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과 인정 사이
"누가 알아준다고 이렇게까지 해요?"
"내가 알잖아요."
작년 12월 초, 광역단체와 함께 진행한 사업을 마무리하는 시기였습니다.
3년을 경기도 곳곳에서 활동한 이들의 수고를 인정하고 응원과 격려를 보내고 싶어 '졸업식' 행사를 성과 발표회 시간표에 끼워 넣었습니다. 그 분들께 드릴 졸업장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상장 케이스에 넣으면 대부분 케이스를 버리고 가져간다는 것을 알게 되어 상장 케이스는 제외했습니다. 가볍고 투명한 L자 파일에 넣었더니 볼품이 없었습니다. 더 보기 좋게 만들어 드리고 싶었습니다. 당장 액자를 구입해 와 하나하나 끼우기 시작했습니다. 액자 뒷면에는 4개의 고리가 있었고 이 고리를 모두 뒤집어야 액자 뒷면이 열렸습니다. 졸업장을 끼운 후 4개의 고리를 다시 오무려야 내용물이 고정되었습니다. 30개쯤 되는 졸업장을 끼우려니 시간이 꽤 걸릴 듯 싶었습니다. 쌓여 있는 액자들을 보고서 동료들이 모여 들어 저를 도와 주고 있었는데, 한 동료가 말했습니다.
"누가 알아준다고 이렇게까지 해요?"
"내가 알잖아요."
반작용처럼 "내가 알잖아요."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우연히 말을 뱉었는데 온 종일 스스로 뱉은 말이 생각났습니다. 내가 맽은 말이 나에게 힘이 되었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저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된다는 것을 느낀 날이었습니다. 저를 도와 주면서 저에게 질문했던 동료에게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길게는 3-4년을 꼬박 같은 돌봄공동체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많은 돌봄공동체 구성원들은 주위에서 자신의 수고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한탄했습니다. 자원봉사 정도의 보상이 돌아오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보상에 연연하지 않고 일하고 있는데, 그 알량한 돈 때문에 일하는 사람으로 보는 시선을 괴로워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지치면 오래 할 수 없다고 아이들 저녁 식사는 하지 마시라 해도 꼬박 아이들 저녁 식사까지 챙기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정을 주면서 본인이 더 행복하다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스스로 만들어가는 네트워크 속에서 점점 커져가는 공동체를 가꾸어가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경제적 보상은 미미한 일이지만, 마지막 성과 발표회를 앞두고 저라도 3년을 꼬박 수고한 이들의 노고를 알아주고 싶었습니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고 주위에서 알아주지 않아도, 이들이 자처해 맡고 있는 '사회적 돌봄'은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이라고 말해 주고 싶었습니다.
정성들여 졸업식을 준비했습니다.
모든 공동체를 사진과 함께 하나하나 소개했고 그 분들 스스로는 잘 모르는 훌륭한 점들을 제가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스스로 보람있던 순간들을 이야기하는 순간에는 모두가 공감의 박수를 쳤고 같은 일을 하는 분들끼리 만나 연대감을 느끼는 자리였습니다. 졸업장을 줄 교장 선생님도 어차피 없었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릴레이로 졸업장을 수여하고 서로서로 따뜻하게 손 잡아 주고 안아주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뿌듯하면 되는 거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끼리 서로 그간의 수고를 알아 주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행사는 따뜻하게 뿌듯하게 잘 끝났습니다.
그 분들에게는 그렇게, 스스로 뿌듯하면 된다고, 우리가 서로 알아주면 된다고 해 놓고, 정작 저는 어땠는지 모르겠습니다.
처음에는 아무 상관 없었습니다. 일이 너무 재미있었고 저에게 의미 있었습니다. 사람이 모여 공동체로 나아가는 일, 없던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 일, 그 공동체들이 지역에서 조금씩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것을 보는 일, 사람의 성장을 보는 일... 너무나 역동적인 일이었습니다. 서울시 전역을 돌아다녔고 그 다음에는 경기도 전역을 돌아다녔습니다.
경기도를 돌아다니게 되었을 때는 서울시를 돌아다닐 때는 보지 못했던 세상을 만났습니다. 한부모 가정, 조손 가정, 다문화 가정, 이주민 가정이 그렇게 많은지 미처 몰랐습니다. 우리 회원 단체 안에는 이런 가정들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해, 다양한 배경의 아이들까지 포용하기 위해 어떻게 공동육아를 넓혀 나가야 할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초등기 아이들을 돌보는 돌봄공동체가 많았습니다.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시작한 일이 분명한데 아이들이 돌봄의 대상이 되어 버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저 '컨설팅'을 통해 전수되기는 어려웠습니다. 우리에게 이 일을 맡긴 서울시 또는 경기도의 고민은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삶을 되찾아줄 수 있을까 잘 보이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자꾸 학습 안에, 프로그램이라는 틀 안에 갇히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도 자기 삶의 주인이라는 공동육아의 정신을 어떻게 확장해 나가야 할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고민을 함께 해 나가고 우리 단체로서는 확장을 꾀하는 일이 되기를 바랐지만 단체의 회원이 되지 않는다면 무슨 이익을 얻으려고 그 일을 하는 거냐는 한 마디에 좌절하기도 했고 이 소중한 일의 가치를 몰라준다고 생각하며 인정받기를 원했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이 일을 10년쯤 했을 때에야 비로소, 제 스스로 제 일의 가치를 찾아줄 수 있었습니다. 그 분들을 위해 만든 행사는 어쩌면 저에게 가장 큰 힘이 되었습니다. 주위에서, 세상에서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주면 된다고, 무심코 내뱉은 한 마디는 저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공부를 더 하면 답을 찾아갈 수 있을까 싶어 박사과정을 마쳤는데 여전히 구체적인 답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ㅎㅎㅎ 논문도 못 쓰고 이러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제가 맡고 있는 일들을 너무나 아끼고 사랑합니다.
제가 제 일의 가치를 알아 줍니다. 일로 만나는 이들에게 진심을 다합니다. 많은 이들이 알아 준다면 고맙지만 알아주지 않아도 제가 진심을 다했으니 괜찮습니다. 소소한 관심과 작은 다정함이 힘이 되기를 바라며 일합니다.
하지만 나는 속죄하지 않고 단지 씩씩하게 살아가고 싶다. 내 인생은 자신을 위한 것이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화려하면서 불안정하기보다는 비록 낮은 신분이더라도 진실하고 평등하게 살아가는 것을 훨씬 더 선호한다.
내 재주는 많지 않고 또 평범한 것에 불과하더라도, 나는 실제로 여기 이렇게 있다. 그렇기에 다른 이차적인 증거로 내 확신이나 동료들의 확신은 필요치 않다.
나는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해야지, 남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해서는 안 된다. 이 원칙은 실제 생활이나 정신생활에서 지키기가 아주 어려운 것이지만, 동시에 위대함과 평범함을 구분하는 결정적 지표가 된다. (주1)
주1> 랄프 왈도 에머슨, 《자기신뢰》, 2021, 현대지성.
표지 이미지> Image by svklimkin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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