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음악으로 가득한>, 다카기 마사카츠

by 아라의 서점일기

오늘은 책이 아니라 손님에 대한 이야기, 자랑을 하고 싶어서 이 책을 소개하기로 마음먹었다. 특별한 손님이 고른 책은 나에게도 특별하고 기특한 책인 법이니까, 그 자리에 있어줘서 고마운 마음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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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얼굴을 잘 기억하는 편이 아니다. 영화나 드라마 등을 봐도 배우의 이름이나 제목, 내용은 기가 막히게 기억하는데 얼굴과는 매칭이 잘 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는 큰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작은 동네 서점을 운영하다 보면 종종 곤란한 일들도 생기기 마련이다. 거주지 한복판에 위치한 공항서점은 사실 이미 방문한 적이 있는 손님이 대부분이다. 얼굴은 잘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고른 책이나 나눈 대화, 목소리 등을 기억해 눈치껏 대화를 나눈다. 번외로 잠시 서점을 대신 운영했던 남편의 경우에는 나와는 정반대이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이미 온 적 있는 손님임을 알고 곧바로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나로서는 정말 부러운 재능이 아닐 수 없다.


흐린 하늘에 거센 바람이 불어오는 12월 15일 일요일 오후 세시 반, 익숙한 손님이 서점 문을 열고 들어온다. 문을 열고 들어올 땐 단순히 인사 한 마디, 잠깐의 눈 마주침이 전부지만 분명 '익숙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을 때가 있다. 입구부터 조용히 새로운 책이 들어왔는지 살피고 조심스럽게 책을 집어 들어 살핀다. 여느 손님과 다르지 않은 동선으로 계산대에 도착했을 때 고른 책을 보고 인사를 건넸을 때 느껴지는 온화한 목소리와 인사에 전에 왔던 손님이었음을 확신했다. 지난번 쿠폰을 드렸었는지 묻자 화사하게 웃으며 "저번도, 이번도 마스크도 끼고 있었는데 어떻게 아셨어요?"라고 되묻는다. 사실 알아채고 사담을 건네는 것을 불편해하는 손님도 있기 때문에 긍정적인 반응으로 돌아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저는 오히려 얼굴은 기억을 잘 못하는데요, 특유의 인상이랄까요. 분위기로 바로 알아뵈었어요."


어떤 수식어로도 대신할 수 없는, 나만의 고유의 분위기가 있다는 건 참 근사한 일이다. 특정한 수식어로 정형화된 것이 아닌 행동, 말투, 취향에서 오는 그야말로 '나답다'는 것이다. 이렇게 나다운 것이 타인에게 인지되어 타인을 이끌게 되는 힘을 우리는 '매력'이라고 부른다. 나에게 이 손님은 근사한 매력을 가진 사람으로 느껴졌다. 이 손님은 서점에 한 권 남은 책, <음악으로 가득한>을 골라 계산대로 가져왔다.


<음악으로 가득한>의 작가는 음악가이자 미디어 아티스트 다카기 마사카츠, 국내에는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늑대아이>, <괴물이 아이>의 음악 감독으로 알려져 있지만 일본에서는 NHK 뉴스나 지브리 다큐멘터리, 공영 철도나 항공사를 위한 사운드 트랙, 광고나 방송 등 다채로운 음악으로 세계에서 존경받는 일본인 100명 중 한 명으로도 선정될 정도로 사랑받는 아티스트이다. 이 책은 그런 그의 유일한 산문집으로 단 몇 문장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섬세하고 예민한 작업을 하는 아티스트인지 금세 알 수 있다.


어떤 일에도 틀리지 않는 정답을 찾아야 하고 가능한 손해 보지 않으려는 게 요즘 세상의 상식이라지만, 그건 말 그대로 모든 걸 한 가지 색깔로 물들이는 것과 같다. 개인적으로 나는 ‘어떻게 해도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마치 산속의 야생화처럼 이곳저곳 동시에 피어나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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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 드문 산골 마을에서 생활하는 그는 자신의 음악에 자연의 소리를 즉흥적으로 함께 녹음하는 '마지널리아'라는 장르의 음악을 시리즈로 제작하고 있다. 2017년부터 이어져 온 프로젝트는 2024년 11월, 180개의 곡을 완성했다. 그의 음악에 새소리, 바람소리, 벌레소리 등 자연에서 비롯된 제한되지 않은 무한의 영역의 순간을 가감 없이 녹음해 작품으로 완성한다. 수려한 문체로 기록된 그의 에세이는 생각보다 무게감 있게 전개된다. 음악가로서 수많은 작업을 하고 도전을 해오며 커리어의 정점에 선 그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탐구하고 발견하기 위해 여전히 먼 길을 갈 준비를 하고 있다. 산골로 들어가 지금까지 그가 음악 생활의 근간을 이루던 서양 악기들을 배제하고 나의 음악적 정체성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찾고 고민한다. 우리는 그의 '마지널리아' 시리즈를 통해 그 여정에 함께할 수 있다.


"오늘도 좋은 책을 발견해서 너무 기뻐요!"


계산을 마치고 떠난 손님이 1분이 채 되지 않아 다시 서점 문을 열고 빼꼼히 마치 소설 속 대사 같은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만약 사람의 인생을 소설로 만든다면, 그 손님이 주인공인 소설은 분명 많은 사람을 행복하고 가치 있게 만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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