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드라마터그 김주연
[ARTIST] #9
무대를 찾은 관객은 앞으로 눈 앞에 펼쳐질 새로운 세계에 빠져들 준비가 되어 있다. 극이 이끄는 대로 이리저리 기대어보며 몰입을 즐긴 이들은 막이 내린 뒤에도 그 여운을 안고 공연장을 나선다.
반면, 작품 자체는 물론 그 밖의 여러 가지를 각기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사람이 있다. 작품 개발부터 조사, 연구, 각색, 연출 등 영역을 불문하고 필요시기에 투입되어 보이지 않는 것을 계속해서 찾아낸다. 차곡차곡 극의 구성을 쌓아가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극작술(dramaturgy)의 전문가, ‘드라마터그’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전 월간 《객석》 기자이자 남산예술센터 극장 드라마터그로 근무했고 <됴화만발>, <풍찬노숙>, <곰의 아내>, <갈릴레이의 생애> 등 다수 작품에 참여했으며, 현재 연극 연구와 평론 등 극 전반에서 꾸준히 작업을 이어가는 김주연 드라마터그를 모시고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안녕하세요. 주연님!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연극 기자로 출발해 연극 칼럼니스트, 드라마터그, 평론가, 연구자 등등 주로 연극 언저리를 돌면서 연극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김주연이라고 합니다.
Q. 러시아문학 전공 후 연극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신 것으로 아는데요. 어떤 계기로 드라마터그를 처음 시작하게 되었는지 먼저 들어볼 수 있을까요?
연극 기자로 오랫동안 일하다가 연극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박사과정을 준비하던 중에, 남산예술센터로부터 <됴화만발>이란 작품의 드라마터그 제의를 받았습니다.
사실 처음 제의받고서는 많이 망설였어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작업이라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고민도 되고, 또 괜히 했다가 작품에 누를 끼치는 건 아닌가 싶어서 갈등하게 되더라고요.
그때 주위 몇몇 분들이 ‘새로운 경험을 해보는 게 좋다’, ‘연극에 대해 더 깊이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등등 조언과 격려를 해주셔서 용기를 낼 수 있었고, 그렇게 첫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Q. 사실 다른 나라에서도 드라마터그의 정체성에 대해 논쟁을 이어갈 만큼 하나로 규정하기가 어려운 직업이라고 하잖아요. 혹시 주연님이 생각하시는 ‘드라마터그’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그간 드라마터그로서 어떠한 역할들을 해왔는지 궁금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아직도 드라마터그라는 역할이 규정하기 어려운 작업이다 보니, 저도 아직 사람들한테 ‘드라마터그는 이런 일을 하는 거야’라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해요. 그럼에도 굳이 물으신다면, 결국 드라마터그는 작품이 관객과 잘 만나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그 방식은 프로덕션마다 다르고 또 다를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프로덕션마다 연출가들이 드라마터그에게 기대하거나 요청하는 부분이 다른데, 어떤 연출가는 적극적으로 작품에 개입해서 창작의 과정을 함께 해주길 바라고, 또 어떤 연출가는 내부 비평가로서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고 조언해주기를 바랍니다. 그 때문에 프로덕션마다 드라마터그의 역할도 달라질 수밖에 없죠.
그런데 이렇게 할 일이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는 게 드라마터그의 힘든 점이자 또 매력인 것 같아요. 매번 프로덕션에 참여할 때마다 ‘이번에는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또 다른 창작자들이랑 소통하고 반응하면서 내가 더 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가게 되니까 늘 새롭고 신선한 마음으로 참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Q. 지금까지 정말 수많은 합을 맞추셨을 것 같아요. (웃음) 주연님은 남산예술센터 소속 드라마터그로 다년간 활동하셨는데요. 이곳에서 주로 어떤 일을 하셨는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남산예술센터에서 했던 역할은 극장 드라마터그라서 일반적인 프로덕션 드라마터그와는 완전히 다른 일들을 했습니다. 기본적으로 극장의 레퍼토리와 시즌 프로그램의 방향을 정하는 것과 극장의 학술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것을 주요 업무로 맡았어요.
구체적으로 시즌 프로그램 및 공동제작 프로그램 선정에 참여하거나 상주 극작가와 팀을 이루어 작품 개발을 돕는 일, ‘초고를 부탁해’, ‘남산희곡페스티벌’, ‘남산연극포럼’ 등 신작 발굴 프로그램 및 학술회의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을 주로 했습니다. 그 외에 극장 자체 제작 프로덕션에는 프로덕션 드라마터그로 참여하기도 했고요.
그때는 거의 매주 남산에 갔던 것 같아요. 많은 일을 하기도 했지만, 저 자신도 극장이 돌아가는 방식, 프로덕션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정말 많은 걸 배운 시기였던 것 같아요.
Q. 당시 국내 최초로 시도했던 전속 드라마터그 제도이기에 더 궁금증을 일으킨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수많은 조사와 고민을 하고, 생각을 정리하다 보면 가끔 지나친 몰입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주연님이 마음을 환기하고자 찾는 것이 있나요?
연습을 너무 자주 가다 보면 정말로 거기에 함몰되어 버려서 객관적인 시선을 놓칠 때가 종종 있어요. 그럴 때는 일부러 연습실에 한동안 가지 않고 작품에 대해 생각하지 않다가 오랜만에 연습을 보러 가곤 해요. 그러면 약간 환기가 되어서 작품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고, 그동안 안 보였던 것들이 보이기도 하더라고요.
드라마터그는 내부 스태프이면서 동시에 계속 외부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하는 역할이니까 이런 거리 조절이 가끔 필요한 것 같아요.
Q. 과연 작품의 안팎을 자유로이 넘나들어야 하는 직업이네요. 주연님은 평소 드라마터그 활동 이외에도 평론, 집필, 인터뷰 등 다양한 일을 하시는데요. 최근에는 어떤 일을 주로 작업하시는지 또 요즘 관심사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최근에는 남산예술센터 디지털 아카이빙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남산예술센터가 올해 말 서울문화재단의 위탁 운영을 마치고 일단 문을 닫게 되는데요. 그 전에 2009년 재개관부터 2020년까지의 극장 프로그램과 작품 데이터를 모두 디지털 아카이빙화 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에요. 저는 이 프로그램에서 남산예술센터 공연사를 정리하고 작품별 키워드를 선정하는 작업을 맡았는데, 덕분에 남산에서의 지난 기억과 추억들을 새삼 되짚어볼 수 있었습니다.
요즘 제 관심사는 아무래도 다들 마찬가지겠지만 코로나가 가져온 변화인 것 같습니다. 코로나 이후 연극계는 어떻게 변하게 될지, 무엇이 남고 무엇이 사라지게 될지 아직 막막하지만 계속 지켜보는 중이에요.
Q. 오랜 시간 함께 한 남산예술센터의 역사를 주연님의 손으로 정리하는 과정이 의미가 남다른 것 같아요. 그렇다면 앞으로 다가올 연극계에서 드라마터그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드라마터그 작업을 하다 보면 한 작품의 처음 구상 단계에서부터 마지막 무대까지 전 과정을 함께 하게 되는데, 이건 어디서도 경험해볼 수 없는 정말 귀한 시간인 것 같아요. 객석에 앉아 이미 완성된 작품을 보는 것과 달리, 이 작품이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는지 지켜보다 보면 그간 미처 생각지 못했던 지점들을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연극을 좋아하고 관심이 있다면 꼭 한 번 경험해보셨으면 좋겠어요. 또, 드라마터그 작업을 하고 나면 하나의 연극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과 애정들로 이루어졌는지를 알게 되니까 다른 작품을 볼 때도 더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Q. 작업에 대한 주연님의 마음이 한결 가까이 느껴집니다. (웃음) 혹시 앞으로 다가올 작업에 대해 소망하는 것이 있으신가요?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는데, 올해 초 국립극단에서 작업하다가 연습 막바지에 취소되었던 <파우스트 엔딩>이 내년에 다시 올라가게 될 것 같아요. 조광화 연출을 비롯해 많은 스태프들이 공들여 만든 작품이라 도중에 중단되어서 속상했는데, 이번에는 부디 코로나에 지지 않고 무사히 무대에 올라 관객들과 꼭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Q. 꼭 상황이 나아져서 무대에서 작품을 볼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입니다. 빈칸을 채워 주시겠어요?
“연극은 내게 ~다.”
“연극은 내게 좋은 친구다.”
때로는 너무 좋아 어쩔 줄 모르겠고, 때로는 실망할 때도 있지만, 아마도 아주 오랜 시간 손을 놓지 않고 함께 나이 들어갈 좋은 친구.
텍스트에 단단히 두 발을 딛고 작품 곳곳을 이해하는 드라마터그의 모습이 마치 청진기를 몸 이곳저곳에 대어보며 진찰하는 것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이 어디가 아프고 삐걱거리는지 어떻게 교정해야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을지 수없이 고민하고 분석하며 개입하고 또 물러서는 이 직업은 그 자체로 극에 대한 애정을 증명한다.
프로덕션 및 극장 드라마터그, 취재, 비평, 인터뷰, 집필, 그리고 아카이빙 작업까지 형태가 달라질 뿐 늘 연극과 무대 근처에서 호흡하는 주연님의 지나온 길에 잠시 발맞춰 본 시간이었다. 앞으로도 오래된 친구와 함께 걸어갈 주연님의 무대 길에 언제나 따스한 조명이 비추기를 응원한다.
무대 밖, 그들의 목소리를 담다
과정 그리고 사람의 이야기
[ART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