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폴, 환상의 문]

미장센으로 들어가는 이야기

by 김도형


정말 오랜만에 영화를 한 편 보게 되었다. 아이 있는 집이다 보니 미디어는 거의 차단된 상태로 지내고, 소리도 대부분 꺼두고 산다. 큰 TV 두고도 거의 켜지 못하는 생활이 안타깝다기보다는, 오히려 미디어와 거리 두는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다만 요즘 숏폼에 더 익숙해져 가는 뇌를 생각하면, 그쪽이 더 걱정되기도 한다.


어쨌든 정말 간만에 영화 한 편 접했다. 한국에는 2008년 개봉했던 작품이지만, 디즈니 플러스에서 디렉터 컷으로 다시 볼 수 있었다.


이 영화 가장 큰 특징은 미장센이다. 미장센은 영화 안에서 보이는 화면 연출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보면 된다. 연극에서 비롯된 개념인 만큼, 무대 구도나 색감, 소품까지 포함한 모든 요소가 하나 장면 안에 배치된 상태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이 영화는 스토리나 개연성 자체가 크게 중요하지는 않다. 다만 영화가 만들어 놓은 미장센만으로, 마치 예술 사진 연작을 영상으로 바라보는 듯한 묘한 감각을 준다.


허구 인물과 배경인 만큼, 세상 곳곳 정말 영화 같은 풍광들이 하나로 모여 있다. 인도부터 스페인까지, 환상적인 장소들이 하나 이야기 안에 장면처럼 이어진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여행 가고 싶어진다. 동시에, 저 장면들이 실제보다 더 허구처럼 느껴지는 아이러니한 감각도 함께 든다.


이 영화는 무수한 볼거리와 상상력, 그리고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식 자체에 자연스럽게 이입하게 만든다.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던 그런 이야기처럼, 익숙한 서사 구조를 빌리면서도, 우리가 알고 있던 이야기들이 어느 순간 허구처럼 뒤집히는 지점으로 데려간다. 그래서 이 영화는 하나 이야기라기보다, 환상으로 들어가는 문 하나 건네주는 느낌에 더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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