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 만난 할머니의 모습
왜소한 몸집의 할머니가 쏘옥 내 품 안에 안겨지던 때가 갑자기 떠올랐다. 내 기억 속 할머니는 언제나 나를 안아줄 정도로 넓고 큰 품을 가지고 있는 어른이었다.
어릴 적 나는 버스에 타서 앉을자리가 없어 서 있으면 할머니는 자리에 앉아 내 이름을 불렀다. 자리는 만석이었고, 나이 든 아저씨 아주머니도 서 있는 버스 안이었다. 부끄러움에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의 나는 한사코 괜찮다고 손사래 치며 계속 뻗치고서 서 있었다.
자기 멋대로 구는 손녀 고집을 꺾으려 했던 건지, 할머니의 수고도 모르고서 무반응으로 서있는 내게 내심 서운했던 건지, 둘 다인 건지는 모르겠으나 할머니는 고래고래 나를 불러댔고 나는 하는 수 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서 할머니의 무릎을 의자 삼아 앉아갔다.
그때는 그게 할머니에게 힘든 일인 줄 몰랐고, 나는 할머니에게 고마워할 줄 몰랐다. 허세라면 허세라 하겠으나 스스로 다 컷다고 여겼던 건지 나는 이런 상황이 부끄러웠다. 마치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 어른이 됐다 싶은 어린 아이의 심리. 다 큰 어른처럼 남들 앞에서 부끄러운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누구보다 곧고 양심적인 할머니는 나를 위해 작은 질서 정도는 어기면서까지 날 보호하고 지키려 했다. 내가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었던 까닭일까. 할머니는 불같이 화를 낼 적에도 내게 아주 긴 연설의 잔소리 끝에는 안쓰러워하며 말없이 묵묵히 밥과 반찬을 차려주고 별일 없다는 듯 안아주거나 먼저 손을 건네주셨다.
죄송하다는 말밖에 할 줄 모르는 나는 혼나면 세상 무너지는 것처럼 느껴서, 웃으면서 애교 부리며 그냥 넘어가 본 적이 없는 고리타분한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이런 나와 함께 살았다 할머니는...
고등학교를 떠나 대학생이 된 나보다 작아진 할머니는 내 손에 기대 지팡이를 집고 다니는 날이 더 많아졌고... 나는 할머니는 원래부터 그랬다고, 나이 들면 그런 거라고 여기며 예사로 생각했었다.
근데 할머니는 그러지 않았던 적이 있었고, 오히려 나보다 더 강하고 힘세고 다부진 모습을 보였던 날이 있었다. 그걸 나 역시 잊어버리고 있었다.
언제나 함께 하던 할머니가 갑자기 이렇게 예고도 없이 자리를 비우는 날이 찾아오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다. 할머니가 병원생활을 한 지 이제 일 년을 바라보고 있는 무렵... 며칠 전 할머니가 그리웠거나 걱정스러웠던 건지 꿈에서 그녀와 예전에 함께 보냈던 시절의 잔상을 다시 마주했다. 그때 그 시절 내가 느꼈던 감정과 할머니의 기억이 순간 반갑게 다시 떠올라 행복했었다.
무뚝뚝하진 않아도 항상 쑥스러워하고 어색해하는 애교 없는 손녀딸. 할머니는 언제부턴가 내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는지 기강을 잡으려던 모습은 어디 가고 장난도 치고 손도 잡아주며 애정표현을 먼저 해주셨다. 나도 그런 할머니를 평생 믿고 따를만한 어른 친구처럼 생각해서 편하게 대했었다. 나를 전적으로 믿어주고 따라주던 할머니가 내 눈에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모를 것이다. (아마 대부분 할머니가 손주를 보며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리라 여겨본다) 내가 죄를 짓더라도 나를 믿어주는 단 한 사람만 있다면 그건 할머니일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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