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꾼? 허풍쟁이?

by 아르페지오

IT 업계에 오래 있다 보니 IT 사기꾼들을 많이 보았다. IT 업계의 사기꾼들은 일반적인 사기꾼들보다 훨씬 교묘하다. 그들의 행각은 어찌 보면 사기이고 어찌 보면 허풍이기 때문에 법적인 조치를 취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그들은 일반적인 사기꾼들과 마찬가지로 사기 행각으로 큰돈을 번다.


IT 업계에서의 사기는 강의료, 서적 판매 같은 행위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개개인이 지불한 돈은 얼마 되지 않아서 대부분의 경우 속은 것을 알게 되더라도 법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겨우 몇 만 원 때문에 소송을 하기도 어렵고 허접한 강의에 돈을 지불하고 쓰레기 같은 책을 샀다고 고소를 하기도 번거롭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기꾼들은 이러한 사실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수백만 원 혹은 수 천만 원의 이익을 취한 후 잠적해 버린다.


사기꾼들은 IT 업계 변화의 속도가 다른 업계보다 훨씬 빠르다는 점을 이용한다. 90년대 Java라는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가 세상에 나왔을 때 사기꾼들은 얄팍한 지식으로 강연을 하고 책을 출판해서 돈을 벌었다. 업계에 있는 사람들 모두 그들의 지식이 얄팍하다는 것을, 그들의 책이나 강연은 절대 돈을 내고 들을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취업을 준비하거나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은 신이고 교주였다. 사기꾼들이 유료 강연을 하면 수 백 명이 몰려들었고 책을 내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Java 개발자 몸 값이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았고 Java 개발자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보다 힘들었던 시절에 그들이 책을 내고 강연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은 업계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얄팍한 실력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에 강연을 하고 책을 써서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대중들은 사기꾼들의 번지르한 언변에 속아서 기꺼이 주머니를 열었다.


Java 열풍이 가라앉고 모바일 시대가 도래했을 때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사기꾼들은 다시 나타나서 같은 행각을 반복했다. 한때 Java 전문가였던 그들은 어느새 모바일 전문가로 탈바꿈해서 강연을 하고 책을 출간했다. 익히 그들의 실체를 알고 있었던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을 안타까워했지만 딱히 취할 수 있는 조치도 없었다. 얄팍한 실력으로 책을 냈다고 고소를 하거나 쓰레기 강연을 한다고 소송을 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추천 알고리즘이 업계에서 떠나서 조용히 지내고 있는 나에게 잊고 있었던 햔 사람의 근황을 알려주었다. 그는 한 때 같은 회사에 근무했던 사람이다. 그는 회사 업무는 등한시하면서 책을 내고 강연을 하다가 결국 회사를 그만두었다. 이 사람은 또다시 AI라는 테마로 책을 출간하고 강연을 하고 있었다. 문과라서 IT 기술이 너무 어렵다던 그가 20년 만에 어떻게 AI 전문가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예전 기억이 떠올라서 씁쓸했다.


나와 같은 회사에 근무할 때 그는 신제품의 기능을 숙지하지 못해서 회사에서 쫓기듯이 퇴사했다. 누구보다도 제품 기능을 잘 알고 있어야 하는 프리세일즈 엔지니어가 새로 출시된 제품 기능을 모르니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고 궁지에 몰려 있었다. 본인의 주 업무를 하지 못하니 다른 팀으로부터 불만이 쏟아졌고 이런 사실이 지사장님에게까지 알려져서 결국 퇴사했다. 그런데 더 놀라웠던 사실은 회사에서 궁지에 몰려있으면서도 우리 회사 제품에 대한 책을 출간하고 강연을 하고 다녔던 것이다. 새로 나온 제품 기능을 몰라서 회사에서 매일 죄송하다는 말만 달고 사는 사람이 외부에서는 제품 전문가로 탈바꿈해서 강연을 하고 책까지 출간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인간의 이중성에 대해 배웠다. 지사장님이 업무에 지장을 주는 외부 강연을 중단하고 제품 공부에 집중하라고 했지만 그는 따르지 않았다. 제품 설명서가 영어로 되어 있어서 공부하기가 힘들다, 시간이 없어서 공부를 못했다, 문과 출신이라 기술이 어렵다는 등 변명만 늘어놓으면서 여전히 외부 강연을 하고 다녔다. 결국 여기저기서 불만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궁지에 몰린 그는 자의 반 타의 반 사표를 내고 회사를 떠났다. 나의 기억 속 그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불가능한 사람이었다. 노력을 하지도 않으면서 세상을 탓했고 공부를 하지 않으면서 변명만 늘어놓았다. 회사에서 하지 말라는 강연을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지속하면서 회사에도 이익이 되는 것이라는 괴변을 늘어놓았다.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인물이라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혀가던 그가 20년이 지난 후 AI라는 테마로 똑같은 행각을 벌이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 이런 사실을 발견했을 때 도저히 그냥 넘길 수가 없어서 무언가 해보려 했다. 그런데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할수록 그의 실체를 밝히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진실을 파해치려면 내 전문 분야도 아닌 AI를 공부해서 필요도 없는 그의 책을 사서 필독을 한 후 잘못된 내용을 지적해야 했다. 혹은 그의 유료 강연을 들은 후 강연 내용을 조목조목 분석해서 그가 전문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했다. 두 가지 모두 나의 생업을 저버려두고 해야 하는 버거운 일이었다. 쓸데없는 돈을 쓰고 있는 사람들이 안타까웠지만 나의 모든 시간을 그의 실체를 밝혀내기 위해 쓸 수는 없었다.


세상은 참 아이러니하다. 사기꾼은 돌고 돌아서 다시 똑같은 사기를 치고 사람들은 여전히 속아 넘어간다. 그리고 여전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부디 IT 업계가 갑자기 바뀌었을 때 혼란을 틈타서 재빠르게 책을 쓰고 강연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을 너무 믿지 말기 바란다. 지금 유행하는 기술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현업에서 할 일이 많아서 강연을 하러 다니고 책을 낼 시간이 없다. 그나마 책은 짬짬이 쓸 수 있으니 전문가도 할 수 있는 영역이지만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강연을 업으로 돈을 벌고 있는 사람은 특히 주의해야 한다.


IT 업계에 겨우 25년 있었는데 똑같은 사람이 두 번씩 비슷한 행각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글을 남긴다. 그래도 누군가는 이 글을 보고 사기꾼이 판치는 세상에서 옥석을 가려내길 바라면서. 혹은 20년의 시간이 지났으니 그가 개과천선하여 제대로 된 책을 내고 제대로 된 강연을 하고 있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