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은 후 자연스레 따라오는 질문은 "둘째는요?"였습니다. 혹시 둘째 아이 낳을 생각은 있는지 순수한 궁금함부터, 터울 생각해서 지금부터 준비하라는 실용 조언까지 다양했습니다. 둘째를 염두에 두면 아무래도 아기용품도 오래 쓸 걸 장만하게 되고, 방 개수나 집 크기도 생각해 장기적 계획을 세우기 마련입니다. 주로 한국인과 교류하다 보니 서로 그런 걸 묻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리 늦은 나이도 아니었건만, 만 37세에 임신하니 병원에서는 공식적으로 노산으로 분류했습니다. 38세에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은 후 회복은 느렸고, 본가와 시가 모두 멀리 있어 남편과 나 성인 두 명으로는 아이 하나 보살피기 벅찬 상황이었습니다. 나중에라도 어른 두 명이 아이 두 명을 돌보는 일은 상상하기 어려웠습니다. "둘째는요?" 질문은 아이가 초등학생이 돼서도 받아봤습니다. 그런 질문에서 멀어진 이제, 홀가분한 마음으로 왜 나란 사람은 아이 딱 한 명이 적당한지 한번 생각해 봤습니다.
개인주의 성향
집단주의, 공동체주의에 반하는 뭔가 거창한 '개인주의'가 아니라, 그냥 혼자서도 잘 놀고 집단에서 튀는 것에 무심하고, 유행이나 또래 압력에서 자유로운 편이라 그냥 '나는 개인주의자'라고 표현해 보겠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한국 갈 때마다 모두가 권하는 그 흔한 시술 하나 정도는 받았겠죠. 그리고 90년대 말, 2000년대 초 회식 문화에서 술도 고기도 입에 안 대며 꿋꿋이 앉아 있기 힘들었겠죠. 그렇습니다. 나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고 자기애도 무척 진합니다.
원래 모성 신화를 믿지도 않았고, 출산과 육아가 힘들 거라는 건 진즉 알았습니다. 인생에서 결혼이나 출산이 필수가 아닌 X세대 끝물에 속하기도 합니다. 반면에 남편은 아이 둘, 개 한 마리, 이렇게 총 다섯 구성원이 마당 있는 집에서 살기를 꿈꾸던 사람입니다. 물론, 지금은 생활에 치여서든 나이 들어서든 남편은 본인이 그렇게 생각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듯합니다.
애착 육아법으로 아이를 키우면 아무래도 체력이 고갈됩니다. 1년 '희생'하고 아이를 집에서 키우기로 했지만, 그 1년은 처음 겪는 혼란으로 가득했습니다. 남편이 함께하는 것만으론 부족했고, 제3의 어른이 있어야 육아와 집안일이 돌아간다고 느꼈습니다. 내 24시간을 오롯이 내가 결정해서 쓰던 과거는 사라졌고, 외출은커녕 혼자 책 볼 마음의 여유도 없이 그렇게 1년을 보냈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마음이 애초 DNA에 없었기에, 돌 갓 지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며 내 삶에 활력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하루 6시간이라는 소박한 자유가 달콤했고, 값지게 그 시간을 쓴 후 어린이집으로 딸을 찾으러 가는 발걸음은 가벼웠습니다. 아침에 데려다주고 몇 시간 지났을 뿐인데도 어린이집에서 놀고 있는 딸 얼굴을 보는 순간이 그렇게 행복했더랬습니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던 5년 정도의 세월이 지금도 놀랍습니다. 누구를 만나러 갈 때 그렇게 설레고, 만나는 순간 벅차오르던 그 경험이 내 인생에 다시 찾아올 것 같지 않습니다. 내 육아 황금기는 아이가 1살부터 다니던 어린이집 시기입니다. 아무리 분신 같은 자식이지만, 나는 공백이 있어야 그 관계가 더 소중한 사람 같습니다. 육아에 몰방했던 첫 1년이 없었더라면 어린이집 덕분에 느낀 해방감과 오후에 아이를 만나는 재회의 짜릿함이 덜했겠지요. 나는 딱 그 정도 용량이 되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1인분의 책임과 1인분의 '희생'을 감당하며 자신도 꼭 돌봐야 했던 그런 사람 말입니다.
둘이 놀아서 나중에 더 편하다?
둘째를 가지면 좋은 이유는 형제자매 있는 편이 나중에 부모가 편하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런 면이 있습니다. 바다나 호수에 놀러 가면 부모가 아이와 놀아줘야 하는 시기가 있습니다. 우리 옆에 돗자리를 편 가정은 형제자매끼리 모래놀이하고 부모는 세상 편하게 누워 책 보는 그런 부러운 장면과 대조적으로 말입니다. 아이가 둘이면 심부름 보낼 때도, 학교에서 하교할 때도 큰 아이가 있으니 안심된다고 합니다. 작은 아이는 돌봄을 받고, 큰 아이는 책임감과 배려를 배운다고 합니다. 또 다른 이유는 이 험한 세상에서 부모님 돌아가시면 그래도 형제자매 의지하며 사는 게 큰 위안이라고 합니다. 나도 언니에게 실용적 도움과 심리적 위안을 받았으니 그럴 것도 같습니다. 미안하게도 외동딸에게 형제자매와 얽힌 다양한 감정과 경험을 빼앗은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먼 미래보다는 당장이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아가 돌보기를 1년 더 한다는 게 엄두 나지 않았습니다. 한 차례 했는데, 그걸 반복한다고? 이제 좀 편해졌는데? 딸은 다행히 그림 그리기가 취미라 3살 무렵부터 카페에서 내가 친구와 수다 떨면 옆에서 얌전히 색칠하고 놀았습니다. 이때 둘째에게 수유해야 하거나, 몸 쓰기 좋아하는 형제자매가 있었다면 어려웠겠죠. 지금도 일 없는 토요일이면 우리가 좋아하는 공간인 슈테글리츠 공공 도서관에서 나는 노트북을 펴고, 아이는 만화책을 골라와 소파에 눕습니다. 도서관 야외 테라스에는 간식 먹을 공간도 여유롭고 전체적으로 아이들 친화적이라 편합니다. 보통 아이가 둘이면 서로 성격, 성향이 다르던데, 여기서 한 아이가 다른 데 나가자고 조른다면 힘들었겠죠. 미래보다 현재 안락함을 택한 나는 아직도 잘한 일이라고 믿습니다. 내 깜냥에 맞게 외동딸 딱 하나로 족하다고 일치감찌 결정한 것 말입니다.
자유시간
한국은 아이 학원 일정을 조율해야 한다면, 여기는 아이 생일 파티, 파자마 파티 픽업 등을 조율해야 합니다. 아이가 하나면 그리 어렵지 않지만, 둘이라면 조율할 일정, 병원 약속, 학교 준비물이 두 배가 됩니다. 나 같은 사람은 허덕이기 십상입니다. 아이가 파자마 파티나 수학여행을 가면 나는 단골 온천에 가기도 하고, 그저 퍼질러져서 밀린 드라마 시리즈를 몰아보기도 합니다. 이렇게 선물처럼 주어지는 여유 덕분에 일상을 잘 버티는 것 같습니다. 품에 있는 단 한 명의 아이를 아껴주는 게 내 그릇에 딱 맞는 것 같습니다.
(커버 이미지: unsplas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