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의 지원으로 올해 초부터 글쓰기 강연을 진행하게 되었다.
호기롭게 제안했지만 확신이 있지 않았다. 문예 창작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전문 작가로 등단한 이력도 없었으니까. 그저 글을 좋아했고, 수년간 글쓰기 수업을 찾아다녔으며, 종국에는 에디터 양성 과정을 수료하고 출판 편집자를 준비했던 경험이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해본 무언가를 누군가는 간절히 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이라는 소통방식을 조금이라도 아는 내가,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하자고 소박한 목표를 가졌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첫강의를 시작했다.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버벅거리는 멘트에 진땀을 빼며 생애 처음으로 강사 데뷔를 한 것이다.
처음엔 수강생들의 글을 함께 읽고, 문장 표현을 다듬어주는 역할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다. 하지만 수업이 거듭될수록 깨달았다. 글쓰기라는 활동은 단순한 기술 전달에 머물지 않늗다는 것을. 수강생들은 처음 보는 강사 앞에서 자신만의 내밀한 이야기를 글로 보여주었다. 어릴 적 상처, 가족과의 갈등, 지금 겪고 있는 불안이나 외로움 같은 것들. 말로는 쉽게 꺼낼 수 없는 감정들이 문장을 타고 조심스럽게 흘러나왔다.
그들의 감정이 훼손되지 않는 선에서 문장을 매만졌다. 순서와 배치, 단어와 표현을 살짝 바꿨을 뿐인데 "아~!" 하고 감탄사가 쏟아졌다. 그 반응을 볼 때마다, 나 역시 마음이 일렁였다. 이건 글을 고치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의 감정을 더 분명하게 전달되도록 도와주는 일이구나. 말하자면, 요리는 다 되어 있는데 내가 살짝 조미료를 더해 보는 일이라고 할까.
작은 조정이 누군가에게 큰 울림이 된다는 걸 알게 됐다. "글쓰기가 이렇게 재밌는 줄 몰랐어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썼어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오히려 내가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다.
내 수업의 목표는 '브런치 스토리'에 작가로 승인받는 것이였다.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수강생 관점에서 부담 없이 도전해 볼 수 있는 현실적인 목표. 그런데 놀랍게도 몇몇 수강생이 정말로 브런치 작가로 승인을 받았다. '이게 진짜 되네?', '내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르친 건 아니었구나'. 나 자신도 어느새 단단해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안고 산다. 말로 꺼내기엔 너무 조심스럽고, 누군가에게 털어 놓기엔 마음이 준비되지 않은 이야기들. 상담이라는 형식 안에서는 오히려 무게 때문에 망설이게 되는 입술이 글에서는 활짝 열렸다. 덕분에 예상하지 못한 장면들이 많았다. 그저 문장을 조금 다듬어주었을 뿐인데, 그 글이 사람에게 새로운 감정의 통로가 되어 주었다. 그런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내가 참 의미있는 일을 하고 있구나, 입꼬리가 올라갔다.
어릴 적 꿈은 작가나 편집자가 되는 것이었다. 직접 쓰고 다듬고 누군가의 글을 빛나게 만드는 일. 하지만 지금의 나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꿈을 이어가고 있다. '쓰는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을 곁에서 응원하며, 한 명 한 명의 작가들이 자신의 언어를 찾도록 돕는 일. 말아지 못했던 것을 글로 풀어내고, 그 글을 통해 자기 자신을 다시 만나게 되는 일. 이 모든 것이 이제는 나의 새로운 버킷리스트가 되었다.
언젠가 '치유 글쓰기'라는 이름의 수업을 정식으로 열 수 있으면 좋겠다. 글쓰기를 통해 삶의 어떤 장면에 다시 빛을 비춰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그 때, 조용히 내게 이런 말을 누군가 건네주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다.
"그때 그 글쓰기가 제 마음에 작은 힘이 되어주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