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아무 말 대잔치
정원의 백합이 분홍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여름은 꽃들에게 벅찬 계절이라 느리지만 은근한 변화들이 퍽 반갑다.
오늘 오후 두 시에 건강검진이 있다. 고로, 나는 현재 물 포함 금식 중이란 말씀이다. 배고픈 건 참겠는데 평소에도 물을 많이 먹는 나는 지금 물을 못 먹는 서러움으로 성질이 매우 고약해져있다 라는 말씀이다. 원칙적으로는 새벽 4시까지 물을 마실 수 있다고 하는데, 물 먹으려고 새벽 4시까지 깨 있는 넋 나간 이는 없지 않으냐 라는 말씀이다. 그리고, 그 넋 나간 이가 바로 소인 박쿠쿠이옵니다, 아 이 말씀입니다.
저녁으로 삼겹살을 먹고 싶다. 아 정확히 말하면 삼겹살을 먹고 난 다음에 볶아먹는 볶음밥이 먹고 싶다. 아기 가졌을 때 ‘고기 먹고 난 뒤 기름으로 볶은 볶음밥 누룽지’가 먹고 싶어서 우리 신랑 콜레스테롤 수치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하곤 했었지.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내 오랜 꿈은 채식이다. 아이들이 모두 성장하면 반드시 하고 말 것이란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다. 고기를 무척 좋아하는 나에게는 달에 걸어서 가는 것과 마찬가지의 일.
언젠가 책에서 채식주의자인 부부가 딸을 낳았고 부부는 먹지 않지만 성장기의 딸에게 필요한 양질의 단백질로 소고기를 많이 먹였는데 아이가 성조숙증이 와서 괴로워하는 부분을 읽었다. 소를 키우며 들어가는 성장촉진제 때문인 것 같다는 죄책감 때문이다. 물론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아이를 키우면 아이에게 발생되는 모든 원인은 나에게서 찾게 된다. 삶은 참 알 수 없게 흘러간다.
신문기사에 나영석 PD에 관한 기사가 나왔는데 기사 제목이 ‘나불나불만 했는데, 또 전성기‘ 인 것을 보고 물을 못 먹어 성질 고약해진 박쿠쿠는 슬금슬금 열이 오른다. 세상에 그냥 되는 일 없고, 저절로 되는 일 없다. 그 공평한 사실이 매우 버겁다가도 위안이 된다.
그리고 비밀인데 사실 아침 6시 물 한 모금을 마셨다. 오후 건강검진 하러 가는데, 6시 물 한 모금은 괜찮잖아? 거 참 검진하기 딱 좋은..ㄴ..
일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