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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치당 영화당
by 숲속의참치 Jul 02. 2018

고레에다 감독을 이해하는 키워드 ‘일본스러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어느 가족>을 기다리며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어느 가족>을 기다리며

올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것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만비키 가족>이었다. 21년 만에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일본 영화계도 경사였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팬들도 경사였다. 최고상의 영예는 최고의 감독에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어느 가족>이라는 제목으로 오는 26일에 개봉한다. 올해 칸 영화제가 5월 19일에 폐막한 것을 떠올려 보면 무척 빠른 편이다. 국내 개봉하는 일본 영화가 보통 일 년 정도의 텀을 가지는 것을 고려해 본다면 그 이례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아마도, 한국에도 고레에다 감독의 팬이 많기 때문이리라.

고레에다의 팬이 아니더라도, 칸에서 황금 종려상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 이유가 충분하다. 영화 관람은 개인의 선택에 달렸지만, 만약 이 영화에 관심이 있다면 영화를 보기 전에 감독에 관해 간략하게 알아두면 관람에 도움이 될 것이다.

고레에다 감독을 이해하는 키워드 '일본스러움' 

고레에다 감독의 팬이거나 팬이 아니라도 그의 영화를 보면 대부분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아. 일본 영화구나." 단지 일본을 배경으로 한다는 것 말고도, 그의 영화에선 분명 '일본스러움'이 느껴진다. 물론 이 '일본스러움'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 도리는 없다. 어떻게 보면 이런 '일본스러움'이 고정관념의 일종은 아닐까하고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어떤 맥락을 따르면 좋을지 정도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그러니 어떤 맥락으로 '일본스러움'을 바라볼 수 있는지 생각해 보자.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영화, <동경 이야기>의 한 장면ⓒ 오드



1. 일본 영화의 바탕이 된 전통극 '노가쿠'

우리가 일본 영화에서 주로 찾아내는 것은 등장인물들의 과장된 연기다. 속된 말로, "왜 이렇게 오바하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문화적으로 바라볼 때 일본의 전통 가면극과 관련이 있다. 이른바 노가쿠( 能 )다.

노가쿠는 일본 전통 경극으로써 가면을 쓴 채로 연기하는 게 특징이다. 다만 한국의 탈극과는 다른 게, 무대나 소품이 극도로 절제되어 있다. 또한 가면도 한국의 하회탈처럼 익살스럽지 않고 딱딱하게 생겼다. 그런 절제됨을 바탕으로 웃고 울고 만담을 나누게 된다.

이렇게 들었을 때 노가쿠는 몹시 이상하게 느껴진다. 딱딱한 몸짓과 표정으로 희로애락을 표현한다는 것은 어딘가 부자연스러워 보이기 때문이다. 마치, 웃는 얼굴로 장례식에 와있는 듯한 느낌이다. 여기서 우리는 노가쿠가 '가면'극이라는 점을 다시금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가면'은 상황에 따라 개인의 성격을 바꾸어 행동한다는 '페르소나' 개념을 설명할 때 주요 사용되곤 한다. 이를테면 학교에서는 학생이지만 집에서는 자식인 것처럼 말이다. 이때 만약, 집에서 하는 것처럼 교수님을 대한다면 학점은 물론 과생활에 지장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페르소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하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영화, <동경 이야기>의 한 장면ⓒ 오드



마찬가지로, 노가쿠는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사람들이 취했던 행동에 근원을 두고 있다. 딱딱한 가면으로 절제된 연기를 선보인다는 노가쿠의 특성은 일본의 사무라이 문화에 영향을 받았다. 우리가 '사무라이' 하면 떠올리는 것처럼, 사무라이로 대변되는 일본의 계급 사회는 일본 전반에 절제와 배려의 미덕을 만들어 냈다. 그것은 현대 일본에도 '메이와쿠'라는 것으로 전해져 내려왔다.

'메이와쿠'란 "예의를 지킵시다."라는 일본의 표어다. 이는 단순히 '예의'의 범주에만 머물지 않고 생활 전반에 스며들어 극단성을 띠게 되었다. 사소한 말과 행동에 사무라이의 칼이 날아왔던 것처럼, 조금이라도 타인에게 실례가 될까 스스로 위축하게 되었다. 나라 전체가 섬이라서 도망갈 곳이 없는 것도 그 극단성에 영향을 끼쳤다. 쉽게 말해, 노가쿠란 예절을 지키려 겉마음과 속마음을 다르게 했던 것에서 귀인한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영화, <동경 이야기>의 한 장면ⓒ 오드



이처럼, 노가쿠 극의 특성은 겉마음과 속마음을 맞추어 보는 '퍼즐게임'과도 같다. 그런데 이 퍼즐게임이 '영화'의 등장으로 한차례 변화를 겪는다. 영화가 발명된 1895년에 이르러 서양의 멜로극을 동양식으로 만들어 보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신파(新派)다.

현대에 우리가 아는 신파는 '억지감동'으로 쓰이지만 본래의 신파는 '과장됨'을 뜻했다.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서양 멜로극에서 '판에 박힌 진행'과 '과장된 감정표현'을 동양식으로 따온 것이다. 말하자면 신파극 속 인물은 '운명'을 따라 살아야만 했다.

그렇지만 '과장된 감정표현'이 일본에 들어오며 노가쿠와 결합하게 되었다. 노가쿠의 '가면' 특성이 겉과 속이 다른 것이었다면, 신파의 '과장됨'은 가면의 겉과 속을 극단으로 벌려 놓는 것으로 변화했다. 말하자면, '감정을 숨겨야만 했던' 것에서 '일부러 그 차이를 크게 하는' 것으로 변화했다.

겉과 속이 다른 게 훤히 보이기에 슬픔은 배가 된다. 차이가 큰 만큼 에너지가 커지고, 노가쿠 특유의 절제됨 또한 비련함을 강조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걸어도 걸어도>의 한 장면ⓒ 시네콰논



2. 초기 일본 영화의 신파

일제 강점기에 한국에 전래된 신파극은 유교와 결합해 '한국식 신파'가 되어 지금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일본의 전통 신파극은 50년대 이례로 점차 사라지고 그 후의 영화와 애니메이션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금방이라도 울고 싶은데 참는 듯 보이거나, 좋아하는 게 뻔히 보이는데 아니라고 우기는 인물상은 신파극으로부터 갈라진 인물 형태 중 하나다.

반대로 말하자면 50년대 이전까지의 일본 영화는 전통적인 신파였다. 그 시기를 대표하는 일본 감독을 살펴보면 그 특징이 잘 드러난다.

나루세 미키오, 미조구치 겐지, 그리고 오즈 야스지로. 나루세 미키오의 <부운>이나 미조구치 겐지의 <오하루의 일생>은 일본 멜로 영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흘러나오는 감정을 단칼에 자르는 듯한 절제미가 돋보이는 영화다. 하지만 이 세 감독 중 멜로가 아닌 가족을 조명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오즈 야스지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걸어도 걸어도>의 한 장면ⓒ 시네콰논



오즈의 영화는 대체로, 어느 가족의 평범한 일상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재미가 없을 수도 있으나, 영화사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것엔 이유가 있다. 당대 일본 사회를 가족을 통해 보여준다는 점이 첫 번째요, 절제되지 않은 차분함이 두 번째다.

그의 영화에서 가족들 사이에는 항상 신파가 감돈다. 그 신파는 보통 부모님(혹은 부모의 역을 맡은 다른 인물)이 담당한다. 이를테면 <늦가을>에서, 주변 사람들이 나이 든 딸에게 결혼하라 종용해도 어머니는 차분히 딸의 선택을 기다린다. 막연히 기다리는 것도 아니지만 막연히 강요하지도 않는다. 딸도 그런 어머니에게 간접적으로 투정을 부린다. 결혼 얘기로 투정을 부리지는 않고, 밥이나 옷정리 같은 사소한 문제로 말을 건다.

알면서도 말하지 않거나, 돌려 말하거나. 겉과 속이 따로 놀지만, 가면 밖에 흘러나오는 에너지를 절제하여 관객에게 전달하는 오즈의 영화는 고전 신파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현대의 신파극이 과잉된 것이라면, 본래의 신파란 과잉됨을 절제하여 나오는 세련미인 것이다.

고레에다의 영화가 주목받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는 오즈 야스지로로 대변되는 일본 고전 영화와 무척 닮았다. 그 중에서도 고레에다가 오즈와 비교되는 면이 여러 가지가 있다. 크게 두 가지인데, 첫째는 순환하는 시간이라는 점이고 둘째는 가족을 그린다는 점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걸어도 걸어도>의 한 장면ⓒ 시네콰논



이 중 순환하는 시간은 불교의 윤회처럼 종교적인 게 아니다. 고레에다 영화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인물상이 있다. 평온한 삶을 살던 인물이 특정 사건을 겪고 좌절하나, 결말에 가서 다시금 평온한 삶을 살게 된다. 즉, 시작과 결말의 상황이 다를 뿐 인물의 감정은 처음과 같다. 이것은 마치, 사계절이 지나가는 가운데에 줄곧 서 있는 인물처럼 보인다. 말하자면, 계절이 바뀌어도 삶은 계속된다.

둘 중 부각되는 것은 두 감독이 보여주는 가족이다. 고레에다의 영화에서 묘사되는 가족도 현대 일본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이번 영화 <어느 가족>도 할머니의 연금으로 살아가는 가난한 가족이 버려진 아이를 주움으로써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물론, 고레에다의 영화가 고전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좋은 것만은 아니다. 고레에다는 그만의 스타일이 있고 그게 옛 영화와 닮아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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