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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인사이트 Jul 09. 2018

100년을 150분으로

연극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100년을 150분으로

연극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Review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번 연극의 리뷰는 조금 독특하다. 매일 혼자만의 감상을 구구절절 늘어놓다보니 영 지루하던 차였다. 알란처럼 맛있는 음식과 함께 친구와 이야기나 나눠볼까 한다. 함께 공연을 보고 온 M과 소소하고도 장황하게 떠들어 보았다. M은 약 1년 동안 나(H)와 관심사를 꾸준히 나눠온 친구다. 우리의 대화는 무대와 배우들을 거쳐 삶의 이야기까지 거슬러 오른다. 구체적이고 심오한 감상을 빼곡이 적어내기 보다는, 공연의 부분부분을 짚어가며 우리는 우리만의 추억을 쌓는다.



연극에 대한

훌륭한 리뷰를 들으러 오신 거라면

우리의 대화가 뭘 해 드릴 순 없겠지만..

아마도?



H M은 이 연극이 어땠어? 5글자로 표현해줄래?


M 5글자? 어렵네.


H 나는 ‘황당무계함’!


M 비슷한 느낌야. ‘신박한연극’이란 생각을 했어!


H 이유가 있어? 왠지 1인 다역이었던 게 큰 요소일 것 같긴 하다만!


M 그 것도 그렇고 방대한 이야기를 작은 소품 같은 거 하나하나로 묶어서 잘 표현한 게 인상 깊었어.


H 그러고 보니 엄청나게 넓은 배경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무대 변화 없이 작은 소품들로 표현해낸 것이 진짜 디테일 했어. 그 무대의 작은 상자들이 열릴 때마다 다음은 뭐가 나올까, 이런 생각도 들고.


M 시간이랑 장소를 한쪽 귀퉁이에 표시해준 것도 이해를 더 수월하게 해줬고. H말대로 서랍에서 소품 나오게 구성한 것도 좋았어.


H 그거 알았어? 무대가 세계지도 모양인거.


M 맞아! 지도 모양이라 너무 귀여웠어. 아기자기.


H 보면서 ‘와, 세계지도로 만들다니 귀엽다’고 생각했는데 찾아보니까 그 소품 꺼내는 것도 당시 배경이 되던 나라 위치와 최대한 가까이 설정되어있다고 하더라고. 실제 무대는 매우 좁지만 그런 서랍들을 이용해서 넓어도 너무 넓었던 알란의 삶의 무대를 디테일하게 표현해낸 것 같아.



H 아까 처음 질문에서 나왔던 것처럼 공연은 한 배우가 여러 캐릭터(평균 12명의 캐릭터라고!)를 맡는 1인 다역, 또 알란이란 역할을 나이대별로 나누어 맡은 다인 1역이었는데 이 부분은 어땠어?


M 배우들이 성별에 상관없이 여러 캐릭터를 맡아서 한 점이 흥미로웠던 것 같아. 또 실제로 1인 다역 자체가 웃음 포인트가 될 때도 많아서 원작을 연극적으로 잘 표현하는데 있어서 이 설정이 신의 한수였다는 느낌을 받았어.


H 이거를 '캐릭터 저글링'이라고 표현하더라고. 너무 적절한 표현이라서 놀랐어. 심지어 연기할 때 상반과 하반이 따로 놀잖아. 그런 배우들의 감각적 센스와 민첩함에 보는 재미가 쏠쏠했던 연극이었어. 이게 진짜 유쾌한 인간적 연극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


M 인간적 연극! 어울리는 말이다. 맞아, 그래서 배우에 따라서 극 분위기가 진짜 많이 변할 것 같아. 배우별로, 또 페어별로 궁금해지는 것 같아.


H 이 부분이 이 공연의 가장 핵심적인 매력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난 인상 깊었어.


M 공감합니다!


H 공감한다면, 혹시 등장하면 약 60여명의 캐릭터 중 가장 좋았던 캐릭터 있어?


M 저는 다 좋았지만 히말라야를 등반하신 알란이 참 기억에 남아. H는?


H 나는 개인적으로 오페라 곡을 알란에게 불러줬던 김도빈 배우의 유리가 너무 인상 깊었어. 연극 시작할 때 그런 말 했었잖아. 이건 뮤지컬이 아니라 연극이라고, 혹시 잘못 찾아왔다면 나가셔도 된다고. 근데 사실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른다고! 근데 정말 예고대로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심지어 엄청 잘 불러!


M 별거 다하는 연극!


H 저글링도 하고 콩콩이도 타는 연극!



H 그러고 보니 춤 같은 경우에는 나라가 바뀔 때마다 그 나라의 민속춤이 나왔는데 이 부분은 어땠어?


M 민속춤을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 나라의 분위기가 있잖아. 그 분위기를 잘 살리는 대표 민속 춤동작으로 잘 뽑아온 것 같아서 좋았어. 배경도 어딘지 잘 알겠고!


H 연극이 정말 지루할 틈 없이 노래와 춤으로 때마다 템포를 높여줘서 민속춤 보는 재미가 쏠쏠했어.


M 맞아. 배경 바뀔 때마다 이제 무슨 춤일까? 약간 기대하게 되고!


H 혹시 소설이나 영화를 봤다면, 비교했을 때 연극은 어땠어?


M 비교할 만큼 소설이나 영화를 전부 다 본 건 아니지만, 원래의 복잡한 스토리에서 큰 가지를 떼어서 가져온 느낌이었어. 그리고 그 가지치기를 효율적으로 잘했다는 느낌. 내가 본 부분까지를 기준으로 봤을 때!


H 난 영화만 봤는데, (물론 소설책을 원작으로 만든 연극이지만!) 초반에는 원작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흐름이 너무 급박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점점 가면 갈수록 100년하고도 생일 이후 며칠 동안을 연극 150분 안에 담기가 영 힘들 거 같은데 깔끔하고 재밌게 담아낸 것 같다고 느꼈어.



H 100세 노인, 그것도 그냥 100세 노인이 아니라 창문을 넘어서 도망친 노인! 이 제목만 봐도 뭔가 특이한 노인일 것 같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알란의 생애를 전반적으로 보면 정말 독특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 타고난 낙천성에 놀랄 정도로. M이 본 알란은 어떤 사람이었어?


M 나는, 알란이 어렸을 때부터 자기가 어찌할 수 없는 고통이 많아서 자신을 괴롭히는 것들에 대해서 낙천적으로 변한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그냥 미래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지금 당장 이야기 나눌 친구나 잠자리 먹을 것 그리고 술 이런 것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그런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낙천적인 것 같지만 좀 외로운 사람.


H 나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는데 알란은 그 시절에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던 사람이었던 거 같아. 와, 타고나게 운이 좋은 낙천적 할아버지! 이런 느낌이 사실 없지 않아 있지만.(M : 맞아!) 폭탄을 좋아한다는 것 외에는 그 시절에 어디에나 있을 법한 사람이라고나 할까. 그의 삶이 남들보다 더 버라이어티 했던 건 폭탄에 대한 실력 때문이지 그가 가졌던 마인드는 시대상황에서 어쩌면 당연했을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


M 맞아. 나도 동의해.


H 그 상황에서 알란이 가질 수밖에 없었던 마인드라고나 할까. 오히려 저렇게 낙천적인게 신기할 정도긴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은 벌어지고 없다는 게 말이 쉽지 싶으면서도, 알란은 정말 그걸 뼈로 느끼며 살아온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네.


M 애초에 저렇게 낙천적인 사람이 흔치 않으니까 신기하기는 한데 H 말대로 그 상황 속에서 그냥 자기보호? 뭔가 본능적으로 그렇게 된 사람 같은 느낌.



H 알란의 삶을 듣다보면 100년이라는 시간을 새삼 다시 돌아보게 되는 것 같아.


M 맞아, 뭔가 막연한 시간인데 연극을 통해서 그 막연함을 가시화 시킨 느낌.


H 특히 이데올로기나 가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 것 같아. 저 많은 이야기들이 100년안에 일어났네, 와 정말 이상한 일이 많았구나. 하는. 그러면서도 이제는 먼 얘기가 아닌 것 같았어. 조금 더 100년을 가깝게 보게 되었다고나 할까.


M 나도 뭔가 그런 전쟁 속에 알란이 이리저리 휘둘리는 모습을 보며 H와 비슷한 생각을 한 것 같아.


H 그 커다란 소용돌이 속에서 알란이 어떻게 백년이나 살아왔는지. 근데 그 백년이 진짜 보잘 것 없이 보이다가도, 전혀 무관한 얘기처럼 보이다가도 저렇게 한 사람의 생애로 정리해놓고 보니 새롭게 와 닿는! 그런 느낌이 있었던 거 같아.


M 맞아. 그 모든 일이 한 사람이 겪은 거라니! 뭔가 그래서 여러 방면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 같기도 해. 다양한 이야기를 알란 하나로 묶어낸 이야기인 만큼.



H 이렇게 길고 복잡한 인생을 살아온 알란이 그것도, "난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죽이고 싶으면 빨리 죽여야해"라고 하는 알란이 생일날 갑자기 탈출한 이유는 바로 본인이 가장 아끼던 고양이 몰로토프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서잖아. 다시 불을 붙이라는. 이 부분 보면서 M은 무슨 생각했어? 좀 거창하긴 하지만 삶이나 탄생, 죽음 같은 것에 대해 생각나는 것이 있었어?


M 음, 뭔가 나는 알란의 삶이 다시 시작되는 지점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시간이 지날수록 같이 생을 보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죽고 몰로토프와 둘이 남게 되는데, 몰로토프에게 의지하고 있다가 갑자기 몰로토프도 죽게 되고. 그래서 알란의 삶이 약간 뭐랄까 무기력하게 정지되어있는 느낌으로 계속 흘러갔는데 몰로토프의 목소리를 듣고 다시 그 낙천적인 알란으로 다시금 태어날 수 있게 된 것 같은 느낌. 다시 어디서든 술과 음식과 친구와 잘 곳만 있으면 돼! 라고 외칠 수 있게 돌아온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


H 나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는데, 사람에게 필요한 건 생명의 지속이 아니라 ‘삶’이 아닐까 싶어. 누군가와 말하고 먹고 즐기는 삶. 대단한 것이 아닐지라도. 알란도 그걸 알았기 때문에 무기력하던 찰나 과거의 그 삶을 다시 찾기 위해 불을 붙이는 행위를 한 거겠지. 그리고 이 연극은 이 불을 붙이는 행위는 누구든 할 수 있다고 못까지 박아주는 것 같았어. 무려 100살 먹은 노인이어도 상관없다고.


M 뭔가 비슷한 듯 다른 감상이다.



M은 마지막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었냐는 질문에 다 같이 성냥갑을 흔들던 마지막 장면을 언급했다. 각자 다 다른 나이대의 알란들이 지금의 100세 알란을 위로하고 일깨우는 것만 같았다고. 그리고 그 순간, 알란의 그 지난 모든 세월이 하나로 묶이는 느낌을 받았다고. 그리고 대화를 통해 생각하지 못했던 점들을 많이 돌아보게 되어서 이 연극을 한 번 더 보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우리가 길게 얘기한 것처럼, 이 연극은 불친절하다. 한 배우가 평균 12명의 역할을 맡고, 시간과 배경은 시도 때도 없이 바뀐다. 미니어처들이 무대 장치를 대신하고, 가끔은 배우들이 상반신 하반신을 나누어 동시에 두 역할을 겸하기도 한다. 관객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연극적 구현에 대한 변명을 하기도 한다. 영 복잡하다.


하지만 이 연극은 친절하다. 관객들에게 손을 뻗어, 당신도 알란처럼 맘껏 불을 붙여보라 권한다. 황당무계한 코미디 속에서도, 따스함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이 폭력적인 매일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보자고 기꺼이 먼저 창문을 넘는다. 나와 M은 그 모습에 분명 마음이 움직였다. -M은 그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다시 성냥을 그어보기로, 삶의 불꽃을 피워보기로 정했다. 그 것이 긴 긴 대화에도 내뱉지 못했던, 유일하고도 분명한 우리의 감상이다. 베르사마사마!

 




 

 

글 -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이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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