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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인사이트 Oct 21. 2019

나는 휴학을 했다. 그리고 발견한 것들

휴학, 내 속도를 찾는 시간

 

[휴학] ; 질병, 기타 원인으로 재적한 채 한동안 학교를 쉬는 것.

 

누구에겐 꿈꾸던 여행의 시작일 수도 있고, 열심히 무언가를 준비하는 시간을 의미할 수도 있다. 또 말 그대로 꿈같은 휴식을 의미하는 단어일 수도 있지만, 요즘같이 많은 스펙을 요구하는 시기에 휴학하고 충분히 쉬기만 하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어쩌면 ‘휴학’이라는 단어는 휴학한 사람 만큼이나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휴학이 나에겐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 휴학이 3개월 남은 지금, 천천히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사실 작년 중반까지의 나는, 휴학을 하지 않고 졸업하려고 했다. 세상이 너무나도 빠르게 급변하는 시기여서인지, 조급증이 있어서였는지 빨리 졸업하고 바로 무언가를 시작하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디자인 과를 전공하던 나는 학교생활을 비롯해 학점은 물론이고 꽤 착실하게 나만의 디자인 실력을 조금씩 키워 왔기 때문에 욕심도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작년 2학기, 사람 일은 정말 한 치 앞도 모른다는 말을 체감했다. 수명이 단축된다고 느낄 만큼 밤을 새워가며 작업하고 회사에서 일을 하고, 학교에 다니며 과제를 하던 와중, 학업을 도중에 그만둬야 할 만한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가족이 아팠고, 내가 바로 집으로 내려가 가족을 돌보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다. 왜 우리 가족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싶고, 감당하기 힘들었다.

 

닥치는 일은 막을 수가 없었다. 나는 중도휴학에도 실패했고, 가족에게 모든 정신을 쏟으며 어떻게 사는지도 모르는 채 학기가 끝나버렸다. 그 와중에도 나는, 쉽게 져버리지 못하는 책임감에, 어디에도 쓰지 못할 의리 따위에, 개인으로 진행하는 수업은 모두 놓아버리면서도 팀으로 진행되는 수업의 과제만큼은 성실히 임했다. 함께하던 이들이 내가 없으면 힘들어 할테니까. 미안해서였다. 결국  텅텅 비어버린 학점과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몇 개월을 통으로 날려버린 것 같은 기분에 모든 게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그동안 착실히 해왔던 것들이 무너진 것만 같은 기분에 모든 걸 원망하던 이기적인 나 자신도 싫었다. 사실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는데.

 

누구에겐 이런 이야기가 뭐 한번 미끄러진 일을 가지고 그렇게 힘들어했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내가 하는 작업들이 나에게 가진 전부였다. 또, 가족이 아픈 것도 당연히 걱정되지만 그 와중에도 내 것이 먼저여서, 모든 걸 온전히 뒤로하고 가족을 돌보지 못했던 나 스스로가 참 싫었다. 그렇게 후회와 원망이 섞였던 감정 때문에 그 순간이 더 힘들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지친 상태로 올해 초, 휴학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올해 초에 보냈던 겨울은 한동안 자기연민에 빠졌고, 또 외로웠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이대로 져버릴 수는 없다고 생각했고,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았다. 그렇게 어떤 기업의 인턴을 시작했고, 정말 감사하게도 아트인사이트에서 글을 쓸 수 있게 됐다. 한동안은 회사에 다니고, 그 외에도 외주를 맡고, 작업을 진행하고, 회의를 하고, 또 글을 쓰며, 참 바빠서 다행이었다. 밤을 새우고 회사에 다녔던 그때의 순간과 그 와중에 글을 쓰며 어떻게든 내가 느낀 것들을 표현해내는 시간 덕분에, 그리고 그 모든 게 조금은 강제성도 있어서 오히려 도망치지 않고 버텨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서 동네마다 생기는 마라탕 도장 깨기도 하고, 날씨마다 다른 계절감도 충분히 느낄 수 있어서 참 좋았다. 또, 좋아하는 것들을 다시 시작하고 새로운 취향을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는데, 그중에 하나는 빈티지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밖에 없는 독특한 패턴들을 보면서 시각적으로도 영감을 받고, 기성복들에선 볼 수 없는 덧대어진 세월 감에 편안함을 느끼기도 했다. 이런 작은 내 취향들로 나를 채워가면서 작년 이때쯤엔 할 수 없었던 시험에도 도전해볼 수 있었다.

 

 

이렇게 쭉 돌이켜보니 뒤처진 것 같은 강박에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도 있고, 또 욕심도 생겨서 말이 휴학이지 9개월 동안 제대로 휴가를 못 간 건 아닌가 싶은 아쉬움은 있다.

 

사실 중간중간엔 여행을 다니던 친구들이 아주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휴학을 하면서 하나 알게 된 점이 있는데, 남들이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혹은 남들이 쉰다고 해서 거기에 맞출 필요는 없다는 점, 즉 어떤 시기든 본인의 속도에 따라 정해가면 되는 것이라는 점이다. 쉴 때도 내가 정하고, 열심히 무언가에 몰두해 앞으로 나아갈 때도 내가 정하는 거라고 말이다.

 

내가 지금 쉼이 필요하다면, 남들이 달려가든 아니든 쉬어도 된다. 또 내가 지금 달려야 할 때라고 생각된다면 남들이 쉬더라도 열심히 달려가야 하지 않을까. 학교를 다닐 때는, 어쩌면 작은 사회 안에서 그동안 타인의 속도와 함께하려고 했던 것 같다. 물론 과 특성상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작은 것에도 민감해지기도 하고, 또 내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면 어떤 속도가 될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지금만큼은 내 속도대로 가고 있다고, 생각해본다.
  

그러니 어떤 이유로 휴학을 고민하는 누군가 이 글을 읽고 있다면 휴학은 해 볼 것을 권하지만, 지금은 휴학의 시기가 아니라고 판단된다면 그것도 좋다. 언젠가 쉬어야겠다고 결심할 때가 올 수도 있으니까.

 

 

 


 

 

글 -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고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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