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게 하는 것들
아침, 거실 소파 위의 담요에서 폭신하게 볕을 쬐고 있는 통통한 흰색 야옹이,
10시 30분쯤 가게에 도착해서 틀어놓는 음악, 빌 에반스의 'Little lulu',
버킨콩고와 플로리다 소철, 그리고 다육이들 위로 햇빛이 물결치는 시간,
새로운 주인들과 손을 잡고 나간 식물들의 빈자리,
넘치지도 모자르지도 않게 적당히 비집고 나온 화분의 물,
알차게 핀 장미들,
휘지 않고 목이 꼿꼿하게 서 있는 거베라,
열탕 처리를 할 때 줄기 끝에서 나오는 뽀글뽀글 방울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의 미소,
손님에게서 나는 나와 같은 향수 향기,
꽃다발을 만드는 나와 그 시간을 잠자코 기다리는 손님,
손님에게 수줍게 건네는 바스락거리는 작은 사탕 몇 개,
계산할 때 잠깐씩 머리 위로 쏟아지는 히터의 따뜻한 바람,
한껏 따뜻해진 날씨에 외투를 벗은 채 미소를 머금고 걸어가는 길거리의 사람들,
꽃이 예쁘다고 늘 웃으며 지나가시는 건너편 문구점 사모님,
날마다 날씨 이야기를 하시며 안부를 물어봐 주시는 건너편 편의점 사모님,
창문을 두드리며 웃는 얼굴로 반갑게 양손을 흔드는 동네 카페 사장님,
잠시 들이켜보는 식은 커피 한 모금,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전해지느라 어느새 텅 비어버린 꽃병,
꽃병 설거지를 모두 마친 7시 50분쯤,
온수 매트의 전원 버튼을 딸깍 누르는 순간,
적막한 거실에서 책과 함께 마시는 무알콜 맥주,
모아모아
나의 삶, 나의 행복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