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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아론 Oct 27. 2024

안녕하세요. 사이코패스 겸 정신분열자 이수입니다(9)

자, 개 이야기는 이쯤으로 하고 보건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 시작할까요? 집으로 가는 길에 시간이 남았으니 이어서 해보도록 하죠.


앞서 말했듯, 보건 선생님은 제 마지막 메시지를 읽은 후 6일 동안 연락이 없었습니다. 일주일째 되는 날에야 메시지가 왔죠. 그녀는 상당히 혼란스러운 모양이었습니다.


[당신 이야기를 듣고 며칠 동안 충격에 빠져 있었어요. 10년 넘게 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라니 믿을 수 없었거든요. 그런데 당신 말이 일리가 있고 논리적이라 확인해 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으로 오빠에게 성폭행 이야기를 꺼낸 거죠. 10년 전에 나를 아파트 계단에서 성폭행하지 않았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어요. 오빠는 무슨 소리냐며 짜증을 내더군요. 지금까지 나를 벌레 보듯이 한 이유가 그거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밀어붙였어요.



“그래, 미친놈아. 네가 나 성폭행해 놓고 지금까지 시치미 떼고 있잖아, 아니야? 빨리 사과해. 사과 안 하면 엄마 아빠한테 다 말할 거야.”


그야말로 안하무인이었죠. 제가 세게 나와야 오빠가 성폭행을 했다면 사과를 할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그는 일체 저에게 대응을 하지 않더라고요. 갑자기 휴대폰을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하는 거였어요.


“거기 경찰이죠? 여기 제 동생이 제가 성폭행했다고 모함하는데, 이 미친년 좀 잡아가 주세요.”


저는 오빠 머리끄덩이를 잡고 사과하라고 악을 썼고, 오빠는 힘으로 저를 떼어낸 뒤 자기 방으로 들어갔죠. 그리고 부모님이 집에 들어오고 나서야 상황이 일단락됐어요. 저는 부모님에게 자초지종을 말하고 10년 전에 있었던 성폭행 사실을 이야기했죠. 그리고 멍청하게 울면서 사실은 범인이 오빠인지는 확실하지 않은데, 오빠 같았다고 말했어요.


부모님은 놀라할 말을 잃었고, 저는 그때 오빠가 범인이 아니라는 걸 확실히 인지했어요. 오빠가 제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옆집 대학생이 아닌지, 아니면 같은 반 학생이 그런 건 아닌지 저에게 이것저것 물었거든요.

오빠가 범인이 아니란 근거는 또 있었어요. 당신이 메시지로 말했죠? 성폭행을 당하기 며칠 전 오빠랑 크게 싸우지 않았냐고.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그 말도 맞았어요. 제가 그때 오빠한테 맞은 적이 있거든요. 아파트 공원에서 담배를 폈다가 오빠한테 걸려서 뺨을 맞았어요. 그리고 부모님에게 일러서 아주 된통 혼났죠. 그렇게 오빠에 대한 분노가 자리 잡은 상태다 보니, 성폭행을 당할 때 저도 모르게 오빠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에요. 제가 봐도 제가 참 멍청한 년이네요.]


저는 그녀의 말을 듣고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저처럼 집안이 풍비박산 나지는 않겠다 싶었죠.


[그러면 대체 저를 성폭행한 범인은 누구일까요? 어떻게 해서든 죽이고 싶은데, 단서가 하나도 없네요. 영영 범인을 못 찾게 되는 건 아니겠죠?]


저는 실망한 그녀에게 답장을 했습니다.


[오빠가 범인이 아니라는 게 당신에게는 양날의 검이군요. 만약 진실을 모른 채 당신이 오빠를 죽였다면 마음은 지금보단 편해졌을 겁니다. 하지만 가정은 파탄이 나고 오빠는 억울한 죽음을 맞이했겠죠. 하지만 괜찮습니다. 실망할 필요도 없고요. 범인을 못 찾는 건 아니니까요. 지금부터 범인을 찾는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첫째, 10년 전 당신을 성폭행한 그 남자는 우발적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술 냄새가 났다면 술김에 그런 것으로 볼 수 있으나, 당신은 술 냄새를 전혀 맡지 않았죠.


둘째, 당신이 성폭행을 당한 곳이 몇 층인가요? 적어도 그 층에 살고 있는 사람은 절대 아닙니다. 우발적인 상황이 아니고서야, 범인은 절대로 자기 집 앞마당에서 범행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셋째, 범인은 당신이 몇 층에 사는지 확실히 아는 사람입니다. 당신이 사는 층이 아니면서 가장 한적한 층을 선택했을 거예요. 한 마디로 아파트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넷째, 당신은 그 아파트에서 얼마나 살았나요? 성폭행을 당한 후 몇 년 이상 살았다면 그것이 좋은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제가 말했죠? 한 번 쾌락을 맛본 자는 또 그 맛을 보고 싶어서 한다고. 만약 범인이 당신 아파트에 살고 있다면, 분명 성범죄를 또 저질렀을 겁니다. 그러니 그 아파트에서 성범죄와 관련된 소문을 한 번도 듣지 못했다면, 범인은 높은 확률로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지금 이야기한 것을 토대로 추리를 해보세요. 당신은 제가 본 여자 중 가장 지적인 사람이니 범인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그 메시지를 보내 놓고 그녀가 범인을 찾을 때까지 기다렸답니다. 그녀가 어떤 해답을 가지고 돌아올지 무척 궁금했죠. 그리고 2주일 후, 드디어 그녀에게서 메시지가 왔습니다.


[당신 이야기를 듣고 하루 종일 고민했어요. 제가 성폭행을 당한 후, 아파트에서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었는지 부모님에게 물었어요. 부모님은 그 대답보다 왜 지금까지 성폭행을 당한 걸 말하지 않았냐며 우시더라고요. 벌써 10년이나 된 일인데, 몸은 괜찮냐며 마치 어제 겪은 일처럼 대하더라고요. 아버지도 말없이 눈물을 뚝뚝 흘리시는데 처음으로 아버지에 대한 따뜻함도 느꼈어요. 사실 저는 아버지도 벌레 보듯 했거든요. 모든 남자가 혐오스럽다 보니 아버지마저도 딸인 절 여자라고 볼 거라 생각했죠. 게다가 오빠가 범인이라고 생각했을 때는 왜 저런 미친놈을 낳은 건지 원망스럽기도 했고요.


각설하고 결론부터 말할게요. 희소식이에요. 당신 덕분에 범인을 찾았어요. 저를 성폭행한 미친놈은 지금도 오빠랑 친하게 지내고 있는 친구였네요. 부모님 말로는 아파트에서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해서 추리한 결과예요.


외부인이면서 아파트를 잘 알고, 제가 몇 층에 사는지 아는 사람. 오빠 친구밖에 없었어요. 그 사람도 학창 시절에 놀던 사람인데, 제가 아파트에서 몰래 담배 피우는 걸 봤거든요. 심지어 담배를 처음 배우게 된 것도 그 오빠 때문이에요. 친오빠 몰래 단둘이 아파트 옥상에서 담배를 피운 적도 있고, 계단에서 핀 적도 있었어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제가 성폭행을 당한 후, 그 사람은 단 한 번도 우리 집에 놀러 온 적이 없네요. 불현듯 그 생각이 떠오르자 그 미친놈이 범인이라는 걸 확신했죠. 우연찮게 길에서 몇 번 본 적도 있었는데, 저는 늘 아는 체하지 않았어요. 거기다 성인이 된 후로도 그 사람한테 몇 번씩 연락이 온 적이 있었거든요. 그것도 항상 밤늦게. 물론 저는 늘 연락을 씹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소름이네요. 그 새끼는 그때도 저를 어떻게 해볼 심산이었던 게 분명해요.


일단 가족한테는 말하지 않고, 벌레 같은 새끼한테만 연락했어요. 문자로 10년 전에 네가 저지른 짓을 다 알고 있으니 사죄하라고 했죠. 답장은 잠시 시간을 달라는 거였어요. 그리고 며칠 후 만나자는 메시지가 왔어요. 저는 만나기 전에 일단 문자로 성폭행을 한 걸 말하고 사과하라고 했는데, 증거로 남을 까봐 계속 피하더라고요. 일단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만나기로 하고 만났는데... 결과는 이거네요.]     


그녀는 메시지에 이미지를 첨부했습니다. 저는 뭔가 하고 이미지를 클릭했죠. 그리고 사진을 보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답니다.     


 그녀는 눈이 시퍼렇게 멍들고 코가 부러진 채로 병원에 입원해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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