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초과 #1

아무것도 아닌 날

by 이프웨더

<마고>


눈이 떠졌을 때 시계는 13시 42분을 나타내고 있었다. 벽에 켜진 홀로그램 화면에 메일함이 떠있다. 어젯밤, 데드라인이 코앞인 일을 처리하느라 해 뜰 때까지 작업했던 게 생각났다. 그 와중에 담당자에게 작업 파일은 보내고 기절했는지 루트가 켜진 채 그대로다. 손목에 차고 있는 테크워치를 켜기 위해 왼팔을 들었을 때 어깨가 빠질 듯 아파왔다. 허리까지 아픈 걸 보니 책상에 꽤 오래 붙어 있었던 모양이다. 뻣뻣해진 몸을 겨우 일으켜 스트레칭을 하면서 테크워치를 켰다. 홀로그램 화면이 허공에 나타남과 동시에 미확인 알림이 팝업창으로 우르르 떴다. 그중 루트에 온 메시지 하나를 클릭했다.


-개발자님 아침형 인간이신가 봐요~ 이렇게 일찍 작업물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아침 일찍 작업물을 보냈다고? 서둘러 루트가 켜진 홀로그램으로 고개를 돌려 내가 작업물을 보낸 시간을 확인했다. 오늘 오전 5시 34분에 담당자에게 작업 파일이 보내져 있었다. 예의상 루트로 작업 파일을 보낼 땐 너무 늦거나 이른 시간에 보내지 않는다. 수면 부족 상태로 작업하다 보니 시간 체크를 잘못한 것 같다. 혹시 몰라 보낸 파일을 확인하니 다행히 코드는 잘 만들어져 있었다. 안도와 피곤이 섞인 한숨을 쉬다 문득 점심시간인 걸 깨달았다. 해 먹기엔 냉장고가 텅텅 비어있고 사 먹으러 나가기엔 귀찮아서 어제 사 온 편의점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우기로 했다. 지겨울 정도로 익숙해진 일상이다.

이곳에 이사 온 지 벌써 3년이 지났다. 이 도시, 픽션은 오늘도 홀로그램으로 뒤덮인 채 존재한다.

4년 전 픽션은 그야말로 첨단 기술 업계의 황금기였다. 홀로그램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전국 각지에서 홀로그램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에 맞춰 테크워치라는 신제품이 유행했고, 테크워치와 호환이 안 되는 등 여러 문제가 많던 기존 메신저 어플을 루트가 대신하며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루트는 기존 메신저 어플의 행보를 보아 그렇다 쳐도, 테크워치가 몇 십 년간 시장에서 살아남은 스마트폰을 대체하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의 답답한 액정 대신 테크워치의 무한히 펼쳐지는 홀로그램에 열광했고 순식간에 시장을 장악한 제품이 되었다. 모든 것이 너무나 빠르게 지나갔다. 연구원 찾기 포기한 지도 어느새 7년이 지났다. 연구원은 공식적으로는 사망처리되었지만 어째선지 나는 아직도 그가 살아있다고 믿고 있다.

산책이라도 할 겸 밖으로 나왔다. 낮인데도 밝게 빛나는 홀로그램이 벽면을 덮은 아파트를 빠져나가 광장으로 갔다. 광장의 한가운데에는 모래시계 조각상이 있었다. 건설 의도를 알 수 없는 픽션의 랜드마크다. 그 앞에 서서 넓은 광장을 둘러보았다. 멀쩡하게 걷는 사람도 있었지만 좀비처럼 균형을 잃은 채 비틀거리며 걷는 사람도 다수 있었다. 더 자세히 둘러보니 팔다리가 뒤틀린 채 골목에 늘어진 사람도 보였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선이 뒤로 이어진 백헤드형 이어폰을 착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같은 디자인의 이어폰을 광고에서 본 기억이 나 해당 이어폰을 검색해 보았다. 검색 결과, 한 달 전 출시한 '언더메타'라는 메타버스 게임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었다. 그에 따라 언더메타에 중독되어 좀비처럼 걷는 사람들, 이른바 언더족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럼 저 이어폰은 언더메타를 플레이하는 장치인가. 대체 어떤 게임이길래 저렇게까지 중독된 건지, 게임을 자주 하지 않는 나로선 이해할 수 없었다.

좀 더 걸어 다니다 슬슬 더워지기 시작해 집으로 돌아갔다. 10월이 다가오는데도 한여름처럼 공기가 후끈하고 무거웠다. 가는 길마다 네온사인을 번쩍이는 가게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런데 어느 가게를 둘러보아도 전부 '언더메타 매진'이라고 문에 쓰여 있었다. 그렇게 대문짝만 하게 매진이라 쓰인 가게 안에서 직원과 실랑이를 벌이는 손님이 있었다. 어딜 가나 진상은 있기 마련이다.


"마스터, 블라인드 내려줘."
음성 인식 시스템을 불러 명령하자 통창 앞에 설치된 블라인드가 내려갔다. 거실로 들어가자 불이 자동으로 켜졌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테크워치로 언더메타에 대해 검색해 봤다. 연관 검색어에 '모닝 유니버스', '언더족' 등의 검색어가 있었다.

언더메타는 '모닝 유니버스'라는 연구소에서 12년 동안 연구해 만든 메타버스 게임이다. 백헤드형 이어폰과 테크워치를 연동시켜 플레이할 수 있고 이어폰이 특정 신호를 뇌에 보내 마치 환각처럼 메타버스 세계를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테크워치와 이어폰이 사용자의 동작과 뇌파를 인식해 게임 내에서 상호작용할 수 있다. 후기에는 진짜 재밌고 짜릿하다, VR을 넘어선 현실감이 있다,라는 내용이 대다수였다.

테크워치를 끄려던 찰나 어떤 메일 하나가 온 걸 발견했다. 어젯밤에 온 메일이지만 작업을 하느라 보지 못했다. 수백 통의 메일 속에서 그 제목이 눈에 띄었다.

'10년 전 실종된 분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카테나>

"살루스는 뭐 하는 곳이에요?"
"멋진 곳"
"그런 데를 왜 가고 싶은 건데요?"
"편하게 살고 싶어서."
"지금도 나름 편하지 않아요?"
"별로. 그러고 보니 넌 살루스에 안 가봤구나."
알파는 갸우뚱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나는 살루스의 야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인투투스에서 바라본 그곳은 눈이 깨질 만큼 화려하고 복잡했다.
살루스는 부와 명예를 가진 자만이 살 수 있는 세계, 인투투스는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자들이 사는 세계다. 살루스 편의점에서 간간이 알바를 하며 사는 나에겐 살루스는 유토피아 그 자체였다.

인투투스에서 가장 높은 건물의 옥상은 나와 알파의 아지트다. 물론 살루스에서는 하찮은 건물 조각에 불과하겠지만.
알파는 나와 같이 사는 친구이자 동거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휴머노이드다. 친구라고는 하지만 존댓말만 할 수 있게 프로그래밍된 건지 지금까지 내게 계속 존댓말을 쓰고 있다.
"...언더족이라고 알아요?"
알파가 옥상 아래에서 어딘가 이상하게 걷는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언더족?"
"몰라요? 요즘 언더메타라는 게 유행인데 그거에 중독된 사람이래요."
"게임 중독자가 원래 저렇게 걸어 다니냐."
"음, 글쎄요."
다시 정적. 십 년 넘게 함께 지냈지만 가끔 대화가 끊어질 때도 있다. 대화를 잇고 싶었지만 슬슬 내려가자는 알파의 말에 계단으로 향했다.


쓸데없이 철저한 보안 시스템이다. 가진 것도 별로 없으면서 인투투스라는 이유만으로 보스는 5단계 보안 장치를 출입문에 설치했다.

인투투스에 있는 수많은 조직들 중 하나인 '체인'. 나의 거처이자 내가 인투투스를 벗어날 수 없는 이유이다.

예전부터 보스는 왠지 모르게 나에 대한 집착이 심했다. 위험한 일이나 불법적인 일은 잘 안 시켰지만, 이딴 조직에 갇혀 사는 게 지겨웠다.

이런저런 보안 장치를 통과하자 조직원 중 하나가 다가와 말했다.

"어이, 카테나씨. 보스가 찾던데."

또 잔소리하려나 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보스의 방으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다. 알파가 따라오려고 했지만 닫힘 버튼을 연타한 끝에 겨우 떼어놓을 수 있었다.

보스의 방에는 체인의 출입문 못지않은 보안 장치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살루스라면 좀 더 깔끔하거나 효과가 확실한 보안 장치 하나만 붙어 있을 텐데. 나는 문 앞에 서서 문을 세 번 발로 찼다. 보스가 내게 정해준 특별한 규칙이다. 절대 문을 손으로 두드리거나 초인종을 누르지 말 것. 본인이 호출했을 땐 문을 발로 세 번 찰 것. 따로 용건이 있을 경우엔 다섯 번 찰 것. 왜 이딴 규칙을 만들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신입 조직원 하나가 초인종을 누르는 순간 감전당한 걸 보니 대충 알 것도 같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들어오라는 말이 들렸다. 내가 방 안으로 들어가자 문이 조용히 닫혔다. 보스는 뒤쪽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그 고철 덩어리는 같이 안 왔나."

"고철 덩어리라뇨. 제 친구인데."

"친구라... 일단 거기 앉게나."

보스는 여전히 시선을 창밖으로 둔 채 말했다. 나는 방 한가운데에 있는 의자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감시 카메라는 총 5대. 도청 장치는 2대. 사각지대가 없도록 교묘하게 설치되어 있었다.

"...우리가 '그냥 조직'이 아니라는 건, 너라면 잘 알고 있겠지?"

보스가 창밖에서 시선을 떼고 말했다.

"에이,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딨습니까. 다른 조직은 가보면 아주 난장판이던데, 여긴 완전 체계적인, 철저한, 뭐 그런 조직 아니겠습니까?"

나는 일부러 조직을 비꼬며 말했다. 보스의 표정이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그걸 그렇게 잘 알면서, 지난주에 유통 차량 충전기를 고장내서 우리 쪽에 엄청난 손해를 입혔나?"

실제 나이는 120살도 넘어가는 양반이 기억력도 좋으셔라. 나는 더 이상 반박하지 않고 방을 나가기로 했다.

"아 그랬었나요? 잔소리하실 거면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 '고철 덩어리'친구가 기다리고 있어서 말이죠."

나는 방문을 쾅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닫고 나왔다. 그때 뒤에서 보스의 비서 목소리가 들렸다.

"아, 카테나씨! 내일까지 이것 좀 부탁해요!"

비서는 나에게 서류 몇 묶음을 던지고는 문을 닫아버렸다. 결국 이게 목적이었구나. 맨날 빙빙 돌려 말하는 답답한 영감탱이 같으니라고.


무거운 서류 뭉치를 들고 엘리베이터를 타려 했으나 재수 없게도 점검 중이었다. 하는 수 없이 비상계단을 통해 내 방이 있는 7층으로 올라갔다. 서류 뭉치는 한 계단을 오를 때마다 무게가 배로 늘어나는 듯했다. 층계참마다 뚫린 창문으로 살루스가 희미하게 보였다. 살루스 사람들도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면 계단으로 올라갈까. 그럼 100층이 넘는 초고층에 사는 사람들은 어떡하지.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7층에 도착했다. 당연하게도 이 쓸데없는 질문에 대한 답은 알 없었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방문을 열자 알파가 방에서부터 뛰쳐나왔다.

"히익, 이 종이들은 다 뭐예요? 또 보스가 일 시킨 거죠?"

"그렇지 뭐. 난 들어가서 이것들 좀 처리하고 잘게."

나는 서류 뭉치를 들어 보이며 말하곤 방으로 들어갔다. 적당히 하고 일찍 자라는 알파의 말을 끊듯이 방문을 닫았다.

책상에 서류들을 대충 던져놓고 침대에 엎어져 스마트폰을 켰다. 테크워치는 해킹 위험이 크다며 스마트폰을 고수한 보스 덕분에 산 것이다. 산더미 같은 서류들을 뒤로하고 SNS를 둘러보았다. 그러던 중 감성적인 사진, 자기 자랑 피드 사이에 섞인 실종자 전단지가 눈에 띄었다. 10년 전 실종. 모닝 유니버스 연구원. 백퍼 그 사람이다. 나는 바로 전단지 밑에 적힌 메일 주소로 메일을 보냈다. 혹시 몰라 메일 제목을 궁금증을 자극하는 제목으로 정했다. 그 제목은


'10년 전 실종된 분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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