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인간은 시간을 보내는 데에만 집중하지만, 재능을 가진 사람은 시간을 활용할 줄 안다. 편협한 사고를 하는 자가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는 이유는 그의 지성이 의지를 위한 동기의 매개체 이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눈앞에 동기가 없으면 의지는 휴면에 들어가고 지성은 멈춰버린다. 지성은 의지와 똑같이 혼자서 활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인간의 모든 힘이 끔찍한 정체기에 빠져버린다. 이것이 바로 지루함이다. 이런 지루함에 대처하는 방법은 임의로 가정한 일시적 동기를 의지 앞에 밀어붙여 의지를 자극해야 한다. 이로써 지능이 동기를 받아들여 활동하게 만든다. 이런 동기의 효력은 실제로 타고난 동기에 비하면 은화와 지폐의 관계처럼 자의적이다.
독립과 여유는 중용과 절제의 대가다. 이 조건을 달성한 자는 향락의 외부 원천에 휘둘리는 사람과 다르다.
지적인 생활은 특히나 통찰과 인식이 풍부해지면서 일관성을 갖고 발전을 거듭하면서 온전히 완벽한 예술품이 된다. 다른 사람들이 추구하는 실제적인 삶, 자신의 영달만을 추구하고, 깊어가기는커녕 자기의 구태의연한 생활을 연장하는 데 안주하는 삶과는 대조적이다.
나 자신의 가치와 외부의 평가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 제대로 알아야 한다.
다른 사람의 생각에 과도하게 가치를 두는 일은 어디서나 있는 망상이다. 이런 망상은 우리 본성 자체에 뿌리내리고 있거나 사교 문화의 탄생과 문명의 발달로 생겨났을 수 있다. 어찌 되었든 간에 그 망상은 인간이 하는 모든 일과 인간의 행복에 과도하고 해로운 영향을 끼친다. 그 영향을 따라가 보면 알 수 있듯이, 인간은 사람들의 '평판의 노예'가 되어 불안한 삶을 산다.
미래에 다가올 재앙을 인간이 불안해하는 일은 너무나 당연하고, 그 시기가 명확하다면 이 역시 재앙이다. 하지만 이런 재앙은 극소수일 것이다. 왜냐하면 재앙은 그냥 닥쳐오거나 어쨌든 닥치기 마련이지만, 그 일이 일어날 시기는 전적으로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이런 두 가지 재앙을 일일이 신경 쓰다가는 한시도 평안한 날이 없다. 따라서 불확실한 재앙이나 올 시기가 정확하지 않은 재앙 때문에 인생의 평화를 잃고 싶지 않다면, 그런 재앙이 그리 빨리 오지 않을 것처럼 바라보는 데 익숙해져야 한다.
인간의 행복과 고통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의식이 무엇으로 채워지고 무엇에 열중하는지에 달려 있다. 전반적으로 순수하게 지적인 활동은 성공과 실패가 끊임없이 번갈아 일어나며 충격과 재앙을 겪는 현실 생활보다 정신을 뛰어나게 하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인간과 관련한 일이나 사건은 완전히 별개이며 순서도 없고, 서로 관련도 없고, 가장 뚜렷하게 대조를 이루고, 인간의 일이라는 점 외에는 공통점도 없이 무작위로 일어난다. 그래서 인간의 생각과 근심은 이에 걸맞게 두서가 없어야 한다. 따라서 인간은 한 가지 일을 할 때 나머지는 전혀 신경 쓰지 말고 저마다 알맞은 시간에 처리하고, 즐기고, 인내해야 한다. 생각의 서랍을 하나씩 가지고 있어 하나를 열 때는 다른 서람들이 닫혀 있어야 한다. 그러면 무겁게 짓누르는 근심이 현재 누리는 작은 향락을 방해하거나 평온을 빼앗아 가지 못한다. 그리고 하나의 성찰이 다른 성찰을 밀어내지 않고, 중요한 일 한 가지에 신경 쓴다고 해서 많은 사소한 일을 소홀히 하는 등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생각과 말 사이에 넓은 틈을 벌려두어야 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