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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인사이트 Jun 10. 2024

프랑스 버스에서 사색을


프랑스 유학생으로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버스다.


이번에 살게 된 기숙사는 리옹 시내와는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어 학교나 번화가로 나가려면 항상 버스를 타야 한다. 집 앞 3분 거리에 12분 간격으로 오는(그러나 항상 늦는) C12번 버스를 타고 매일 왕복 1시간 이상을 버스에서 보낸다. 해가 좋은 날은 주로 바깥을 구경하고, 날씨가 요상하면 버스 내부를 관찰하곤 하는데, 아직까지 질리지 않는 걸 보면 참으로 사색에 적합한 공간이다.

 

 


 

오늘 아침엔 하늘이 흐려서 버스 안 구석구석을 관찰하며 한국 버스와 다른 점을 곰곰이 생각해 봤다. 가장 다른 점은 좌석 없는 빈 공간이 넓다는 점. 이는 곧 휠체어나 유모차를 위한 공간을 많이 확보해 두었다는 뜻이다. 덕분에 교통약자들은 편하게 버스를 이용할 수 있고, 자연스럽게 길거리에서도 교통약자를 빈번히 마주친다. 교통약자의 이동이 주로 차로 이루어지는 한국의 상황과는 완전히 비교되는 지점이다.

 

사회 제도와 인프라가 앞장선 덕분에 시민의식 또한 월등히 높은 것을 체감한다. 20년 전 한국처럼 누구나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유모차 하차를 돕는다. 버스 차체 또한 낮게 설계되어 있어 버스 기사는 휠체어 승객이 탑승할 때 쉽고 빠르게 이들을 맞이할 준비를 마친다.

 

 


 

프랑스 버스의 특징 하면 큰 통창도 빼놓을 수 없다. 프랑스의 여느 집들처럼 버스에도 창문이 커다랗게 나 있다. 창문 너머 시선이 닿는 곳에는 테라스에서 모닝 커피를 즐기는 사람, 창문 열고 담배 연기를 뱉는 사람 등등. 느긋하게 가는 버스 덕분에 저마다의 아침을 눈에 담는다.

 

창문과 창문 사이, 넓은 여백이 만든 충분한 공간감이 이국의 향기를 물씬 풍긴다. 창문이 너무 커서 안전 상의 이유로 창을 열 수 없다는 게 흠이지만, 통창 위에 설치된 작은 창으로만 바람이 들어와 여름이 오면 숨 쉬기가 힘들 지경이지만, 햇살과 삶을 가득 담는 통창이 좋다.

 



 

가만히 앉아 창밖을 바라보다 보면, 건물 입구와 보도블럭 등 접근성이 높은 거리의 공간들에 단층이 거의 없음을 발견한다. 간혹 계단이 있더라도 건물 어딘가에 늘 완만한 경사면이 별도로 존재한다. 복층 이상의 마트, 옷 가게에서도 엘리베이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여행객의 입장에서 '프랑스'하면 보존을 목적으로 엘리베이터를 설치하지 않은 가파른 건물 계단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나의 첫 파리여행 숙소 역시 엘리베이터 없는 5층 작은 방이었기에, 이동의 편의를 위한 이 나라의 노력을 발견하기까지 오래 걸렸다. 허구한 날 재건축 공사를 하고, 도로를 갈아 엎는 우리나라와 달리 고칠 수 있는 작은 것을 바꾸는 이곳의 방식이 더욱 눈에 들어온다.

 

 


 

최근 한국에서, 좌석 없는 지하철 칸을 도입해 이슈가 된 것을 기사로 접했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 출퇴근길에 앉을 자리마저 없어 꼼짝없이 서서 가야 하냐며 불만을 토하는 사람, 지하철이 콩나물 시루가 될 거라며 농담을 던지는 사람, 사람을 짐짝 취급하냐는 사람. 헤드라인만 보고 '드디어 한국도 휠체어, 유모차 이용자를 위한 유의미한 걸음을 딛는 것인가' 기대했던 게 무색하게, '좌석 없는 칸'의 목적은 혼잡 완화였다.

 

교통약자를 배려하기 위해 우리 사회는 어디서부터 시작해, 무엇을, 어떻게 고쳐나가야 하는가? 인프라를 개선하면 시민의식은 저절로 따라 오르는 것인가? 아니면 시민의식을 개선해야 인프라의 개선이 용인되는 것인가? 단지 교통약자가 아닌 많은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정책을 바꾸다 보면 얼떨결에 교통약자를 배려하게 되는 것인가.

 

한 프랑스인 친구가 더럽고 좁은 프랑스 길거리를 불평하며 한국은 '깔끔한 나라'라고 했다.

 

거리에 쓰레기통도 없고 교통약자도 꼭꼭 숨은(숨겨진) 한국은, 빠르고 깨끗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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