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응시하지 마세요. 상처에는 놀라운 특징이 하나 있어요.
그 상처 난 딱지를 자꾸 건드리면 계속 피가 나고 곪지요? 지금 본인은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건 흉터로 그냥 남는 거예요. 돌아가서 긁지 마세요.
-강신주의 다상담 중에서-
돌아가서 긁지 말라는데..나는 다시 긁고 말았다.
생각하면 더 괴롭고 힘들까 봐 덮어두고 있었던 상처였지만.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은 마주할 용기가 생겼다.
과거에서 조금이라도 내가 배우고 나아갈 것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다시 긁어서 피가 나고 곪아도 보고, 다시 또 파 내어서 또 아파도 해 본다.
그러다가 새 살이 돋지 않을까? 그러다가 정말 새 살이 조금씩 돋아날 것만 같아서.
스스로 조금씩 치유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나는 점점 좋아지고 있거든....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는 마음을 숨기는데 익숙했다. 그 조그마한 머릿 속에서 생각도. 감정도. 꼬리에 꼬리를 물어 성을 쌓았다 허물었다 난리가 났는데도, 밖으로 꺼내 표현하지 못했다. 어린 눈에도 울 엄마는 지쳐보이고 힘들어 보여서 엄마 곁에 잘 다가갈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찍 혼자가 되신 시어머니에 남편, 챙겨야 할 시동생 둘. 그리고 두 살 터울의 줄줄이 딸린 아이 셋까지.. 대궐같이 큰 한옥 집에서 살림을 꾸려야 했던 건 울 엄마 혼자 뿐이었다.
동생들과 같이 놀다가도 잘 시간이 되면 나는 할머니 방으로, 동생 둘은 엄마아빠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동생들이 엄마 아빠랑 한 방에서 같이 자는 모습이 그렇게 부러우면서도 같이 자고 싶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부러운 마음이 겹겹이 쌓여갈 때 쯤. ‘동생들이랑 돌아가면서 자면 안되나?’ 하는 생각이 든 적이 있다.
할머니 혼자 주무시면 외로우실테고. 나는 엄마 아빠랑도 자고 싶고. 동생들이랑도 자고 싶고.. 다 같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지 요리조리 머리를 굴려보다가, 돌아가며 자면 해결이 될 것 같았다. 부러운 마음에, 머릿속으로는 별별 생각을 다 했으면서 정작 말로는 한 번도 꺼내지 못했다. 왠지 그러면 안될 것만 같아서. 늘 물끄러미. 한없이 부러운 마음으로. 엄마 아빠 방을 쳐다만 봤다.
동생들은 엄마 치맛자락을 잡고 졸졸 따라다녔다. ‘엄마 안아줘. 엄마 냄새 맡고 싶어’ 라며 엄마 품 안에 쏘옥 안겨 있을 때도 많았다. 나는 그게 그렇게 부러우면서도 엄마에게 표현하지 못했다. 그 언젠가, 강아지 복실이에게 밥을 주며 엄마 눈시울이 빨개진 걸 본 적이 있다. 어린 내 눈에도 우리 엄마는 너무 지쳐 보여서. 힘겨워 보여서 엄마 곁에 잘 다가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인지도 모르겠다. 힘든 엄마를 더 힘들게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어릴 적부터 내내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었는지도. 그래서 마음 속에 있는 말을 잘 꺼내놓지 못했다. 괜히 나까지 엄마를 힘들게 하면 안되겠다 싶어서, 감정 표현을 잘 하지 못했다.
‘내가 내 감정을 표현하면, 모두 불편해지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나를 싫어하지 않을까?’
‘차라리 내가 표현하지 않고, 내 마음을 숨기면 모두가 편할 거야’
마음을 숨기는 것이 버릇이 되어버렸다.
유치원 행사가 있어도. 학교 행사가 있어도. 동생들은 모두 엄마가 와주셨는데, 나는 엄마 대신 할머니가 와 주셨다. 운동회 때도 다른 친구들은 다 엄마 손을 잡고 춤을 추고, 게임을 하는데.. 나만 할머니랑 같이 했다. 할머니가 싫은 건 아니였지만. 어린 마음에 엄마는 왜 나와 같이 안 해 주시지? 왜 내 손 잡아 주시러 오시지 않지? 속상하고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곁에는 할머니가 늘 계셔 주시니까, 엄마 아빠는 나를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되겠지 하고 생각하신 것 같기도 하다. 내가 회장이 되고. 실장이 되어도. 학교 친구들 엄마끼리 모임을 가져도... 엄마는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셨다. 동생들 친구 어머니분들과의 모임은 아직까지도 가시는데 말이다.
‘엄마는 바쁘니까. 힘드니까. 나까지 신경쓰기 힘드실 거야.’
’나만 말하지 않으면 모두가 편할거야’
생각해 보면 그 때도 서운한 마음을 감추며,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고모와 삼촌이 다 결혼하시고, 몇 년이 지나 우리는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자연스럽게 내 방이 생겼다.
하루는 열이 펄펄 끓었는데 끙끙대며 혼자 앓고 있었다. 내가 많이 아픈 걸 눈치챈 엄마는 누 워 있는 내 옆에 가만히 누워 계셨다. 아파서 오한이 심했는데도 엄마가 함께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았다. 그 날이 아마 처음이었을거다. 엄마가 내 옆에서 같이 잔 것이. 갓난 아기였을 때 이후로 엄마랑 둘이서는 처음 자 봐서. 설레어 마음이 쿵쾅댔다. 눈을 감고 누워있다가, 살짝 눈을 떠서 엄마가 있나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그랬다. 아마 엄마는 모르셨을거다. 내가 그때 그렇게도 좋아한 줄은.
동생은 조금만 아파도 엄마 아파. 엄마 나 정말 아파. 엄마 냄새 맡고 싶어. 하며 매번 엄마에게 기대고 자기감정을 표현을 잘 했다. 그런데 나는 어린 시절부터 표현을 잘 안하던 것이 버릇이 되어 버려서, 그러다 보니 마음을 털어 놓는다는 것이 민망하고 어색하기도 해서, 마음 속에 꽁꽁 숨겨둔 말들을 엄마 아빠에게 털어놓지를 못했다. 속이 상한 일이 있어도. 아파도. 웬만하면 혼자 끙끙 앓고 말지.. 엄마 아빠한테 말해봤자 걱정만 하시지 뭘 하겠어 하며 혼자 삭히는 일이 많았다. 나는 그런 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