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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인사이트 Jun 13. 2024

오늘도 무너지는 하루 보내시길

 

무슨 이런 제목이 다 있나, 하며 들어온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악담 중에 악담이죠. 무너지는 하루가 되라니.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 보통은 이렇게 인사하곤 합니다. 때로는 그 말속에 어떤 진심이 담겨 있는지 제대로 상기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때가 많더라도 말입니다. 분명 오늘도 누군가에게 들었을 수도 있는 아주 흔한 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오늘, 그대로 '좋은 하루'를 보내셨나요?


어떻게 하루를 채워 나가야 좋은 하루가 될 수 있을까. 그 기준은 매우 모호하고 애매합니다. 하늘이 아주 맑아서 기분이 들뜨다가도, 쌓여 있는 업무를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한숨이 푹 쉬어지곤 합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점심시간이 다가와 신나다가도, 고심해서 고른 메뉴가 입에 맞지 않으면 곧바로 실망하기도 하죠.


우리의 일상은 좋음과 나쁨의 반복입니다. 그리고 어느 날은, 사소한 실망에서 그치지 않고 크게 아파하고 무너집니다. 그렇게 무너진 날은, 바로 다음 날이 존재하지도 않을 듯 눈앞이 깜깜하고 막막한 기분이 들곤 합니다. 

생각해 보면, 이런 하루하루를 반복하는 우리의 삶에서 어쩌면 '좋은 하루'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행복하기만 한 일상은 없다는 걸, 우리는 살면서 너무나도 명확히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사람들은, 마주하는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좋은 하루를 보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중에서 일부는, 실제로 상대방이 좋은 하루를 보내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진심으로 말입니다. 그런 그들은 평생 실현 불가능한 어떤 것을 말로만 표현하고 있을 뿐일까요? 좋은 하루 보내라는 덕담은 그저 무의미한, 건조한 인사말에 그칠 수밖에 없는 걸까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이렇습니다. 그들이 바라는 좋은 하루란, 24시간 내내 기쁜 일만 가득한 날이 아닐 겁니다. 앞서 말했듯 우리에게 그런 완벽한 날은 찾아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들이 하루의 끝에서 '오늘은 좋은 하루였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오늘도 어김없이 무너졌음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받아들이고 지나쳐갔음에 있습니다.


잘못 신고 나간 구두 때문에 하루종일 발이 아팠더라도, 며칠간 열심히 준비한 프로젝트의 결과가 생각처럼 좋지 못했더라도 인간은 끝끝내 하루를 마저 살아가고 다음날을 맞이하기 위해 잠을 청합니다.

 

사실, 살다 보면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이 더 많습니다. 설령 더 많지는 않더라도, 각자에게 더욱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그 여운도 길겠죠. 그 혼돈 속에서 우리가 어떤 날을 '좋은 하루였다'고 규정할 수 있는 까닭은, 그 '나쁜 일'이 오늘 하루 안에 존재했기 때문일 겁니다.


나쁜 일이 있었기에 좋은 하루가 될 수 있었다. 모순되는 말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금방 납득할 수 있는 진리이기도 합니다.

 

하루종일, 그리고 평생 기분 좋고 행복할 일만 가득하다면 우리는 그 모든 일상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영화의 엔딩이 극적인 이유가 주인공이 겪었던 모든 시련에 있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슬픔이 있기에 기쁨이 있고, 무너짐이 있기에 다시 일어섬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당장 자신의 일상에서, 현실에서 그 시련을 마주했을 때 그것을 적용하기 쉽지 않을 뿐입니다.

 

 


 

숨 막힐 듯이 괴로웠던 순간이 찾아왔다가, 시간이 지나 괜찮아진 경험.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겁니다.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시간이 흘러갔음을 뒤늦게 알아챈 순간도 있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는 지금 더 행복할 수 있고, 지금 주어진 시간들에 감사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은 거꾸로도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지금 너무 힘들고 버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언젠가는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나아질 거라고 믿어보는 것. 그렇게 생각한다고 당장 손해 보는 것도 아닌데, 한번 해볼 만은 한 듯합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현재의 짐들을 언젠가는 떨어져 나갈, 앞으로 찾아올 행복을 더 크게 느끼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면 그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 같습니다.


인간은, 그리고 인간이 평생 살아갈 삶은 무너지고 다시 일어섬의 반복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쁜 날은 기쁘다고, 좋은 날을 좋다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무너짐이 있기에 다시 일어섬이 있는 것이죠.

 

삶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이유가, 우리가 때때로 겪는 아픔과 참고 참다 터뜨리는 울음에 있다고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이 마주하는 오늘 하루가 조금 더 애틋해지고. 그 하루를 무사히 지나 보낼 힘이 생길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럼 오늘도, 무너지고 또 일어서는 하루 보내시길.


++

인간의 위대함은

그가 다리(bridge)일 뿐

목적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인간이 사랑스러울 수 있는 것은

그가 건너가는 존재이며

몰라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한다


상처를 입어도

그 영혼의 깊이를 잃지 않으며

작은 체험만으로도

멸망할 수 있는 자를


그런 자는 이렇게 하여

즐거이 다리를 건너간다 


- 니체,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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