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지선 Apr 25. 2022

내가 음악과 미술에 기대는 이유

대관령 음악제 - 곽윤찬 트리오

1.

친구와 메모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친구는 생각 나는 곧바로 라면, 양파, 계좌번호와 같은 무작위의 단어들과 문장들을 적는다면, 나는 완벽한 문장과 글이 써지기 전까지는 절대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은 '대충'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친구가 메모해 놓은 단어들과 문장들을 기다려 주다 보면 시간이 지나고 연결이 되기도 한다는 마법 주문과도 같은 말을 들어서 그런 것 같다. 나에게도 마법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그런데 공연 중에는 핸드폰으로 메모를 할 수가 없어서 나의 마법은 좌절됐다. 그런데 갑자기 공연장 앞에서 설문지와 펜을 나누어 주었다. 심지어 펜은 가지라고 했다. 적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마법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2.

오늘 갔던 공연장은 대체로 클래식 연주를 위한 곳이었다. 그런 곳에 재즈를 들으러 오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할까. 그리고 그런 곳에서 재즈 연주자들은 왜 공연을 할까. 재즈는 울림이 크면 방해받아서 듣는 이들도 연주하는 이들도 큰 연주홀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왜 클래식 공연장으로, 강원도 산골짜기로 재즈를 들으러 왔을까.


그리고 이것을 기획한 사람들은 처음 이 공연을 기획할 때 어떤 무너짐을 만났을까. 설문지의 '프로그램 만족도' 항목을 보며 생각한다. 나는 주저없이 '매우 만족'에 체크했다. 그 첫 무너짐이 설문지 결과로 인해서 '것봐 누가 클래식 공연장에서 재즈를 하냐고.' 따위의 말을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단 하나의 '매우 만족'으로 그 기획자의 무너진 마음이 진보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예술을 찾아 떠나온 사람들, 클래식 공연장에서 재즈 연주를 기획한 사람들 모두 삶을 아름답게 만들 줄 아는 사람들이다.


​​

3.

재즈에서의 드럼은 붓 같다. 특히 오늘 연주한 드러머는 더 멋진 붓을 든 화가 같았다. 이렇게도 잡아보고, 저렇게도 눕혀보고, 물감을 많이 묻혀보기도 하고, 물을 많이 섞어보기도 하고, 다른 색을 섞어보기도 하고, 붓도 종종 바꿔보기도 한다. 그림을 그리듯 연주를 했다. 그림을 그리는 연주가다.​


4.

좋은 커뮤니케이터는 상대의 말을 받아 적절히 인용해서 정확하게 해석해 주는 사람이다.


좋은 연주자도 마찬가지다. 메인 악기가 어떤 멜로디를 연주하면 좋은 연주자, 가령 베이시스트는 다음 박자나 다음 마디에 그 멜로디를 받아 똑같이 연주한다. 드러머도 마찬가지다.


더 좋은 연주자는 그 멜로디에 살을 붙인다.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그 멜로디를 받아서 그 멜로디가 얼마나 좋은 이야기인지를 최소 8마디 이상을 들여 아름다운 곡조로 설명해 준다.


좋은 커뮤니케이터도 그렇다. 상대의 이야기를 받고, 적절히 인용하되 얼마나 중요하고 좋은 이야기인지 해석해 주는 것. 그래서 어떤 파트너, 해석자를 만나는지가 중요하다.

​​


5.

Behind라는 곡을 들으며 적는다.


베이시스트가 악기에 몸을 기대어 연주한다. 그 모습이 부럽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악기에 기대어 한다는 것은 멋지고 아름다운 일이다. 나는 어느 것에도 기대지 못한 채 내 이야기를 해와서 그동안 그렇게 아팠나보다.


글과 말은 아프다. 기댈 수 없다.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내가 왜 음악과 미술을 사랑하는지 알겠다.


나는 기댈 곳이 필요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종달새를 잊지 않는 마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