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을 주는 스타일을 찾아서_3

스타일의 순환과 영포티 논쟁

by 꿈틀

지난번 '영감을 주는 스타일을 찾아서_2'에서 다룬 글은 “스킨헤드—저항의 스타일이 주류로 흡수되는 과정”의 자연스러운 연장선이자, “패션의 사회학적 진화”입니다.


오늘은 워크웨어 재킷을 소재로 스타일의 순환과 현재 논쟁 중인

영포티 이슈에 대해 연관 지어서 글을 써 보려고 합니다.


노동자의 재킷이 런웨이에 오르기까지

'프렌치 워크재킷, 반 재킷, 그리고 ‘일하는 옷’의 역설'

파리의 작은 작업장, 기름 묻은 손.
한 남자가 푸른 면 재킷의 단추를 채운다.
그 옷은 멋을 내기 위한 게 아니라, 일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블루 드 트라발(bleu de travail)’,
프랑스의 전통적인 워크 재킷, 오늘날 우리가 ‘프렌치 워크재킷’이라 부르는 옷이다.

그런데 지금 이 옷은 더 이상 공장이나 공방의 상징이 아니다.
파리의 셀린느, 런던의 마가렛 하월, 도쿄의 꼼 데 가르송 매장에 neatly 걸려 있다.
노동자의 재킷이 어떻게 런웨이의 클래식이 되었을까.


일 하기 위한 옷의 미학 — “효율로부터 태어난 순수함”

현재 패션에서 이야기되는 워크재킷은 영국과 프랑스에서 각각 다른 용도로 시작되었다.

프랑스 워크재킷이 산업 노동의 목적이었다면, 영국은 농장, 들판에서의 노동 목적으로 개발되었다.

먼저, 프랑스 워크재킷은 19세기말 프랑스 공장, 철도 노동자, 기술자들이 입었던 작업복에서 시작되었으며, '블루 드 트라바이(Bleu de travail)'라고도 불립니다. 목적에 맞게 말 그대로 '블루 컬러 노동복'이었습니다.

프랑스 워크재킷은 튼튼한 캔버스 원단 또는 몰스킨 등을 사용하고 주로 남색 또는 푸른색 컬러를

사용한다. 디자인으로는 간결한 스티치, 도구를 넣기 위한 커다란 포켓. 둥근 칼라, 짧은 소매와 커프스 등이 특징이다.

현대로 넘어와서 이를 패션으로 발전시킨 브랜드로는 단톤(Danton), 르 몽 생 미셸(Le Mont St. Michel), 르 라부어(Le Laboureur), 베트라(Vetra) 등이 있다.


영국의 반 재킷(Barn Jacket)의 '반(barn)'은 '헛간'을 의미하며, 영국 농부들이 농장이나 야외에서 작업할 때 입던 재킷에서 유래했다. 바람과 비를 막는 용도로 주로 사용되었다. 반 재킷과 프랑스의 워크재킷의

가장 큰 차이점은 칼라 디자인과 소재이다. 반 재킷은 마찰이 많은 목 부분을 보호하기 위해 코듀로이 또는 가죽 칼라로 마감하는 경우가 많다. 반 재킷의 소재는 비가 오고 습한 영국 날씨에 적응하기 위해 왁스트 코튼과 퀼팅 소재를 사용하고, 안감엔 보온을 위해 플라넬 소재를 적용하였다. 컬러는 그린, 카키, 브라운 등 자연과 잘 어울리는 것으로 적용하였다.

현대로 넘어와서 브랜드로 성장시킨 대표적인 사례가 바버(Barbour)이다.


프랑스와 영국의 워크재킷 모두 그 기능적 단순함이 시간이 지나면서 ‘정직함’과 ‘진정성’의 상징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화려한 로고나 트렌드가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다시 노동의 옷에서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주류 패션이 워크재킷을 흡수한 이유

워크재킷이 주류 패션으로 편입된 것은 **패션산업의 전략적 ‘리브랜딩’**과 깊은 관련이 있다.

1990년대 이후,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들은 더 이상 특정 계급의 상징으로만 존재할 수 없었다.
패션은 ‘리얼리티’를 원했고, 그 해답은 거리와 작업장의 옷에서 나왔다.
『The Face』, 『i-D』, 『Dazed & Confused』 같은 매거진들이
이런 ‘일상의 스타일’을 쿨함의 코드로 소개했고,
패션 브랜드들은 그 흐름을 재빨리 포착했다.


예를 들어,

Hermès는 2000년대 초 컬렉션에서 프렌치 워크재킷을 고급 실크로 재해석했다.


**A.P.C.**는 공장용 데님을 프렌치 미니멀리즘으로 바꾸며 ‘지적인 워크웨어’라는 개념을 만들어 냈다.


Margaret Howell은 “working-class elegance”를 내세우며 노동복의 절제된 실용미를 럭셔리의 언어로 옮겼다.


즉, 노동복은 더 이상 ‘노동’을 상징하지 않고, ‘진정성(authenticity)’을 상징하게 된 것이다.
패션 브랜드들은 이를 감각적으로 포장해 비즈니스적으로 활용했고,
소비자들은 “가짜보다 진짜를 입고 싶다”는 욕망으로 그 옷을 받아들였다.


대중의 수용 — “불편함에서 익숙함으로”

노동복은 처음엔 ‘패션 비주류’로 여겨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그 비패션적 성격이 오히려 ‘쿨함’의 언어가 되었다.

프랑스의 단톤(Danton)은 1970년대까지 프랑스의 기차, 지하철 공공 기관인

RATP, SNCF에 작업복으로 납품하였다.

2007년 일본의 유통 업체인 보이스 코퍼레이션의 눈에 띄면서

해외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일본에서는 단톤의 디자인에 일본 특유의 감성을

더해 재해석한 워크 재킷이 인기를 얻었다.


Dick Hebdige는 이를 “저항이 체제 안에서 길들여지는 과정”이라 표현했다.

패션은 언제나 이런 순환을 거친다.


낯섦 → 거부 → 모방 → 수용 → 대중화


노동복의 미학도 그 과정을 따라왔다.
한때 땀과 먼지의 상징이었던 워크재킷은,
지금은 메인 패션 시장에서 뿐만 아니라,

빈티지 마켓에서도 가장 선호되는 아이템이 되었다.



스타일의 순환 — 저항의 상징이 클래식이 될 때

패션 산업에서 ‘오리지널’은 언제나 연구와 영감의 대상이 된다.

이때 '오리지널'의 기준은 '진정성과 서사'이다.
땀과 먼지의 거친 노동 환경에서 노동자의 몸을 보호하고 잘 일할 수 있도록

고안된 노동복이 자본의 상징으로 바뀌는 그 순간,
우리는 다시금 묻는다. “이 옷은 누구의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크재킷이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는 그 안에 **‘시간의 무게’와 ‘노동의 서사’**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노동의 옷, 진정성의 옷

결국 패션은 시대의 심리를 비춘다.
지금 우리가 워크재킷을 입는 이유는 노동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리지널을 담고 싶은 욕망,
즉 ‘진정성(authenticity)’을 입고 싶기 때문이다.

패션 브랜드들은 그 욕망을 정확히 이해했고,
그 욕망은 비즈니스로 번역되었다.


“패션은 늘 새로운 옷을 만들어내야 하지만,
결국 새로움은 과거를 이해하고, 이것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담아내는 것이다.”


영포티 논쟁, 또 하나의 순환 속에서”

결국 패션의 역사는 언제나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이 옷은 누구의 것인가?”

노동자의 워크재킷이 셀럽의 옷장에 들어가고,
거리의 스니커즈가 럭셔리 브랜드의 아이콘이 되었듯,
지금의 ‘영포티’ 현상 또한 그 순환의 연장선에 있다.

젊음의 스타일을 차용하는 40대는
세대를 침범하는 것이 아니라,
세대의 언어를 함께 공유하며 새롭게 번역하는 과정에 있다.
스타일은 나이를 기준으로 나뉘지 않는다.
그것은 늘 시대가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일 뿐이다.

영포티에 대한 비난은 어쩌면
스킨헤드를 처음 봤을 때의 불편함,
워크재킷이 패션으로 등장했을 때의 낯섦과 닮아 있다.
그러나 낯섦과 갈등은 언제나 새로운 스타일의 출발점이 된다.

영포티의 논쟁 또한 새로운 스타일이 만들어지기 위한 자양분이 될 것이다.


스타일은 결국 세대의 대립이 아니라,
세대가 서로의 감각을 존중하며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언어다.

각자가 자신의 취향에 맞춰 스타일의 순환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그렇다면 영포티의 옷차림은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시대가 서로를 이해하는 **‘공유의 미학’**이 될 수 있다.
저항은 흡수되고, 낯섦은 일상이 되며,
그 과정에서 스타일은 한 단계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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