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후기] ‘피아니스트’ 조성진으로의 발돋움

2025. 07. 01. 조성진 피아노 리사이틀 후기

by Ars Classica






모리스 라벨

Maurice Ravel (1875-1937)



그로테스크한 세레나데

Sérénade grotesque, M.5 (1893)


고풍스러운 미뉴에트

Menuet antique, M.7 (1895)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Pavane pour une infante défunte, M.19 (1899)


물의 유희

Jeux d'eau, M.30 (1901)


소나티네

Sontatine, M.40 (1903-1905)



거울

Miroirs, M.43 (1904-1905)


밤의 가스파르

Gaspard de la nuit, M.55 (1908)



하이든 이름에 의한 미뉴에트

Menuet sur le nom d'Haydn, M.58 (1909)


우아하고 감상적인 왈츠

Valses nobles et sentimentales, M.61 (1911)


프렐류드

Prélude, M.65 (1913)


보로딘 풍으로

À la manière de Borodine, M.63/1 (1912)


샤브리에 풍으로

À la manière de Emmanuel Chabrier, M.63/2 (1912)


쿠프랭의 무덤

Le tombeau de Couperin, M.68 (1914-1917)






현대 라벨 연주자들은 내가 생각하기에, 모두 마르셀 마이어(Marcel Meyer, 1897-1958)와 블라도 페를뮈테르(Vlado Perlemuter, 1904-2002)의 사이에서 자신의 답을 찾는다. 두 사람 모두 라벨에게 직간접적으로 지도를 받은 바 있으며, 당대 가장 위대한 프렌치 피아니스트였던 알프레도 코르토(Alfred Cortot, 1877-1962)의 제자이기도 했다. 동 시기 잘 알려진 라벨 스페셜리스트들이 몇 더 있음에도 — 예컨대, 마르그리트 롱(Marguerite Long, 1874-1966)이나 장 두아옌(Jean Doyen, 1907-1982)처럼 — 내가 이 두 사람을 라벨 연주의 두 전형으로 꼽은 이유는, 두 사람의 연주가 실로 양극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같은 사람들에게 지도받았음에도 같은 곡에 대해 이렇게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두 사람의 연주는 다르다. 오늘날에는 페를뮈테르 쪽이 작곡가 본인에게 곡 하나하나에 대해 디테일한 지도를 받았다는 이유로 특히 명성이 높은 편이지만, 규범적인 페를뮈테르의 연주에서는 느껴지지 않는 영감과 생동감을 마이어의 것에서 느낄 수 있다.


https://youtu.be/RzMjMPjLXrQ?si=ZVBUhvFFykhGZew0

모리스 라벨 - 물의 유희, M. 30. 블라도 페를뮈테르.


https://youtu.be/WQRxonMIBDU?si=qJBYQ1_ZSV0NARR_

모리스 라벨 - 물의 유희, M. 30. 마르셀 마이어.


한편 라벨의 작품은 본인의 부정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화성적 색채 탓에 드뷔시(Claude Debussy, 1862-1918)를 비롯한 소위 ‘인상주의’ 음악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 형식이나 구조적인 측면에서는 고전적인 어법을 차용하여 자신의 스타일로 풀어낸 경우가 많기에 때로 그의 스타일을 ‘신고전주의’로 분류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드뷔시보다도 양식적으로는 리스트 말년의 작품들과 가장 유사하며, 테크닉적으로도 자신의 작품을 어떻게 연주해야 하는가 물었던 이에게 ‘리스트처럼 연주하면 된다’고 답했을 정도로 리스트의 피아니즘과 맞닿아 있는 측면이 많다.


이러한 다면적인 특성으로 인해 연주자는 이들 측면을 모두 고려하여 연주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조성진의 음반에 담긴 연주는 앞서 언급한 두 연주자의 스타일을 철저히 연구하여 훌륭하게 조화를 이뤄낸 듯한 결과물로 느껴졌다. 이 라벨 전집을 처음 듣고 난 뒤에, 실로 바부제(Jean-Efflam Bavouzet, 1962-)의 앨범 이후로 처음으로 들을 만한 라벨 피아노곡 전집이 나왔다는 감탄이 앞섰다. 근 10년 간 정규 앨범의 행보가 특히 아쉬움이 많이 남았던 만큼, 처음으로 명반의 반열에 오를만하다고 생각한 앨범이었기에 더욱 반가운 참이었다. 이런 기대를 안고, 원래는 여러 어려움으로 인해 구태여 실연을 들으러 가지 않았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공연에서 들어보게 되었다.


흔히 조성진의 장점을 두고, 10여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쇼팽 콩쿠르 우승자’의 인상이 강하게 남아 있는 연주자답게 놀랍도록 치밀하고 기계적인 정확성과 계획적인 연주를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적어도 요즈음, 특히 실황에서는 오히려 자신이 ‘연주하고자 했던 그대로 연주‘하는 것을 지양하는 것처럼 들렸다. 왜일까? 배우들의 경우에도 한 작품이 히트하고 나서 다른 배역을 맡으며 대중들에게 굳어진 이미지를 벗고 탈바꿈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가? 아마도 조성진은 더 이상 ‘쇼팽 콩쿠르 우승자’가 아닌 ‘피아니스트 조성진’으로 대중들이 자신을 기억해 주길 바랐던 것이 아닐까?


이번 연주에서도 그런 그의 의도는 뚜렷하게 전달되었다. 나는 특히 요즘 콩쿠르 위주의 신예 발굴이 이어지며 기계적 완성도만을 추구하는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상품성 짙은‘ 연주들이 젊은 연주자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 개탄스러운 참이었고, 조성진처럼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피아니스트가 그나마 이런 새로운 시도를 이어나가는 것은 길게 보았을 때 응원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아쉬웠던 것은 그런 시도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진 완성도였다. 프레이징이나 다이나믹 변화, 템포 루바토를 통해 연주 중에 즉흥성을 가미하면서 만들어진 텐션과 에너지를 자연스럽게 처리하는 것은 상당한 숙련도를 요구하는 테크닉이다. 뭇사람들이 생각하듯 손가락을 제 위치와 타이밍에 누르는 것만이 테크닉은 아니다. 내가 이 프레이즈를 연주 중에 좀 더 여유 있게 가져가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분명 그렇게 루즈해진 텐션에는 음악적인 컨텍스트가 뒷받침되어 자연스럽게 처리되거나 아니면 자신이 그 텐션을 어떻게든 처리해야만 한다. 그렇게 변화한 텐션을 적절히 컨트롤하지 못하면, 소위 ‘어색한’ 연주, 그 정도가 지나치면 ‘음악성이 부족한‘ 연주가 된다.


이 날의 연주에서 특히 그런 ‘어색한’ 패시지들을 다수 발견할 수 있었다. 일전에 연주자의 인터뷰 중에서 자주 연주를 듣는 피아니스트 중 한 명으로 코르토를 꼽은 바 있었는데, 어쩌면 조성진은 21세기의 코르토를 꿈꾸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코르토의 황금과도 같은 루바토는 단순히 감각적으로 얻어진 결론이 아니다. 그의 루바토는 철저히 음악이 만들어내는 텐션과 에너지, 그리고 형식 및 구조적 분석에 근거하고 있으며, 결코 즉흥적으로 얻어낸 결과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조성진이 아직까지 ’계획되지 않은 임프로비시옹‘을 스스로 이끌어 낼 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지는 못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물론 귀가 즐거운 시간들도 있었다. 발군의 테크닉을 자랑하는 연주자이다 보니, 까다롭기로 유명한 ’어릿광대의 아침 노래(Alborada del gracioso)', '스카르보(Scarbo)', '토카타(Toccata)'같은 곡들의 퀄리티는 다른 곡들에 비해 월등한 완성도를 보였다. 간혹 등장하는 섬세한 피아니시모 처리도 손에 꼽을 정도로 아름다운 순간들이었다. 반면에 '옹딘(Ondine)'의 경우 처음부터 이어지는 오른손의 트레몰란도의 명료성이 너무 떨어지고 전반적인 완성도도 부족해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왜 이렇게 연주되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음반에 비해 기대 이상으로 좋았던 작품은 ‘우아하고 감상적인 왈츠’였다. 확실히 쇼팽 콩쿠르를 통해 왈츠 풍에 대한 연구가 축적된 것인지 다른 곡들에 비해 장르에 대한 이해도가 돋보였고, 앞서 언급했던 루바토도 리듬의 특성과 라벨의 독특한 화성적 캐릭터를 잘 살리는 방향으로 구현되어 만족스러웠다. 이 곡의 연주를 들으며 내심 이전에도 종종 연주했던 라발스(La Valse)를 앙코르로 연주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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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벨 전곡을 한 무대에 올린다는 것은, 연주자는 물론 청중들에게도 상당한 고행이 아닐 수 없다. 웬만큼 라벨의 작품을 좋아하지 않는 이상 음반으로도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의 전집을 한 호흡에 듣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에 실제로 음악의 전달 측면에서, 아마도 조성진과 라벨 모두의 상당한 팬이 아니었다면 모든 시간 집중력을 가지고 듣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으리라 생각한다. 듣고 나서 전집을 냈더라도 굳이 이 모든 곡을 한 무대에 올렸어야 했는가 하는 의문이 들긴 했다. 앞으로 라벨을 전혀 연주하지 않을 생각이 아니라면, 투어 기간 이후에도 꾸준히 다른 곡들과 함께 레퍼토리에 포함시켜 무대에 올리며 10년 혹은 그 이상의 기간 동안 갈고닦는 것이 본인에게도 큰 자산이 될 것이고, 듣는 이들에게도 즐거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성진이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지 이제 십여 년이 지났다. 이번 앨범은 그 십 년간 그가 ‘피아니스트’로 발돋움하기 위한 노력의 결실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앞으로 우리가 조성진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여전히 앞으로 이 연주자가 또 다른 십 년 후에 어떤 모습일지, 어떤 음악을 하고 어떤 작품을 어떻게 연주할지 전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만큼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나이고, 그의 방향성에서 충분히 그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때마다 평론계든, 청중이든 그들로부터의 비판은 계속 따라오게 될 것이다. 늘 완벽한 것만을 세상에 내놓을 수는 없는 법이다. 때로는 설익은 것들을 세상에 내놓아야만 할 때가 있다. 그럼에도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콘서트 피아니스트로서 그가 느끼는 부담을 내가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그가 이런 비판을 견뎌내며 계속 자신의 음악을 계속 발전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어쩌면 그것이 콘서트 피아니스트의 숙명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