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잡을 수 없어서 즐기기로 했다

by 아트인사이트


‘저장공간이 부족합니다.’


또 시작이다. 갤러리에 들어가 저장된 사진을 쭉 훑는다. 아무리 급한 상황이어도 이때만큼은 꽤 신중해진다. 어떤 사진을, 또는 어떤 동영상을 지워야 추억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용량은 확보할 수 있을까. 순식간에 눈 앞으로 1년 치의 순간이 지나간다.


그렇게 선택된 몇 장의 사진을 휴지통까지 싹 비운다. 여유가 생긴 휴대폰 속 공간을 차지하는 것은 다름 아닌 또 다른 사진이다. 새로운 사진을 찍기 위해 예전 사진을 지우는 이 당연한 듯하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이상한 행위를 몇 달째 반복하다 보면, 결국 항복해야만 하는 순간이 온다.


내가 졌다. 더 이상 지울 수 있는 사진은 없어.



131.png



우리 머릿속에서도 이런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을까. 생각해보면 지난 몇 달간 나를 지독하게 괴롭혔던 저 알림은 꽤 다정한 것이었다. 적어도 어떤 걸 남기고 버릴지, 취사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 멋대로 아무거나 지워 버려서 어떤 게 지워졌는지도 모르는 것 보다는 조금 귀찮은 게 나았다.


그에 비해 우리 뇌는 그리 다정하지는 않은 것 같다. 잊히고 희미해지는 기억들은 내게 아무런 통보도 없이 그렇게 가 버린다. 영원할 것만 같던 감정도, 평생 나를 괴롭힐 것 같던 기억도, 언젠가는 껍데기만 남는 순간이 온다. 받아들이는 것만이 존재할 뿐, 선별의 기회 따윈 주어지지 않는다.


옅어지는 기억을 붙잡을 타이밍은 언제나 어긋난다. 잊고 나서야 잊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는다. '너 어릴 때 좋아하던 그 만화 기억나?'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없을 때와 같이. 부모님께 듣는 어린 시절 이야기, 옛 추억들, 그 시절 내가 느꼈던 감정들. 무엇을 잊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우리는 꽤 오랜 시간을 살아간다. 희미한 불빛이라도 남아 있으면 모를까, 때를 놓친 기억은 무슨 수를 써도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이렇게 중요한 문제가 내 허락도 없이 진행된다는 사실이 놀랍고도 슬프다.



141.jpg


그런 의미에서 기록은, 뇌의 이러한 무작위적 행동에 대한 나름의 대처라고 볼 수 있다. 일종의 ‘백업’ 작업이랄까. 기억의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선택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데 대한 마지막 발악이자, 제발 이 기억을 선택해달라는 간절한 요구이기도 하다. 일기장에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눌러 담고, 오늘 나를 스친 감정들을 붙잡아 감상문을 쓴다. 사진을 찍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기억을 간직하고 싶은 욕심도 부리지 않는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내가 기록해 놓은 딱 그만큼만이라도 끌어안고 살 수 있으면 된다는 마음으로 쓴다. 훗날 그것을 다시 펼쳐 보았을 때, ‘아, 이런 일도 있었지’와 같은 느낌 밖엔 줄 수 없는 무색무취의 글이 되어 버리더라도 우리는 멈추지 않는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머릿속에서 그 기억이 사라지는 순간, 그것은 세상에서 영영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기록은 기억을 붙잡으려는 가장 성실한 방식이다.


하지만 결국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무엇을 ‘기록’할 것인가, 그것까지다. ‘기억’은 언제까지나 나도 모르는 내 속의 몫이다. 성실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록은 기억을 완전히 대신할 수 없었다. 기억은 그때의 감정과 장면이 한꺼번에 밀려올 때 가장 선명해진다. 글을 보고도 그때와 같은 감정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고 장면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건 단지 어떤 기억이 지나간 자리일 뿐이라고 느껴졌다.



151.jpg



그래서 나는 그 기억이 온전히 내 것일 수 있는 시간, 그러니까 순간에 집중하기로 했다. 기록으로는 남기기 힘든 그 선명한 순간을 충만히 즐기는 것이 내가 선택한 최선의 방식이다. 언젠가 잊혀지더라도 그때 내가 거기에 존재했고 그런 감정을 느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게.


이렇게라면 기억들을 조금은 더 잘 보내줄 수 있지 않을까.




박선주.jpg



매거진의 이전글볼륨 안에 담긴 삶, 그 풍요로움의 예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