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견례: 예 없이 마주함

알뜰한 며느리의 탄생 2

by 정아린


그날의 기억은 오래도록 정리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었다.

나는 이해하지 못한 채,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J는 그 상황을 미리 알고 있었던 듯하다.

그는 그날 나를 보호하지도, 상황을 막지도 않았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나를 그 집으로 데려온 뒤, 어딘가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나는 그때 왜 도망치지 않았을까.

눈앞에서 선명하게 흔들리던 신호들을 보면서도,

그 상황에서 벗어나는 다른 방식을 알지 못했다.


당시 나는 ‘결혼이 원가족으로부터의 독립하는 유일한 출구’라고 믿었다.

그 믿음이 내 삶을 어디로 데려갈지,

어떤 대가를 치르게 할지 알지 못했다.


그날의 표정은 이제 흐릿하지만,

날카롭게 이어지던 소리, 눅눅한 냄새,

숨을 깊게 들이마셔도 시원해지지 않던 공기는 여전히 또렷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도망치지는 못했지만,

그들이 원하던 사과는 하지 않았다.

적어도 어떤 선을 넘지는 않겠다는,

아주 희미하지만 분명한 감각이 남아 있었다.

.

집으로 돌아온 뒤. 나는 친정엄마에게 그날의 일을 전했다.

엄마는 J를 불러 조용히 꾸짖었고, 그는 파혼을 막기 위해 사과를 했다.


그날 이후, 나는 가족의 평화를 이유로 나 자신을 조금씩 깎아냈다.

그렇게 사라진 것들은 대체로 눈에 띄지 않았고, 그 상실을 문제 삼는 사람도 없었다.


이제 그 장면을, 그 어른들의 나이가 된 내가 다시 꺼내보면

그날 울고 있던 사람은 스물셋의 내가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이전의 시간에 멈춰 있던 어떤 부분이었다.


나는 그 장면을 오래 들여다본다.


IMG_6019.jpeg <혼인>, 1998



매거진의 이전글상견례: 서로 만나 뵙는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