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럭저럭 돌아가는 가게 안에서 정해지는 딸의 몫
나는 올해 서른 살이다.
부모님과 함께 돼지국밥집을 운영하고 있고, 하루의 대부분을 가게에서 보낸다. 문 열기 전 준비부터 마감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일까지 포함하면 가게의 흐름을 거의 다 알고 있다. 그런데 내 월급은 100만 원이다. 이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대개 “가족이니까 그렇지”라는 말로 정리한다.
우리 가게는 흔히 말하는 실패한 가게는 아니다.
문은 꾸준히 열려 있고, 손님도 일정하게 온다. 직원도 있다. 그렇다고 특별히 잘된다는 말을 듣는 집도 아니다. 망하지도, 대박이 나지도 않은 상태. 그래서 나는 이 가게를 ‘중박’이라고 부른다.
문제는 이 ‘중박’이라는 말이 가게의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는 점이다.
장사가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과, 그 안에서 누군가가 안정적으로 월급을 받으며 산다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다. 가게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비용들은 늘 먼저 빠져나가고, 가족의 노동은 자연스럽게 그다음이 된다.
나는 스무 살 초반에는 한 달에 50만 원을 받았다.
그땐 ‘배우는 중’이라는 말로 스스로를 설득했다. 시간이 지나면 달라질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책임이 늘어난 지금도, 내 월급은 100만 원 선에 머물러 있다. 최저임금보다 적은 돈으로 서른을 맞이하는 기분은 생각보다 담담하지 않다.
이 글은 누군가를 탓하기 위해 쓰는 글은 아니다.
다만 ‘중간 정도 되는 식당이면 가족은 괜찮을 거야’라는 생각이 왜 현실과 어긋나는지, 그 안에서 일하는 자식의 월급이 어떤 구조 속에서 정해지는지, 내가 겪은 이야기를 차분히 적어보려 한다. 혹시 비슷한 선택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글이 감정이 아니라 판단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가족의 월급은 왜 항상 마지막일까
가게를 운영하면서 가장 먼저 계산되는 건 직원의 월급이다. 이건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그다음은 재료비와 각종 고정비, 그리고 미루기 어려운 비용들이다. 이런 것들이 빠져나가고 나면 남는 몫을 가족이 나눈다. 가족은 사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장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는 인건비이기 때문이다. 월급을 늦게 받거나, 적게 받거나, 아예 안 받는 선택도 가능한 사람이 바로 가족이다.
‘조금만 더 버티면’이라는 말의 무게
가족 장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다. “이번 달만 버티자”, “조금만 지나면 나아질 거야.” 이 말들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 늘 현재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 가게를 지키기 위해 누군가는 계속해서 자신의 몫을 미룬다. 그렇게 미뤄진 시간은 숫자로 남지 않지만, 생활과 마음에는 분명한 흔적으로 쌓인다. 나는 그 흔적을 월급 명세서가 아니라 통장 잔고와 미래 계획의 부재로 체감해 왔다.
100만 원이라는 숫자가 의미하는 것
그래서 내 월급 100만 원은 능력의 평가라기보다, 가게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 정해진 선에 가깝다. 더 받으면 가게가 불안해지고, 덜 받으면 생활이 흔들리는 지점. 그 중간 어디쯤에 멈춰 있다. 이 금액은 내가 얼마나 일했는지를 정확히 반영하지도, 앞으로의 삶을 설계하게 해주지도 않는다. 다만 ‘지금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이라는 의미만 남는다.
중박 식당에서 일하는 딸의 월급이 100만 원인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누군가의 욕심이나 무능 때문이라기보다는, 가족 장사라는 구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낸 결과에 가깝다. 이 구조 안에서 나는 늘 가게를 먼저 생각했고, 나 자신은 나중으로 미뤄왔다. 이 글을 통해 누군가가 같은 선택을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정확히 고민해 볼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다음 글에서는, 가족 식당에서 ‘사장’이라는 자리가 왜 애매해지는지에 대해 적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