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네기의 인간 관계론을 읽었다.
체험과 경륜이 깊어질수록 입장은 더 확고해지고
책을 읽을 때마다 지식의 영역이 아닌 것은
여러 각도의 시각을 갖게 된다.
세계 유수의 독자들로부터 열광을 받았다는 책 내용에
고소를 금치 못하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성현들의 삶과 사상에 의아심과 거부감도 갖게 되면서 나는 자신에게 더 명확한 주문을 하게 되는 것이다.
카네기는 일반적 인간관계의 원활함을 위한
정석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난 그 방식에 무조건 동의할 수가 없다.
카네기는 상대의 마음을 다스리는 방식과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을 최우선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책에 쓰여 있는 것보다 더 유려하게
사람을 관리할 자신이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 건
나의 성정을 다스리지 못해서도 아니고
능력이 부족해서도 아니다.
카네기 방식대로라면 세상의 어느 누구와도
대립과 갈등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은 없고 철저하게 이기적 욕구의 충족만 남게 될 것이다.
충족시켜 주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좋은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을 이분법으로 단죄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안도할 수 있는 가치를 지향하려면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할 줄 알아야 한다.
가끔 아주 유용하고 정곡을 찌르는 책도 있지만
나는 대부분의 활용서나 실생활 지침서를 싫어한다.
내면의 수양 없이 살아가는 요령만 체득하게 하는 것,
인간을 참으로 하찮게 만드는 요소이다.
이 책은 원활한 인간 경영을 기치로 내걸고 있다.
자기감정보다는 철저하게 상대의 입장에서 배려하고 생각하라는 것이 핵심이다. 즉 상대를 존중하라!
당연히 모두가 그와 같은 마음을 가졌을 때
그 방식은 최상이고 가장 이상적이다.
나 역시 지향하는 것이다.
그러나 마냥 고개를 끄덕일 수만은 없는 것은
진정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나와
목적의식과 출발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인간 관계론에 의하면 그것은 후차적 문제인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함으로써 여타 가치들도 확보될 수 있다고 말하고는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현실을 구성하고 있는 인간들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함으로써 진심으로 승복하고 따르게 된다지만 수정되지 않은 이기심을 여전히 품고 있는 이들이
과연 마지막까지 내 사람으로 남게 될까?
카네기 관계론에 의한다면
대부분 아닌 인간들과의 원활한 관계를 위해 더 나은 인격을 가진 사람들의 감정은 철저하게 배제되고
그건 자기 성찰에 이른 사람의 끝없는 희생과 노력만을 잔인하게 요구하는 것이다.
감정 희생의 대가가 자기에게 이익으로 돌아오니
충분한 것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인간관계를 상호 이익 관계로 보는 것.
진정성보다는 궁극적으로는
본인에 대한 이익으로 가치를 귀결하는 것.
바로 그 점에서 나는 카네기의 지론을 거부하는 것이다.
내가 손해를 보게 되더라도 상대를 위해서라도
아닌 건 아니라고 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상대를 존중하고 자신에게 당당하고
세상을 옳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게 하지 않을까?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어떤 의미든 상생이 되고
부드러운 인간관계의 형성이 가능하지 않느냐고
순기능이 더 많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난 그런 관계는 거부하고 싶다.
자기의 이기를 최우선으로 하는 인간들과
인연 맺으며 살아가고 싶지 않고
그건 상대에 대한 기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상대의 나에 대한 기만을 의미하기도 한다.
존재에 대한 깊은 신뢰와 긍정이 없는 한
그런 관계는 다 공허하고 결정적인 순간
한순간에 다 허물어지게 되어 있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은
어느 누구의 사람도 아니라는 말이 있다.
어떤 사람도 세상 사람 모두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살 수는 없다.
그건 각자의 타고난 성향과 개성과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교감과 지향이 가능한 사람과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기쁨만으로 충분한 나는
개인의 이기심 충족과 물질적 이익만 중시하는
현실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할 뿐이다.
사람들은 이런 생각과 행동을 이상적이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에
카네기 방식을 취한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건 핑계에 불과하다.
먼저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이고
자신의 이기를 내려놓을 자신이 없을 테고 그러기에는 너무나 세속적인 자신의 모습이 두려워서일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타인을 긍정하고 믿을 수 있을까?
다치지 않기 위해, 손해 보지 않기 위해
가장 영리한 관계 체득법을 택하는 게 상책인 것이다.
카네기 방식은 현실적 이익과 세속의 가치를 중시하는 이들에게는 최상의 지침서가 될지 모르나
그런 것보다 훨씬 높은 가치를 지향하는 이들에게는
적어도 참고 서적 이상의 의미는 지니지 못할 것 같다.
아마 자신을 절대 노출하지 않고
인간을 원활한 활용 도구로 생각하는 이들이나 정치인에게는 최상의 방향 제시서가 될 것이다.
나는 좀 더 험난하고 격정적일지라도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서로가 충만할 수 있는 관계를 맺고 싶다.
당신은 어떤 인간관계를 원하는가?
★
* 어쩌면 단 한 명조차 없게 될지라도.
* 카네기 지론을 따르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는 아침. ^^*
* Heartfelt - Silvard Kool(09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