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서가'를 만든 이유
감정을 뜻하는 영단어 ‘이모션(Emotion)’의 어원을 살펴보면, ‘e’(밖으로)+‘mot’(움직이다)+‘tion’(일)로 구성된다. ’밖으로의 움직임을 만드는 일’이라는 뜻으로 감정은 내 몸과 마음을 움직여 내가 무엇을 하도록 만든다. 즐거워서 웃게 하고, 슬퍼서 눈물을 흘리게 하고,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게 하며, 오묘하고 설레는 마음은 사랑에 빠지게 만든다. 감정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일 수밖에 없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감정을 부자연스럽고, 불편한 존재로 여겨왔다. 오랫동안 개인이 스스로 절제하고 통제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겨 왔기 때문에, 대부분 어릴 때부터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법을 익혀야 했다. ‘우리‘라는 거울 앞에서 ‘나’의 솔직함을 조정해야 하는 강제적인 경험들 이었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 ‘정’이 많은 것은 적절히 표출하지 못하고 쌓인 ‘감’이 많기 때문에 생긴 동병상련의 느낌적인 느낌일지도 모른다. 감정서가는 이처럼 고착화된 관념에 돌을 던져 파동을 일으키는 작은 공감각적 시도이다.
감정서가에서는 우리가 느꼈던 알 수 없는 것들을 끄집어내 예술의 언어로 시각화 한다. 방문객은 예술가와 함께 글과 그림 혹은 토론과 대화의 과정을 통해 기록하고, 수집하고, 출판한다. 그들이 직접 쓰고, 편집하고, 함께 만든 작업은 자신만의 맥락을 담아 '하나밖에 없는 책'이라는 예술적 가치를 얻는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책부터, 사회의 관심사를 드러내는 책까지, 서가에 놓인 모든 작업은 우리가 ‘지금’ 만날 수 있는 시각화된 감정의 실체들이다.
감정서가는 크게 ‘문장‘과 ‘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장‘에는 다른 글을 필사하거나 자신의 감정을 정성스럽게 적은 1,000여 장의 카드가 벽면에 빼곡히 채워져, 다가오는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움직인다. ‘책장‘에는 한 사람의 마음이 모인 앨범이 한권의 서사로 엮여 스스로 만든 ‘제목‘을 달고 아카이브 된다. 이름 모를 누군가의 손에 이 책이 들리는 순간, 시공간을 초월하여 '함께'라는 공감대를 만든다.
또한, 감정서가에서는 예술가의 작품 세계를 함께 동행하는 ‘작업의 감’과 감정을 매개체로 예술가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는 ‘대화의 감’이 열린다. 예술가는 어떻게 생각을 시각화하는지, 그 과정 속에서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표현 하는지를 쫓으며 스스로 돌아볼 계기를 만든다. 이 모든 만남의 자리는 누군가 일방적으로 무언가를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가 아닌 서로의 생각을 교류하고 마음을 나누는 교감의 과정이다.
하루는 쉼없이 흘러가고 순간은 소리없이 소멸된다. 그것을 붙잡을 방법은 물리적 공간에, 보이는 흔적으로 담아내는 것이다. 감정서가에 온 사람들은 이곳에서 느낀 경험을 추억하며 일상으로 돌아가고 그들이 남긴 기록은 공간을 채우며 ‘감정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의 페이지로 새겨진다. 감정서가의 시간은 그렇게 한 사람의 이야기에 담겨 사라지지 않고 차곡차곡 쌓이며 도시에 흔적을 남긴다.
코로나19는 많은 것을 낯설게 만들었지만, 불안함에서 안전함을 찾아가는 모든 과정은 나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된다. 에르베 기베르가 쓴 소설적인 수필집 『유령 이미지』(L’image Fantome)에는 ‘생각을 읽는 안경’이라는 아주 신기한 발명품이 등장한다. 안경을 쓴 눈이 아니라 연필을 쥐고 있는 손을 움직여 나의 생각을 써 내려가다 보면 타인의 생각에도, 우리의 생각에도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몸도 마음도 함께 움직일 테니 말이다.
감정서가의 모든 경험은 ‘나’를 생각하게 한다. 가끔 이곳에 들러 온전히 자신으로부터 자신이 중심인 세계를 오가는 일, 그러면서 자신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돌보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가 보기 바란다. 예술이 그 여정의 따뜻한 안내자가 될 것이다.
by june @감정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