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세계에서 따뜻함은 빛난다.

할로우 나이트: 실크송을 끝까지 깨고 싶었던 이유.

by 레네


브런치에 처음으로 비디오 게임에 대해서 써보는 글이다. 나는 게임이 내 삶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내게 현실의 교훈을 주기도 하며, 때로는 고난을 극복했다는 짜릿함을 주고, 때로는 낯선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장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나는 지금까지 발매된 이름난 많은 게임들을 플레이해왔고, 할로우 나이트도 예외는 아니었다.


할로우 나이트는 개인적으로 썩 좋아하는 게임은 아니다. 깔끔하고 아름다운 그래픽과 몰입되는 구조, 맵을 탐색하는 재미까지, 분명히 좋은 게임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 게임에 밋밋한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건 내 게임 취향에서 비롯되는 건데, 결점이 있지만 독창적인 기믹이 있는 게임과, 깔끔하고 완성도가 높으나 왜인지 익숙한 게임 두 개가 있다면 나는 전자의 게임을 선호한다. 할로우 나이트가 메트로배니아 장르의 입문이라면, 모든 부분이 환상적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른 메트로배니아 게임을 접해본 입장에서, 눈을 번뜩이게 하는 새로움이 있었냐고 되돌아 생각해본다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다크 소울에서 영향을 받은, 단서 위주로 추측해야하는 스토리라인은 이 게임에서는 효과적이지 않다고 느껴졌다. 그 차이점은 아마도 할로우 나이트가 벌레를 소재로 한다는 점 자체가 가져오는 독창성일 것이다. 독창적이기에 세계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궁금하지만, 정작 그 세계에 대해서 아는 것이 어렵고, 그렇기에 이해를 포기하고 순수하게 게임을 클리어하는 데만 집중하게 된달까.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오히려 너무 절제되어 있기 때문에 게임의 메인 흐름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렇기에 내게 할로우 나이트를 기억할 때 떠오르는 것은 '아... 좋은 게임이지.' 정도의 인상이다. 추천도 쉽고, 무난하고, 엔딩까지 갈만하고.


그리고 그것은 아마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개발된 게임이라는 배경도 있을 것이다. 팀 체리(Team Cherry)는 호주의 인디 게임 개발 팀으로, 웹사이트 디자이너와 애니메이터 단 두 명이서 시작했다. 그들의 첫 작품은 플래시 게임으로 만들어진 헝그리 나이트(Hungry Knight)였다. 실제로 해보니 게임성은 매우 단순했다. 그렇지만 이때부터 공허의 기사와 특색있는 적 캐릭터의 디자인은 확실하게 정립되어 있었다.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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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체리의 첫 작품인 헝그리 나이트. 할로우 나이트와 달리 탑 뷰 형식의 게임이다.



그리고 절치부심해서 유니티 엔진으로 개발된 게임이 바로 할로우 나이트다. 개발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처음으로 만드는 큰 규모의 게임에, 많은 사람에게 후원까지 받았다. 거기에 많은 시간을 썼고, 어떻게든 성공하고 싶다. 그런 게임이면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재미를 줄 수 있는 정석적인 디자인으로 만들고 싶을 것이다. 적당한 난이도 곡선을 따르면서 감흥을 줄 수 있는 그런 디자인 말이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할로우 나이트의 그 지점이 밋밋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내게 있어서는 공부 열심히 하는 모범생같은 게임이었달까? 뜯어서 보면 허투루 만들어진 곳이 없지만, '그래서 이 게임만의 장점이 뭔데?'라고 물어보면, 답하기 어려운 것이 있다.



스크린샷 2025-09-15 161731.png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킥스타터(Kickstarter)를 통해 개발이 된 할로우 나이트.



그렇지만 할로우 나이트: 실크송 (이하 실크송)에는 기대가 있었다. 세기의 명작이 될 것이라는 기대라기보다는, 메트로배니아 장르 자체가 만들기 어려운지 좋은 게임을 찾기 힘든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장르를 정말 좋아하고, 이 장르에서 좋은 게임이 나왔다는 소문이 돌면 꼭 찾아서 해본다. 그렇기에 실크송은 나오면 무조건 해보고 싶은 게임이었다. 그리고 나만 이렇게 생각했던 것은 아닌지, 정작 출시 당일에 스팀에서 구매를 실패하여 엑스박스 게임패스로 플레이하게 됐다.


그렇게 나는 내 게이머 인생 최대의 도전을 겪게 되었다.




다른 리뷰에서 찾아볼 수 있는 흔한 얘기들을 해보겠다. 실크송의 초반부 난이도가 지독하고, 밸런스 조절에 실패한 것 같으며, 게이머에게 심한 불쾌감을 준다는 그런 얘기다. 디테일은 인정하지만, 해도 해도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이 게임은 변명하지 못할 개발자의 악의로 가득차있으며, 이 게임을 추천할 수 없다. 특히 보스전에 잡몹이 필요 이상으로 많고, 보상은 없다시피하다. 이 게임은 재미있다기보다는 불쾌하다!


맞다. 이 게임은 잔인하고, 짜증나고, 힘들고, 어렵다. '필요 이상'으로 가혹하다. 그러나 나는 이런 불친절한 난이도의 게임을 끝까지 완주하게 됐다. 100% 완성도를 달성하기 위해 공략도 찾아보면서, 게임이 제공하는 모든 도전을 최대한 해보려고 노력했다. 그 이유가 뭘까? 나도 내가 왜 이 게임을 끝까지 깨는데에 그렇게 몰입을 했는지 이유를 찾고 싶었다. 심지어는 나는 이 게임을 완료하고 난 뒤에 큰 허무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실크송이 독특하고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을 풀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바로 많이 팔리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은, 어려움을 극한까지 몰고가 정말로 죽기 살기로 게임을 깨야하는 체험을 말이다.



ss_09ccaa6c16f158f9df8298feb5d196098506a028.600x338.jpg 정말, 정말 어렵다.



나는 '게임은 현실의 모방이다'라는 말에 동의한다. 젤다의 전설은 미야모토 시게루가 어릴 적 동굴을 탐험하던 경험에서 착안하여 만들어진 게임이다. 거기에서 탐험을 하며 모르던 것을 알게되는 재미, 비밀을 풀어내어 위기를 극복하는 재미 등을 가져오지 않았을까 한다. 메트로배니아 장르의 재미를 현실에서 찾아본다면 어떤 느낌일까? 아마도 미개척지를 처음 개척하는 탐험가가 된 느낌이 아닐까? 거기에 더해 강력한 적들을 이겨내나가며 성장을 하고, 마침내 모든 비밀을 밝혀내고 귀환을 하는 그 구조가 메트로배니아의 큰 매력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게임은 현실보다 더 낫게끔 느껴지는 구조를 채택한다. 특정한 고난을 이겨내면 큰 보상이 따르고, 시간을 쓸수록 캐릭터는 강해지며 엔딩에 가서는 큰 만족감을 주는 구조다. 게임은 궁극적으로는 플레이어를 만족시켜야하는 무언의 약속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게임에 돈을 지불하여 시간과 노고를 들인 게이머에 대한 존중이다. 현실에서 얻기 어려운 보상을, 게임에서는 약간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선천적인 뇌의 보상 구조를 해킹하여 컴퓨터 앞에서 만족시키는 디지털 환상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할로우 나이트는 이를 충실히 따른다.


그렇다면 실크송은? 정 반대다. 이 게임은 처음부터 끝까지 당신을 짓밟으려고 한다. 심지어는 휴식 공간인 척 당신을 적극적으로 속여 배신당했다는 기분까지 느끼게 한다. 다분히 악의적이고, 게임을 진행하며 쉬워졌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적다. 플레이어는 계속해서 실력이 늘고, 분명히 캐릭터도 성장하지만 강해졌다는 느낌이 도통 들지 않는다. 단지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보상이라는 듯, 이 게임은 보상에 인색하다. 정말 같은 개발자가 만들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완전히 딴판이다.


그런데 나는 이런 불합리한 구조의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조금은 힐링이 되는 기분까지 들었다. 어쩌면 현실에서 큰 고난이 없었던 사람은 공감을 못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에게 현실은 매우 불합리한 공간이다. 고생에 비해 적절한 보상이 없다고 느껴질 때도 많다. 현실은 항상 배워나가야 하는 공간이었고, 때로는 불쾌하기까지 하다. 살면서 수없이 많은 불운, 불친절을 너무나 쉽게 마주할 수 있다. 실크송은 바로 그 지점에 위치하는 고난도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실크송의 도전은, 분명히 게임이지만 현실처럼 다가온다고 생각한다. 사실 요즘 게임의 난이도는 패미컴 시대의 고전 게임과 달리 적절한 수준의 도전이라 생각하게끔 하여 끝까지 플레이할 수 있는 동기부여를 주는데 노력한다. 그러나 실크송은 고난도를 유저에게 강요한다. 그런데 그 잔인한 어려움이 바로 실크송을 다른 게임과 구별하여 깊게 몰입하게 되는 원천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현실과 닮아있기 때문에 그 고난이 현실적으로 꼭 극복을 해야하는 난관으로 여겨진다는 이야기다.


또한 반대로, 그런 어려운 고통을 이겨내게끔 설계되어 있기에 플레이하면서 발견할 수 있는 따뜻함이 더 부각된다고 생각한다. 예시로 들고 싶은 것은 셰르마와, 벼룩 극단에 대한 스토리다.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플레이할 예정이거나, 이미 하고 계시다면 아래로 쭉 내려주세요.







먼저 셰르마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잊을 수 없는 노래.


셰르마는 성채로의 순롓길을 가는 중인 낙천적인 순례자다. 그와 대화를 해보면, 이 위험한 세계에서 어떻게 저렇게 머리가 꽃밭일까 싶다. 전혀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세계 속에서 다른 이를 돕고 믿음을 유지하는 그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것이 굳센 믿음에서 비롯된 행동인지, 아니면 조금 바보라서 그런 건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는 악의로 가득한 이 세계에서는 너무나 위험해보인다.


그러다가 3장에 진입하면서, 이 게임의 퀘스트에 해당하는 '소원'을 하나 얻게 된다. 그 순진한 셰르마가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온갖 위험한 실험체가 가득한 백색 병동에서 말이다. 나는 불안한 예상을 가진 채로 바로 달려나갔고, 정말 다행히도 그 예상은 빗나갔다. 나는 그를 구해낼 수 있었고, 나는 큰 안도감을 얻었다.


여기서 생각해보자. 만약 실크송의 세계가 위협으로 느껴지지 않았다면, 셰르마의 행방불명에 마음이 동요했을까? 대부분의 게임의 퀘스트에서는 위기가 있어도 그것이 큰 위기로 느껴지지 않는다. 게임 내 세계가 위험하지 않다고 동물적으로 인지한 상황에서, 아무리 인상적인 드라마를 연출한들 그것이 실제적인 체험이 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쉽게 말하면, 플레이어는 게임의 위기를 WWE처럼 느낀다는 것이다. 위기가 있어도 게임 내에서 노력하면 극복 가능한 위기라는 학습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잔인한 난이도 덕분에 셰르마는 정말로 긴급하게 구해내야하는 존재로 느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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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으로 얘기하고 싶은 것은 벼룩 극단이다. 맵을 샅샅이 뒤져 모든 벼룩을 찾아서 돌려보내는 것은 참 힘들다. 그렇지만 극단의 단장인 무슈카는 플레이어에게 항상 감사를 표한다. 나는 그런 그에게 친밀감을 느꼈다. 일단 이런 세상에서 따뜻함을 만나면 누구든지 반갑게 느껴진다.


그러다가 세상이 망해가는 3장에 진입하고, 그를 다시 만날 수 있다. 그는 이 세상을 꼭 구해내려는 호넷과 달리 체념의 태도를 갖고 있다. 솔직히 희망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의외의 이야기를 한다. 그는 '세상이 끝나가지만, 축제를 즐기자'고 말한다. 그러면서 벼룩주를 갖다 놓고, 모든 벼룩들과 성대한 파티를 한다. 이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어떤 뭉클함을 내게 줬다.


삶은 즐기는 것이다. 모든 희망이 사라졌어도, 미래에 대한 아무런 기대가 없어도 그는 마지막 순간만큼은 환희의 파티를 하자고 얘기한다. 특히 절망하고 포기한 NPC들이 있기에, 그의 태도가 더 빛나보인다. 그리고 이 태도가 더 마음에 닿는 이유는, 이 세계가 잔혹하다는 것을 게임 내내 학습했기 때문이 아닐까?





여기서부터 스포일러가 끝납니다.




이 모든 경험을 요약해보자. 실크송은 기대를 배신한다. 다른 게임에서는 고난 끝에 보상을 주고, 그런 긴장과 완화의 연속이 중독적인 게임플레이 루프를 만든다. 그렇지만 실크송은 사투를 해나가야 겨우 깰 수 있고, 심지어 그 보상도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 잔인한 현실 속에서 타인을 이해하게 된다. 따뜻함의 가치가 빛나고, 최후의 순간에도 웃는 이들을 보게 된다. 삶을 포기하는 자들도 있지만, 마지막까지 다른 이를 도우며 봉사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실크송의 역설이 내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실크송은 내게 지울 수 없는 기억을 남기게 됐다. 세상은 힘들다. 그렇지만...


'축제를 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