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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보는 영화
by 숲속의참치 Sep 20. 2017

음악으로 보는 영화 - 인생의 회전목마.

하울의 움직이는 성, 오즈의 마법사.

영화를 유명하게 하는 몇 가지가 있다. 이름난 배우나 탁월한 미쟝센, 혹은 의미를 전달하는 방법의 탁월함이다. 그런 건 보통 이론상으로 쉽게 설명된다. 영화가 왜 좋은지는 영화학자들과 평론가들이 친절하게 해설해준다. 그러나 음악만큼은 다르다. 음악이 왜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지 알 수 없다. 음악이 울리는 우리의 심금은, 과학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알 수 없는 것들이다. 오직, 직접 경험해보아야만 이해된다. 

그 이유가 밝혀지지 않은 지금 시점에선, 음악이 좋은 이유가 아니라 그 음악이 나오는 영화가 왜 좋은지를 설명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음악이 좋은 영화가 너무 많기에, 우리에게 익숙한 것 중에서 두 가지를 선발했다. 바로 <오즈의 마법사,1939>와 <하울의 움직이는 성, 2004>이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2004>
<오즈의 마법사, 1939>



겉으로 보기엔 크게 달라 보이는 두 영화다. 할리우드와 지브리 스튜디오, 애니메이션과 실사 영화, 2004년과 1939년이라는 75년의 간극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깊게 살펴보면, 두 영화는 이미지와 상징이 서로 닮아있다. 이를테면 두 영화에서는 등장인물이 사는 집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 ‘하울’의 집은 계속해서 이동하며, ‘도로시’의 집은 토네이도에 휩쓸려 오즈에 안착한다. 

두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노래는 그 부분에서 흘러나온다. 무료한 일상에서 도망가고 싶은 마음으로 부르던 노래, 무지개 너머 그 어딘가에 있을 낙원을 상상하며 부르던 ‘Over the Rainbow’. 푸른 하늘 아래 초록빛 들판을 성큼성큼 걷는 성과 하늘을 나는 마법사 ‘하울’, 그리고 흘러나오는 ‘인생의 회전목마’. 


종교학자 ‘미르치아 엘리아데’는 여러 신화를 살펴보며 집을 이렇게 정의했다. “집은 중심이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말 그대로 집이 곧 ‘세계의 중심’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 옛날, 오두막과 같은 집에는 굴뚝이 있었고 그 굴뚝은 하늘로 솟아있다. 천체의 중심인 북극성을 향해 솟은 굴뚝에서는 연기가 ‘상승’하고, 그 연기를 생성하는 아궁이에서는 땔감이 태워진다. 그리고 이 아궁이는 그 자체로 ‘자궁’과도 같은 이미지이며, ‘자궁’이 가진 하강의 이미지가 상승의 이미지인 ‘연기’와 대비된다. 

동양의 음과 양의 개념은 아마 익숙히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의미를 잘못 알고 있을 텐데,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는 것이 그 높낮이에 따른 계급적인 요소가 아니다. 하늘이 가진 상승의 이미지와 땅이라는 하강의 이미지이며, 그 두 가지가 합쳐진 집은 균형적으로 완벽한 장소다. 또한 북극성을 향한 집은 그 자체로 우주의 중심이다. 우리는 ‘완벽한’ 세상의 중심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집에 사는 우리는 집에 있을 때만큼은 자신을 ‘완벽한’, ‘세상의 중심’으로 생각한다. 그렇기에 자신의 지금 모습이 불안하게 흔들릴 때, 우리는 집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그런데 그 집이 계속해서 떠돌아다닌다면, 당연하게도 불안하고 힘들 것이다. 왜냐면 중심이 흔들린다는 건 나 자신도 그렇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울의 성을 움직이는 불의 요정은 마법사의 심장과 함께하는데, 이것도 인체의 중심에 있는 ‘심장’을 집의 중심(위에서 자궁의 의미를 지닌다고 언급했다.)인 ‘아궁이’에 위치함으로써 두 중심의 이미지가 겹쳐진다. 즉, 영화 속에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인물인 동시에 집이며, 동시에 삶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이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알 것이다. 왜 노래의 제목이 인생이 회전목마인지 제작진 측에서의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하지만 살면서 ‘집’에 대한 현기증을 한 번이라도 느껴본 사람이라면 그게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건 거대하고 고풍스러우며 신비한 어느 마법사의 성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흔들리는 정체성’이자 ‘불안감’이며 ‘공허함’이다. 어딘가로 향하는지 모를 나의 모습이다. 사실은 회전목마처럼 영원히 같은 곳을 맴돌 뿐인데도 말이다. 

이제 <오즈의 마법사>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일단 <하울의 움직이는 성>보다 훨씬 단순해서 보기 편한 영화다. 미야자키 하야오 특유의 세계관은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였지만, 프랭크 바움의 ‘오즈 랜드’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울의 움직이는 성>만큼 집중해서 보지 않아도 된다. 단지, 음악만큼은 뇌리에 선명히 남으니 괜찮다. 

도로시’가 무료하면서도 싫증이 나는 일상을 노래했을 때, 토네이도가 굉음과 함께 찾아왔다. 도로시가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하는 마음이 토네이도를 불렀다. 그건 어른들에게는 온 지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는 재앙이었지만, 도로시를 오즈 랜드로 데려다 주었다. 어른의 세계와 자신의 세계를 분리한 토네이도란 건, 아마도 모든 것을 다 던져버리고서라도 일상을 내려놓고 싶어서라도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자기보다 더 어른(높은 사람)은 있고, 우린 그때마다 도로시가 된다. 도로시는 자신이 가족처럼 아끼던 강아지 ‘토토’를 억지로 떼어놓는 동네 아주머니에게 대항할 힘이 없다. 도로시는 그때 노래를 부르고, 이후 토네이도가 온다. 우리가 항상 ‘무지개 너머’를 흥얼거리는 건 지금 당장 도로시의 상황에 부닥쳐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헤집어 놓는 토네이도가 오고, 그것이 나 말고 전부 없애 버리기를 원하면서 말이다. 

여기서 노래의 힘은 끝나지 않는다. 이후 도로시는 일련의 모험들을 겪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되는데, 이것은 자신을 극복하는 과정이다. 어딘지 모를 낯선 땅에 도착하자마자 문을 여니, 칙칙한 흑백의 세계에 오색이 찾아온다. 관객도 도로시도 새로운 세계임을 단박에 알아보고, 여행을 온 것만 같은 설렘에 빠져든다. 오즈 랜드는 지루한 일상성의 타파, 요즘 놀이공원의 슬로건대로 ‘꿈이 이루어지는 환상의 나라’다. 

집이 떨어지며 깔아뭉개 버린 못된 마녀는 우리가 생각하던 낙원 ‘오즈 랜드’를 위협하던 불안감이고, 여행의 시작은 불안감을 떨쳐버리면서 시작한다. 역설적이게도 그 불안감이 가진 장점인 ‘은색 구두’를 신게 되고, 후에 그것으로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이 구두의 역설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건, 사람은 위기감에 시달리며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반대로 위기감이 있어 앞으로 나아가기도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항상 꿈을 꾸며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어하지만, 그 여행조차 복귀의 불안감에 시달린다. 그래서 작중에서 계속해서 도로시가 신은 구두를 뺏으려 하는 마녀는, ‘위기감’조차 없애고 ‘꿈(오즈랜드)’속에서만 계속해서 머무르게 하려는 사악한 인물이다. 그 마녀가 도로시가 죽인 마녀의 자매인 건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불안감과, 그 불안을 없애려는 양가적 감정의 존재다. 

도로시는 금본위제를 상징하는 것들, 은색의 구두를 신고 금색의 블록을 따라간다. 저자 ‘프랭크 바움’이당시의 경제제도였던 ‘금본위제’를 비판하듯, 현대의 관객들은 <오즈의 마법사>에서 현재의 경제제도를 비판하는 메시지를 읽는다. 그리고 ‘생각’하지 못하는 허수아비를 만나 ‘감정’이 없는 양철 나무꾼을 도와주며, ‘용기’가 없는 겁쟁이 사자와 함께 오즈를 청한다. 전부 우리가 가지지 못한 것들이다.

우리가 자본으로 가득 찬 사회를 따라가며, 아무런 생각도 감정도 없이 기계처럼 움직이기만 할 때 다시금 ‘Over the Rainbow’를 흥얼거리게 된다. 꿈속에서라도 막연하게 현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오즈를 찾아가지만, 사실 오즈는 우리 세계에 살고 있던 가장 가까운 이웃이었다. 정작 자신을 집으로 되돌려 놓는 건, 나를 나로 있게 하는 건 뾰족한 구두이다. 

<오즈의 마법사>가 신묘하게 읽히는 건 두 불안감이 겹쳐지기 때문이다. ‘나’를 어딘가로 떠나 보내고 싶어하는 중심의 이동, 그리고 ‘나’ 스스로 느끼는 불안감이 날 돌려보냈을 때의 안도감. 어라.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은가? 마치 원형을 이루어 제자리로 돌아왔으니 말이다. 그렇다. 이것은 ‘인생의 회전목마’다. 영원히 제자리를 떠도는 것만 같은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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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치는 숲속에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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