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대대적으로 옷 정리를 해야 했다. 이사 때문이었다.
'1~2년 동안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은 버리는 게 좋다'라는 옷장 정리 노하우를 본 적이 있다. 옷장을 열어 한참을 뒤적였는데, 1~2년 동안은 입지 않았지만 자주 입었던 옷들이 많아 선듯 버릴 수가 없었다. 그동안 왜 안 입지 않은 걸까?
그 옷들은 회사를 다닐 때 입었던 옷이었다. 일주일에 다섯 번 출근, 일 있으면 주말에도 출근, 바쁘면 야근. 잘 수 있는 시간은 다섯 시간 길면 여섯 시간 정도였지만 그마저도 불면증 때문에 자야만 했던 시간에도 잘 수 없었다.
회사 생활을 하던 10여 년 내내 아팠다. 일은 즐거웠다. 새로운 일들을 배우고, 하나씩 내가 할 일을 끝내 가는 게 좋았다. 다만, 선을 넘는 사람들 때문에. 보기 싫은 직장동료와 매일, 내가 싫어하는 메뉴를, 너무나도 빨리 먹어야 해서. 같은 말을 꼭 듣기 싫게 해서. 날 감정 쓰레기통으로 써서. 등등의 이유로 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월급이 병원비로 대부분 나갔다. 회사는 계속 가야 했고 악순환이 계속됐다. 병원비를 내기 위해 일을 하고 있는 건가 싶었다.
결국 병이 났다. 체중이 10 킬로그램 정도 줄었다. 살아 숨 쉬는 동안 차곡차곡 쌓여왔던 돌덩이들이 점점 나를 짓눌렀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이러다 큰일이 날 것 같아 살기 위해 병원에 갔다. 심각한 우울증이라고 했다. 상담을 받고 처방약을 먹으며 하루하루가 조금씩 나아지길 바랐다.
그렇게 1년을 더 버티다, 2년 전 나는 회사를 그만뒀다.
단기 아르바이트를 했다. 최대한 인간관계로 스트레스받지 않는 일을 골랐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편한 옷을 입었다. 입어야 하는 옷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옷, 내가 보기에 어울리는 옷만 입었다. 진짜 내 말투, 나의 목소리를 찾았다. 내 시간을 가지며 내 사람들을 챙길 수 있게 되었다. 그제야 마음이 편해졌다.
새 구두를 신으면 발에 맞지 않아 물집이 생기고, 굳은살이 박이고, 며칠을 고생하고 나서야 길이 들여져 편해진다. 하지만 맞지 않는 구두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애꿎은 발만 망가지고 만다. 나에게 회사라는 존재가 그랬던 것 같다. 맞지 않는 구두. 발이 망가지는 줄도 모르고 꾸역꾸역 신어왔던 구두. 버리고 나니 시달려왔던 시간들이 아까웠다. 비로소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나다운 게 어떤 건지 생각할 시간이 생겼다.
다른 사람들과 가는 길이 달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방황할지라도, 난 지금의 내가 좋다. 왜 좀 더 버티지 않았냐고, 남들 다 하는 건데 유독 예민하냐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더 예민하고 버틸 수 없는 사람도 있는 거다. 누군가를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 지금부터 기준. 입지 않는 옷들을 계절마다 정리해 나갈 것이다. 옷장을 열면 아, 이게 나지라는 생각이 들 때까지. 뭐, 당분간은 이렇게 툴툴대겠지만…. '대체 뭘 버리라는 거람!'
내 옷장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옷, 생활한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