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디움

내 글이 안착할 곳

by 아인장

좋아하는 작가가 있냐 물으신다면, 대답해 드리는 게 인지상정. 내게는 손가락으로 꼽으며 말할 수 있는 최애 작가들이 있다. 독일의 넬레 노이하우스, 스웨덴의 프레드릭 배크만, 한국의 김초엽 작가가 그 주인공이다. 난 국가나 장르를 가리지 않고 책을 읽는다. 이외에 좋아하는 작가들도 있지만 꽤 오랫동안, 그리고 가장 오래전부터 내 마음속 작가 포디움을 차지한 사람들은 이와 같다. 독일과 스웨덴, 한국의 베스트셀러 작가들은 중위권과의 안정적인 거리 확보로 완벽하게 작가 레이스의 선두를 달리며 나를 행복하게 한다.


마음 한편 내주는 게 쉬운 일인가? 하지만 정말 사랑하는 것을 만나면 우리는 귀한 마음에 자리 하나 내주게 된다. 여유가 없어도 내주는 게 사랑이니까. 독일의 미스터리 여왕과 스웨덴 남자의 따스함과 한국의 다채로운 상상력을 뽐내는 청춘을 사랑하지만, 생각해 보니 가장 사랑하는 건 그들이 남긴 활자들이다. 빼곡한 글자로 이루어진 그들의 글을 사랑한다. 나를 울리고 웃기고 달래고 두렵게 하는 글에 나는 매혹당한다. 흩어지면 감정도 의미도 없는 언어 조각들을 이리저리 엮어서 한 세계를 창조해 내는 그들은 나의 영웅이고 신이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니 좋아하는 글 종류도 다를 테지만, 현실 너머로 혹은 가장 현실적인 공간으로 날 이끄는 소설이 좋다. 몰아치는 전개와 흡인력에 시선이 묶인다. 속절없이 작가가 이끄는 대로 간다. 책장을 덮으면 끝나는 그 쉬운 일을 못해서 새벽 4시가 넘도록 인공 눈물을 퐁퐁 떨어뜨리며 뻑뻑한 눈으로 더듬더듬 글을 읽어 내려갈 수밖에 없다. 비로소 깨닫는다. 나는 신의 노예이자 숭배자라는 걸. 수면욕을 물리치는 보이지 않는 힘으로 사람을 가두는 작가가 정말 멋지다.



독서는 20년이 넘도록 이어지는 가장 오래된 취미다. 어릴 때 매일 밤 부모님께 책을 읽어달라 졸랐단다. 많게는 여서 일곱 권 읽어야 직성이 풀리고, 동화 CD를 틀어야 잠에 들던 아이. 엄마가 말하길, 덕분에 동생에게는 책을 덜 읽어주었단다. 부모의 목과 눈 건강에는 관심 없던 활자 중독자 겸 이야기 덕후가 바로 나였나 보다. 엄마가 동생에게 나만큼 책을 읽어 주었다면 그 애도 지금의 나처럼 책을 사랑했을까? 근본적인 이유는 모르나 책과 철저한 거리 두기를 실천하는 동생에게 의도치 않은 미안함이 있다. 그렇게 난 손에서 책을 못 놓는 어른이 되었고, 점점 책을 쓰고 싶다는 꿈을 피웠다. 개인적으로 철저히 신격화한 작가라는 직업은 여전히 내게 위대하다.


책 보다 영화나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건 직관성 때문이다. 수고스러움 없이 보여주는 대로 받아들이니 편하다. 이건 내 생각에 영상을 더 좋아하는 친구들의 의견도 반영한 주장이다. 영화나 드라마는 외모가 출중한 사람과 완벽한 장면을 보여준다. 각종 환상 세계를 CG 작업으로 구현하고, 마음을 웅장하게 만드는 음악을 곁들여 완성한다. 그것이 책에는 없는 매력이고, 책 보다 선호되는 이유다. 그러나 난 상상의 자율성 때문에 책을 사랑하고 내가 먼저 장면을 구상하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책이 원작인 작품이 있다면 꼭 책을 먼저 본다. 내 마음대로 상상하는 찬스를 놓치는 건 퍽이나 아쉬운 일이다.


최근 생애 처음 스포츠를 좋아하게 됐다. 바로 F1이다. 진심으로 응원하는 선수가 생겼고, 그가 이기면 기쁘고 지면 서러워 스포츠광의 마음을 진정 이해하게 됐다. 치열한 레이스 속 촌각을 다투며 순위 경쟁을 벌이는 드라이버들 중 딱 세 명만 영광의 포디움에 오른다. 1등에서 3등까지만 샴페인을 터뜨린다. 그 모습을 보며 다짐한다. 나도 포디움에 오르고 싶다. 내 이야기로 누군가의 마음속 작가 단상에 오르고 싶다.


수많은 경쟁자를 뚫고 포디움에 오르는 건 분명 어렵다. 모두가 오르고 싶을 테니까. 그렇지만 원래 험한 길 걷고 도달하는 게 더 짜릿하다. 그래서 나만의 레이스를 시작했다. 조금씩 내 이야기를 남기며 빛나는 포디움에 오르려 한다. 브런치에 글을 쓰며 조금은 신에 가까워졌고, 내 글이 안착할 곳이 날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