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백한 지구야
외로운 것이냐
보이저호의 외로운 여행이 이제 외계인 만나는 일만 남았다고 해
일 만년 이 만년 지나면
지구인이 외계인 될지도
일 만년 이 만년 지나서
보이저호의 레코드판이 지구로 되돌아온다면
지구에서 떠난 지구인이 그 음반을 발견한다면
어떤 심정일까
그동안 아무도 못 만났던 거니, 보이저 호
누가 가장 외로울까
창백한 지구일까
보이저호일까
보이저호에 실린 레코드판을 다시
발견한 일 만년 이 만년 후의 지구인일까
누리호가 외로워 보이는 것은 일 만년 이 만년 후의
외로움에 비하면 일도 아니구나
지구를 바라보는 보이저 호
창백한 지구가 외로워 보이는 거니
너의 시선으로 보니 지구가 괜히 짠하다는 생각이 들어
지구라는 우주선 안에서 보면
저 넓은 우주가 있는데도
우리가 가서 숨 쉴 곳이 없는 우주가
조금 황당하다는 생각을 하곤 해
그게 말이 되는 거니
저렇게나 빈 공간이 많고 행성도
많은 데
갈 데가 없다니
마치 지구 속 인간의 모습 같구나
보이저호
일 만년 이 만년 후에 지구인을 만나면 너도 정말 어이가 없겠다
만날 외계인이 없어서 다시 지구인을 만나다니
그 순간
참! 서로가 고독이
사무칠 것 같다
어쩌면, 일 만년 이 만년
후면 지구인은 서로에게 외계인이 되어 있을지도 몰라
보이저호
희망을 버리지 말자
외계인을 꼭 만날 거야
웜홀이라는 것도 있으니까
어떻게든
일 만년 이 만년 후에는 그것이 무엇이라도 만나도록 하자
창백한 지구야
보이저호 보다는 덜 외로울 거야
너의 심연 안에는 바글바글한 시뮬라크르들이 있잖니
어떻게든 이들이 일 만년 이 만년 후가
되면 답을 찾았거나 찾을 정도쯤은 되어 있겠지
그동안 네가 많이 고독하겠지만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말고
시시포스처럼
그곳에 잘 있어야 해, 알겠지
이탈하면 안 돼!
다시 올게
* 창백한 푸른 점... 지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