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에 관한 상념 1

by 사포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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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을 지나 현관문까지 걸어서 5분.

"누구세요?" 그 당시 일반 집에는 구경도 못할 초인종을 누르면

파출부 할머니는 인터폰에 대고 방금 일에서 돌아와 헉헉거리며 그렇게 물었지.

"접니다."

할머니에게

아이들 가르치는 알바생입니다, 아이들 선생님입니다... 를 지나

접니다...로 목소리가 통하는 사이쯤 되었을 때

난 그 집에 대해 몇 가지를 알게 되었어.



위로 딸 하나, 밑에 아들 둘 있는 그 집은

둘 다 명문대학 출신의 젊은 부부로서 여자는 특히 있는 집안의 미술학도였다는데

이상한 점은 그림이나 조각이 집안의 장식으로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야.

집은 좌우지간 내가 보는 바로는 그 동네에서 제일 가는 규모나 시설이 분명했었지만

낯을 많이 가리는 내가

할머니께 사탕을 선물하는 사이쯤 되었을 때

또다시 고즈넉한 집과는 어울리지 않는 여러 점을 알게 되었지.

그 집 여자는 귀금속 모으는 데 꽤 취미가 있어서

간혹 외출 시 마주칠 때는 얼굴보다 몸을 감아 두른 보석에 더 눈이 간다는 점.

자신은 외출하며 아이와 할머니, 간혹 내가 같이 먹게 되는 점심으로 라면을 끓이라고 시키며

라면만 넣으면 돈이 많이 들어 가니 국수를 섞어 끓이라고 시킨다는 점.

무조건 오매불망 복종밖에 모르는 할머니를 파출부로 두고

한 번도 부부가 같이 아이들과 집에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는 점.

여자아이는 남동생이 저지른 불장난으로 인해 온몸에 화상을 입어 1년에 한 번씩

성장을 위해 살을 펴주는 수술을 한다는 점등...



난 그 아들의 얼굴이 아직도 생각나.

너무너무 공부하기를 싫어했고 나는 그래도 보수를 받는 이상 의무감이 느껴져

공부를 시킬라치면 연필을 찌르는 칼 잡 듯하고 공책을 북북 문질러 댔지.

꼬시고 타이르고 화를 내고...

저절로 그 아이와 나 사이는 원수지간으로 치닫고 있었어.

그 날도 여자는 외출하고

말이 없는 딸은 자기 할 것을 조용히 마치고

아들이 공부할 순서가 되었는데

너무 하기 싫었던지 처음부터 막무가내였지.

그리고 소리를 지르더니 어디론가 뛰어 갔어.

뛰어 온 아이의 손엔 부엌칼이 들려 있었고...



오랜 세월이 지나고

캠퍼스 낭만이고 뭐고 잘 건조된 몸으로 돈벌이에 지쳤던 학창시절을 돌이켜 보며

난 남의 일 얘기하듯 말하지.

"더럽게 가난해서 알바 많이 하다 칼에 찔려 죽을 뻔했다."고.

가난은 괜찮다 해도

현실인 듯, 꿈인 듯 가난이 주는 서럽고 더러운 순간은 정말 생각할수록 어이없어.



칼만 안 들었다 뿐이지

세상에 대한 내 태도는 어쩌면 그 아이와 같았을지 몰라.

당신을 만나 오랜 세월

날 아껴주고 버팀목이 되어

내게는 묵묵히, 천천히 변화가 일었고

눈물도 안 나던 악다문 슬픔이

눈물 마르지 않는 지금의 슬픔에 이르기까지

당신은 나의 비감한 인생로에 뛰어 들어

정말 수고 많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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