 않고 안정된 나이가 될 줄 알았고 일에서도 소위 '프로'나 '전문가'가 되어 있을 줄 알았거든요. 근데 전혀 아니었습니다. 자괴감에 어쩔 줄 몰라 하며 휴직하고 다른 공부를 하겠노라 시간을 보낸 적도 있습니다. 한 가지 일을 오래 하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러웠고 40대가 되어도 이룬 것이 없다는 것이 한탄스러웠습니다. 재미가 없어지면 그런 현상이 오더라고요.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는 거지?'
최근에 글을 쓰고 책을 쓰면서 또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아이를 낳은 후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겠단 마음이 늘 마음 한 켠에 있었다는 것, 그것이 작지 않은 마음이었다는 것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로서 해야 할 단 세 가지' 시를 냉장고에 붙인 거더라고요. 그래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버리지 않고 해마다 한 번씩 들여다 본 거더라고요. 그래서 '당신은 당신 아이의 첫 번째 선생님입니다' 같은 책을 읽었더라고요. 그래서 일터에서 페다(고지) 선생님들이 열었던 니체 세미나에 1년 동안 주말 아침마다 참여한 거더라고요.
일터에서 어느 날 강의를 듣는데 그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저에게도 딱 맞는 말이었습니다. "공동육아에서 제일 많이 말하는 단어, 추구하는 가치가 재미와 의미, 두 가지일 거예요."
20년, 30년 직장 생활하신 분들이 주변에 있는데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저는 지루한 일을 못 참는 것 같습니다. 계속 새로움이 있어야 즐거움도 있고 보람도 있습니다.
지금의 직장에서 오래 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만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너무 좋은 분들이었습니다. 배울 것이 많고 롤모델로 삼을 만한 분들이 많아서 이 물(?)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일이 지루해질 만하면 성장을 위해 공부를 비롯해 새로운 것들을 하나씩 배울 수 있었습니다. 권해 주신 분들이 감사할 뿐입니다. 덕분에 지루해질 만하면 새로운 공부를 늘 할 수 있었습니다.
입사하자마자 평화교육 진행자 활동을 함께 시작했습니다. 3년 차쯤 되었을 때는 석사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학부 때 전공과는 전혀 상관 없이 오랫동안 마음에 품었던 공부를 새로 시작하니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학기 중 매주 하루 휴가를 내야 했는데 그렇게 쓰는 휴가가 하나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또 지루해지려고 할 때쯤에 이번엔 박사 과정에 돌입했습니다. 이번엔 일과 관련해 무언가를 정리해 내고 싶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일의 한 매듭을 짓는 정리와 한 단계를 올라서는 성장을 이루고 싶었습니다. 일과 공부는 서로 시너지가 되리라 여겼습니다. 오래 같은 일을 맡고 있을 때 오게 될 수 있는 좁은 시야를 경계하고 넓은 시야를 가지고 일을 할 수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일을 사랑하지만 함몰되어 좁은 우물에 갇히고 싶진 않아서 일과 연구를 병행하면 균형을 가질 수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오래 일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싶었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오랫동안, 5-7년을 추진해 온 일이 있었습니다.
일이 지지부진한 사이, 터전을 더 이상 운영할 수 없어 문을 닫고 소중한 사람들이 떠나는 상황을 지켜보아야 했고, 마음 아픈 일이었습니다. 이 위기 상황을 어떻게든 함께 해결해 보고 싶었습니다. 3년 전 결정적 계기가 마련되었고 귀인들도 나타났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그게 되겠어?' 하는 일을 '될 때까지 하겠다'는 마음으로 추진했습니다. 결국 올해 3월 관련 법안이 만들어졌습니다.
혼자 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또 일을 주로 맡아 하는 사람은 늘 있기 마련입니다. 많은 터전들의 미래가 달린 일을 도맡고 있다는 것, 중앙부처나 도움을 청해야 할 다른 단위들과 나를 통해 관계 맺고 있다는 것이 결코 가볍지는 않습니다. 지금까지 해 오던 방식을 탈피해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일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최근 며칠은 정말 스펙터클하게 가능과 불가능의 영역을 오갔습니다.
이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어느 순간, 재미를 따라 일하던 제가 의미를 따라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아니, 재미와 의미는 분리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새 제 안에서 하나로 통합되었습니다. 어려움이 없어 재미와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함께 하는 사람들과 어려움을 하나하나 헤쳐 나가는 것에 의미와 재미가 놓여 있었습니다. 이 일을 통해 더 밝은 미래를 그리게 됩니다. 이 일이 가져 올 더 많은 아이와 양육자들의 행복을 생각하면 지금부터 행복합니다. 앞으로는 비용이 없어 아이의 행복을 선택하지 못하는 일은 사라지리라 생각하니 벌써 뜻깊습니다.
즐거움을 추구하지 말라. 대신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서 즐거움을 찾으라. (주1)
하는 일 속에서 찾는 즐거움은, 땅속 깊이 파내려갈 때 솟아나는 샘물 같은 것이었습니다.
즐거움은 저 멀리 달려가서 잡아야 할 나비가 아니라, 이미 제 어깨 위에 내려앉은 햇살이었습니다.
즐거움은 목적지에서 기다리는 보물이 아니라,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밑에서 피어나는 작은 꽃이었습니다.
주1> 레프 톨스토이,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2007, 위즈덤하우스.
표지 이미지> Image by autumnsgoddess0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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