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위문화 스타일의 유산 1_피쉬테일 파카

한 벌의 군복이 시대의 아이콘이 되기까지

by 꿈틀

전쟁의 옷이 거리의 상징이 되기까지

피쉬테일 파카(fishtail parka)는 원래 전쟁의 산물이었다.
1950년대 초, 미군은 혹한의 한국전쟁을 대비해 M-48과 M-51 파카를 개발했다. 뒤로 길게 갈라진 ‘피쉬테일(fishtail)’은 바람을 막기 위해 다리 사이로 끼워 고정할 수 있는 구조적 장치였다. 실용성과 내구성, 방수성—모두 군복의 논리였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한국도 마찬가지로 잉여 군수품, 군복 등이 런던의 서플러스 마켓으로 흘러들었다. 1960년대 초 영국 청년들은 이 낯선 외투를 다른 이유로 주목했다. 바로, 패션의 실용적 완성이었다.

**모즈(Mods)**라 불리던 젊은이들은 도시적 세련됨과 개인적 감각을 추구했다. 이들은 이탈리아 슈트에 스쿠터를 타고 다녔지만, 비와 먼지로부터 값비싼 슈트를 보호할 옷이 필요했다. 그들의 해답이 바로 M-51 파카였다. 기능적이면서도 비주얼적으로 강렬한 이 옷은 모즈의 상징적 갑옷이 되었다. 모즈의 파카는 단순한 외투가 아니라 정체성의 보호막이었다.


모즈의 파카는 단순한 외투가 아니라 정체성의 보호막이었다.


하위문화와 상징 — 보호, 저항, 그리고 정체성

하위문화 연구의 고전인 딕 헵디지(Dick Hebdige)의 『Subculture: The Meaning of Style』(1979)에서
하위문화의 스타일을 “기존 질서에 대한 미학적 저항의 언어”로 읽었다.
영국의 전후 청년들은 패션을 통해 계급 구조와 사회 규범에 맞섰다.

세계 2차 대전 이후 영국 사회는 사회 질서의 대전환을 겪어야 했다. 전통적인 남성 노동자 계층에서

하위문화 스타일이 나타난 배경에는 사회적 불안정 속에서 노동자 계급 공동체가 붕괴되고, 젊은 세대가 새로운 정체성을 찾으려 했기 때문이다. 모즈는 다른 하위문화 스타일과 달리 노동자 계층의 젊은이들이

상류층을 모방하면서, 사회 지배층에 대한 저항의 목소리를 담아낸 스타일이었다.

모즈의 피쉬테일 파카는 ‘보호’와 ‘저항’의 양가적 상징을 동시에 지녔다. 이들에게 피쉬테일 파카는 전쟁의 흔적이 남기 군복이 아니라 자신들의 값비싼 슈트를 감싸는 실용복이었으며, 동시에 그것을 통해 자신만의 도시적 엘리트 감각을 드러내는 수단이었다.


모즈에게 파카는 계급의 경계를 지우는 방패이자, 새로운 미학의 상징이었다.


시대의 통합 감성이 된 피쉬테일 파카

피쉬테일 파카는 단지 군복과 하위문화 스타일의 차용을 넘어

현대 패션의 아이콘이 되었다.
이것을 입는 행위에는 일종의 감정적 기억이 깃들어 있다.
스쿠터를 타던 청춘, 바람을 맞던 거리, 친구들과의 연대—이 모든 기억이
‘파카의 주름’ 속에 스며 있다.

이 감성은 세대를 넘어 반복된다.
1979년 영화 **〈Quadrophenia〉**가 모즈의 삶을 다루며
피쉬테일 파카를 청춘의 상징으로 만들었다면,
2000년대에는 그룹 오아시의 리암 갤러거(Liam Gallagher)의 브랜드 Pretty Green,

해리 스타일스가 착용한 Saint Laurent의 M-51형 파카를 입었고,

국내에서는 배정남, 이동휘 등이 피쉬테일 파카를 착용 후 많은 주목을 받았다.

아메카지 스타일에서도 피쉬테일 파카는 중요한 겨울 아우터로 사랑받는다.
이렇게 피쉬테일은 세대를 초월하여 셀럽과 대중들이 찾는 아이콘이 되었다.



왜 여전히 사람들은 피쉬테일을 찾을까

하위문화는 늘 주류에 흡수되면서도 다시 변종으로 되돌아온다.

피쉬테일 파카는 하위문화 스타일의 감성, 실용성 그리고, 패션으로서의 감성이

중첩되어 있다.

오랜 세월 피쉬테일 파카는 의미를 달리하며 사랑받는 이유는

이 옷이 가진 감성적 에너지, 그리고 시대를 통합하는 능력 때문이다.

피쉬테일 파카는 여전히 ‘보호’의 상징이자,
‘개인의 독립’을 암시하는 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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