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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helger Nov 26. 2016

마지막 남은 초콜릿 한 조각

런던 여행 9. - 당신도 알고 싶은 보석 같은 <코털트> 갤러리

유럽에서 가장 뛰어난 개인 컬렉션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코털트 갤러리 >를 꼭 가보고 싶었던 것은 우연이었다. 여행과 우연은 오랜 단짝처럼 서로 티격대격 댄다. 그래서 여행 시작은 마치 계획된 대로 흘러가는 듯 하지만, 결국은 우연이 섞여 들어 길도 잃고 그래서 낯선 사람을 만나기도, 생각지도 못한 것에 마음을 뺏겨 몇 번씩이나 그곳을 왔다 갔다 하기도 한다. 그렇게 마침 뒤적이던 책자에서 너무나도 익숙한 그림들을 한꺼번에 발견했고 환호성을 질렀고 한걸음에 코털트 갤러리로 달려가게 되었다.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다 알 것 같은 사람들, 미켈란젤로, 루벤스, 렘브란트, 세잔, 드가, 마네, 고흐뿐만 아니라 드랭과 마팃, 칸딘스키, 피카소 등등... 이 엄청난 컬렉션은 사뮤엘 코털드와 몇몇 개인 수집가들이 모은 작품들로서, 서머셋 하우스 3층의 작은 <코털트 갤러리>에 있는 것들이다. 이 작은 갤러리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유럽에서 가장 뛰어난 개인 컬렉션이라는 평을 받는 갤러리라니, 런던에서 보내는 이 여름에 가장 설레는 미술관 여행이 될 것 같다. 일전에 <배달의 민족> 광고에 등장했던 그 유명한 <풀밭 위의 식사>로 유명세를 탄 마네의 그림이 이곳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 콩콩 뛰는 곳일 텐데 풀밭 위에 자리 깔고 거의 반쯤은 드러누워 놀고 있는 사람들에게 배달 맨이 철가방 속의 음식을 꺼내 놓던 TV 광고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마네의 명화에 '배달맨'을 섞어 넣을 기획을 하다니 놀랄만한 창의력에 수준 높은 일반교양까지 갖췄다고 참신하다고 놀라워했었다. 이뿐만 아니라 고흐의 <귀를 자른 자화상>도 궁금했고 세잔이 그린 유명한 '생 빅트와르 산'도 줄줄이 이 곳에 모두 모여있다니 미술관 기행의 정점을 찍을 것만 같다.


사실 기본적으로 미술관과 박물관의 입장료가 무료인 런던에서 이 곳의 입장료는 다소 비싸게 느껴졌고, 장소도 관광지와는 떨어져 있어 찾기 쉬운 것은 아니었으며 한국인들보다는 아름아름 일본인들이 많이 보이는 곳이었다. 미술관을 찾아가는 길은 멀었지만 신선하고 쾌적했으며 갤러리가 들어있는 '서머셋 하우스'라는 이름에서는 왠지 '말끔하게 다린 하얀 와이셔츠와 정장 바지 차림처럼 댄디 차림'마저 연상되었다. 


영국의 초기 댄디였던 '조지 브러멜'은 아주 세련되게 잘 갖춰 입은 옷차림이란 남들의 '눈에 뜨이지 않는' 옷차림이라고 정의했다. 즉, 결정적인 디테일에서 차이가 나는 섬세한 감각의 옷차림! 그래서 그런지 런던 사람들의 스타일리시한 모습은 혹시나 하고 수고롭게 챙겨간 나의 나름 격식 있는 정장을 튀게 할 것 같지 않았다. 섬세한 눈길이 알아볼 수 있는 디테일의 차이가 있는 옷이야말로 마치 명화로 가득 찬 이 코털드 갤러리 같을 것이다. 이날은 무슨 굉장한 사치라도 부리는 듯 마음이 들떴다. '장기 여행객이 돈 내고 미술관 관람, 그것도 하얀 셔츠에 세미 정장 차림으로!' 하얀 내 품격이 자체 발광할 수 있도록 진정한 판을 깔아 주리라 슬쩍 다짐했다.


서머셋하우스에 가기 위해서는 템플 역에 내려야 한다.
템플 역은 참 고색 창연하다. 기둥들은 어디서도 보지 못하던 붉은 색 장식으로 치장되어 있다.
런던 지하철 노선도, 한강처럼 도시 중심에 강이 흘러 흡사 1분 서울 지하철 노선도처럼 보인다.
저 전면에 보이는 곳이 서머셋 하우스다. 들어가는 곳에는 중정 (안마당)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코털드 갤러리>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은데 랜드 마크 격인 서머셋 하우스나 Strand 거리의 '킹스 칼리지'를 찾는 것이 좋다. 서머셋 하우스는 건물도 르네상스 식의 반듯한 건물인데 이 건물 현관을 통과한 뒤 중정을 지나 가장 뒤쪽 건물 3층에 <코털드 갤러리>가 있다. 주변에는 거대한 공사장과 깊게 파인 지면이 썰렁한 정취를 풍겨주지만 서머셋 하우스 안 중정에서는 분수가 나지막한 물기둥을 위로 쏘아 올리며 런던의 여름 풍경에 상쾌함을 더해주고 있었다.


루벤스와 Rogier von der Weyden의 명화들과 함께 여기에도 루카스 크라나흐의 작품이 어김없이 걸려있다. 밑의 작품은 그의 <아담과 이브>라는 1526년도 작품인데, 두 인물 중 이브는 크라나흐 시니어의 작품에서 늘 볼 수 있는 호리호리한 몸매에 작은 가슴으로 크라나흐라는 이름 없이도 그의 작품임을 잘 드러내고 있다. 사과를 건네는 도도한 이브의 표정과 머리를 긁적이며 주저하는 듯한 아담의 표정이 재미나다. 미술관 산책에서 만난 헐벗은 인류의 시조! 그들을 중동인에서 유럽인으로 변모시키고 유럽의 산야에서 만났을 동물들을 에덴동산에 옮겨온 크라나흐의 상상이 재미있다.


루카스 크라나흐의 <아담과 이브>


마네의 유명한 <폴리-베르제르 술집>도 보인다. 이 그림은 술을 마시고 창녀를 구하는 남자들이 모이는 악명 높은 파리의 바 '폴리-베르제르'의 전경을 그린 그림이라는데, 원래의 버전과 달리 아뜰리에에서 완성한 이 그림은 뒷 배경에 운집한 사람들을 깔아뭉갠듯한 터치감으로 그려내고 바텐더 걸을 황량 해 보이지만 명료한 선으로 대비시켜 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원근법을 깨는 한 장면, 바로 오른쪽에 비친 그녀의 뒷모습과 그녀에게 말을 거는 듯한 나이 지긋한 남자의 모습은 이 술집에서 흔히 보이는 풍경이겠지만, 자세히 보면 그녀의 내리깐듯한 시선과 무표정하지만 홍조를 띤 볼, 통통한 얼굴에서 그녀가 아직 어린 나이임을 짐작할 수 있다. 비록 모파상이 바텐더 걸을 "술과 사랑을 파는 행상인"이라고 말했지만 이 여인이 세상사에 찌든 여인네의 모습은 아니어서 더욱 짠하다. 세기말 오스트리아의 작가 '아르투어 슈니츨러'도 그의 소설 <윤무>에서 세기말 빈의 불안함과 도덕적 타락,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갈망을 그려냈다. 마네의 이 그림에서도 마찬가지로 19세기 말 파리의 일상을 잠시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당시의 성풍속과 열악한 여성의 위치와, 그것을 바라보는 남성의 시선까지도!



밑의 마네의 유명한 <풀밭 위의 식사>도 보면 볼수록 신기한 그림이다. 너무도 현대적으로 잘 차려입은 남자들과 그 옆의 헐벗은 나체의 여인, 무릎 위에 팔꿈치를 괴고 시선을 관람객에게 고정한 채 "왜? 내 몸이 어때서?"라는 듯 도발적인 포즈로 바라보는 여인과의 조합!!! 마네가 루브르 박물관에서 본 르네상스 회화에서는 아름다움의 화신으로 그려졌던 풍만한 여인상, 하지만 현대에서는 더 이상 아름다운 몸의 기준이 풍만함이 아니기에 마네 당시 참 많이 풍자와 조롱을 많이 받았던 작품이 바로 이 작품이었다. 


이런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풍만한 나체상과 현대적인 남성들을 풀밭 위에 매치한 마네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이렇게 언젠가 규범적인 가치를 지녔었고 당시의 미학에 부합했지만 시대 흐름에 따라 변해 온 예술을 인정하지 않은 채 과거의 미학과 규범에 천착하던 당시의 'high art'에 대한 마네의 도전장? 급변하는 시대, 변화하는 매체, 요동치는 가치관을 따라가지 못하고 구시대적인 발상으로 비웃음을 사고 조롱거리가 되는 것들에 대한 풍자?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듯 19세기 회화가 비추는 현대 한국사회의 모습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밑의 그림은 고갱의 <Nevermore >라는 작품이다. 고갱 하면 늘 고흐가 떠 오른다. 둘은 절친이기도 했지만 정신병에 시달리던 고흐는 존경하던 고갱이 자신의 곁을 떠나려고 하자 면도칼로 고갱을 위협하고 결국엔 자신의 귀를 잘라내었다. 받지 못한 모성애 때문에서였을까? 어머니가 사산한 첫 아이의 이름이었을 빈센트에 투영된 죽은 이의 영혼 때문이었을까... 고흐와 고갱의 그림을 나란히 접하니 훨씬 더 비교할 재미가 난다. 


작품 제목을 보니 알프레트 히치콕의 유명한 영화 <까마귀>가 연상된다. 사랑을 잃은 시인이 까마귀가 우는 소리를 'nevermore'라고 듣는 그 유명한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은 까마귀가 서유럽에서 대부분 첩자의 상징으로 쓰였다는 것도 알 것이다. 후면의  까마귀와, 누워서 쉬고 있는 여자를 염탐하는 듯한 두 명의 여자, 이것을 의식하고 있는 누워있는 여인의 눈길, 그림은 전체적으로 감시와 통제로 이루어진 살벌하고 비 인간적인 사회 분위기를 전달하는 가운데 여인의 불안한 심리도 잡아내고 있다. 전체적으로 음울하고 삼엄한 느낌이 오싹하다.


고갱은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타히티에 대한 환상을 품었었고, 우리도 고갱의 이국적인 그림에서 순수한 파라다이스에 대한 동경 따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도 살아보고 겪어보면 먼 곳에서의 동경과 환상이 무참히 깨지는 때가 많다. 프랑스에 대한 환상과 자유와 시크함에 대한 동경도 살아보면 유럽에서 극우파가 가장 득세한 곳이라는 점에 놀라고, 독일적 성실함과 우직한 상품에 대한 찬사도 살다 보면 의외로 너무나 알게 되어 염증을 내게 되는 것이 바로 삶이다. 


고갱이 타히티에 대한 염증과 실망, 분개가 조용하게 표현된 이 작품에서 여행과 삶의 경계를 본다. 삶은 이런 실망과 분노, 염증과 불안이 혼재하는 곳! 그곳마저 사랑하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일상을 여행처럼 이라고 말할 수 있을 듯.

 여행이란 단맛과 적절한 새콤함이 수반된 열대과일 같은.. 아님 사막 한가운데 피는 야자수에 달린 달달한 대추나무 열매 같은 맛이 아닐는지!



고갱이 나왔으니 고흐 그림이 그 옆에 있어야 한다, 역시나!

밑의 그림이 바로 고흐의 <귀를 자른 자화상>이다. 1888년 11월 고갱은 고흐가 지내던 프랑스 남부 아를로 찾아온다. 같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였다. 평생 불안한 정신 상태에서 자신과 싸웠던 고흐가 고갱과의 격렬한 말싸움 후 한쪽 귀를 잘라내고 나서 그린 첫 번째 그림이 바로 이 그림이다. 그는 자신의 불안한 정신상태를 의식했고 조현병의 위험에서 벗어나고자 악착같이 붓을 잡았다. 귀를 자른 후 병원에 있던 고흐가 다시 자신의 스튜디오에 돌아와서 그린 이 첫 번째 그림에서 왼쪽에 이젤이 보인다. 화가로서의 정체성을 의식하고 있는 건가? 아직도 얼굴에는 화가 특유의 멜랑콜리가 보이고, 오른쪽에는 눈길을 끄는 일본풍 그림이 보인다. 고흐가 소장하고 있던 Sato Torakiyo의 복사본이다. 고갱에게 타히티가 이상향이었던 것처럼 고흐에게는 눈 덮인 후지산과 일본의 벚꽃 피는 풍경이 이상향이었다. 


그 누구에게는 이상향일 수 있겠다. 이상향, 그곳은 갈 수 없을 정도로 멀어야 하고, 절대 살아보지 않아야 하며, 겪어볼 수 없는 에덴동산이어야 한다. 그 이상향이 현실로 내려오면 고갱의 그림에서처럼 까마귀가 감시하는 파놉티콘의 세계로 밝혀질지도 모른다. 고흐에게 마지막까지 이상향이 있어서 참 다행이었겠구나 싶다.


고흐 <peach trees in blossum> 자세히 보면 오른쪽에 후지산이 보이고, 아래쪽으로는 벚꽃이 만발했다. 하지만 집은 프랑스 남부 스타일이다, 이상향은 늘 그렇다,


아래 그림은 내 소유도 아니지만 몹시도 아끼는 그림이다. 폴 세잔의 <카드놀이를 하는 사람들 The card players> 1889년 작품인데 사실 세잔은 사과로도 아주 유명하다. 사과라는 과일 이름이 나왔으니 생각나는 건데 이 과일은 참 이미지가 다양하다. 이브의 선악과부터 뉴튼의 사과와 애플의 한 입 베어 물은 사과 그리고 윌리엄 텔의 화살 맞은 사과 그리고 무엇보다 아침 사과 한 알은 의사를 겁나게 한다는 등등의 이야기. 그러나 회화 쪽에서는 원근법에서 해방된 사과 그림으로 현대회화를 낳은 사람이니 그 의미와 중요도가 어마어마한 사람이다. 


다행스럽게도 세잔은 사과 그림을 상당히 많이 그렸고 그 사과 그림은 유럽 미술관에 고루고루 한두 점 정도씩 걸려 있으며 어떻게 봐도 다 비슷비슷하니 그 중요도에 비례해 희박하지도 않은 것이 여러모로 누이도 좋고 매부도 좋고~~ 관람객도 좋고 미술관도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이 그림은 그 흔하고 위대한 세잔의 사과 그림과는 정말 다르다. 세잔은 카드놀이하는 두 명의 농부를 통해서 시간을 초월한, 기념비적인, 정말 프로방스 다운 것을 남기려 했다.


"I love above all the appearance of people who have grown old without breaking without old customs.
- Paul Cezanne -
나는 옛 관습과 단절되지 않고 나이 들은 사람들의 용모를 무엇보다 사랑한다

침탈의 역사, 전쟁으로 인한 단절, 왕가에서 공화정으로, 한복에서 양장으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옛 것과의 단절을 겪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옛 관습과 단절되지 않고 나이 들은 사람들의 용모가 어떤지 알 수가 없다. 문득 그리워지는 것은 서서히 변해가는 자연처럼 서서히 가랑비에 바지 젖듯 변해가는 나이들은 사람들이다. 어떨까 이렇게 나이 들어가는 사람들은! 이 그림 앞에서 한동안 서성거렸다. 


폴 세잔 <카드놀이를 하는 사람들>


세잔의 그림 중 사과 말고 또 하나 중요한 그림이 바로 세잔이 사랑한 고향 엑상 프로방스에 위치한 생 빅투아르 산을 둘러싼  전경을 그린 작품 <생 빅투아르 산의 전경 Montagne Sainte-Victoire with Large Pine (1887)>이다. 시공간에 대한 입체파의 실험을 예견하기라도 한 듯 그의 작품에서는 하늘과 산과 집과 다리 모두 푸른색 계열로 통일되어 있다. 자연을 하나의 통일된 단위로 보았던 그의 입장이 그대로  드러나는 작품! 


그러나 이 작품을 회화로 보기 전 나는 이미 책으로 이 작품을 접하며 궁금함과 호기심을 키웠었다. 바로 페터 한트케의 <세잔의 산을 찾아서 - 불멸의 산 생트빅투아르 기행> - 아트북스, (이중수 역)라는 작품이었다. 그렇게 한트케가 예찬한 생 빅투아르 산은 헐벗은 야산 같아 보였기에 그 중요도와 의미에 더더욱 의아해했었다. 한트케는 어디선가 이 회화를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직접 찾아가서 걸어보며 자신의 기행문을 남겼을 것이다. 


이렇게 여행의 여정은 단 한 점의 그림에서, 단 한 줄의 문장에서 시작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사실 다음에 하게 될 언젠가의 길고도 긴 여행의 시작이 바로 이렇게 우연히 찾아온 미술관에 호젓하게 걸려있는 그림 한 점이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이다.



여러 아름다운 보석 같은 회화들을 감상하자니 시간이 어느덧 후다닥 지나갔다. 이렇게 작은 개인 갤러리에 이렇게 진귀한 작품들이 한꺼번에 걸려 있으니 감상하는 나의 자세는 마치 마지막 남은 초콜릿 한 조각을 손에 들고 아끼고 아끼며 야금야금 빨아먹는 모양새다. 손과 입에 초콜릿 자극 여기저기 묻히며 이제 다 빨아먹고 없어진 허전한 손을 내려다보는 아이 같기도 했다. 


이 날 마지막으로 들른 '세인트 판크라스 역'은 사실 해리포터가 93/4 기차역에서 마법의 세계로 들어간 곳이라 하여 사진을 찍으러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장사진을 치는 곳이다. 에든버러 가는 기차를 예매하러 와서 생각하지도 못했던 그림같이 아름다운 역사를 마주하게 되었다.



대영박물관의 Great court를 설계한 사람과 같은 사람이 설계했나? 비슷해 보인다. 아무리 찾아봐도 어디에도  역사의 재건축을 담당한 사람의 이름이나 이 역사에 대한 설명을 찾을 수는 없었다. 이곳을 스쳐 지나가는 이의 관심과 궁금증을 한껏 자아내지만 해리포터의 명성에 가려져 주목받지 못하는 이 건축물은 마치 살아있는 거대한 거미줄 같기도 하고, 거대한 야자수 나뭇잎 같기도 하고 눈길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일전에도 그런 느낌이 들었는데 영국은 공공건축을 하나의 예술품으로 만드는 신기하고 멋진 재능이 있다.

 

피곤한 일상, 그렇잖아도 힘든 일상에 공동체의 안위와 다가올 미래와 닥친 현재의 상황을 100만이 넘는 사람들이 걱정하는 지금, 시민을 위한 공공건축물을 통해 스쳐 지나가면서라도 시민에게 잠시나마 위로와 평안과 기쁨을 나눠주려는 행정적 사고도 멋지지 않은가! 사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들은 작은 것들이다. 올려다보면 예쁜 천장,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나누고 싶어 하는 마음, 불의를 당하지 않는 당당한 인권, 축적한 개인의 부가 공공의 자산으로 환원되는 상상....코털트 미술관을 나와 세인트 판크라스 역을 지나며 너무나 당연하게 누리는 공공의 아름다움을 눈에 듬뿍 담는다. 내가 본 아름다운 것들도 공공건축물처럼 많은 사람들과 나누기를 바라며~


글, 사진 모두 Arhel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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