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꾸 채우기 학습지=교과서 요약정리 학습지
나는 교사가 된 후부터 지금까지 교과서 요약정리 학습지(일명 빵꾸 채우기 학습지)를 거의 사용해본 적이 없다. 내가 학생 때 선생님들이 나눠주시는 그 학습지들이 너무 싫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봐도 학습지는 교과서 문장이랑 다를 바가 없었는데(교과서가 “~하였다.”라면 학습지는 “~함.”이런 식. 학습지에는 (선생님들이 급하게 준비할 수밖에 없으므로) 오타도 많고, 형식에도 통일성이 없어서 마음에 들지 않음), 공부할 거리가 괜히 2배로 늘어난 것 같았다. 혹시나 교과서 이외에 추가된 문장이나 자료가 있는지 샅샅이 비교해야 했다.
교사가 되고서야, 왜 교사들이 그 요약정리 학습지를 사용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첫째, 학습지의 빈칸을 채워 넣음으로써 학생들이 어떻게든 교과서를 읽게끔 만들려는 의도이다. 대다수 학생들은 교과서를 제대로 읽지 않는다. 교과서에 나오는 그림이나 예시 정도만 쓱쓱 보고 지나친다. 물론 교과서가 아이들이 읽기에는 너무 어려운 문장들로 구성되어 있기도 하다. 책 분량의 한계 상 교과서 본문 이외에도 너무 많은 내용들이 압축적으로 들어가 있다. 본문 옆에 작은 글씨로 달린 날개 학습부터, 본문 아래 위로 제시되는 다양한 보충・심화 자료, 그리고 중단원이 끝날 때마다 등장하는 여러 탐구 활동까지. 아이들 입장에서는 체계와 두서가 느껴지지 않을 게다.
둘째, 학생들은 생각보다 요목화를 못한다. 나는 공부를 꽤나 잘하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교과서 정리를 정리하여 스스로의 학습지를 만들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교과서만 던져주었을 때 학습지만큼의 체계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단원명 다음으로는 어떤 기호 체계를 사용해야 하는지. 이를 교사가 된 이후 아이들의 정리 노트를 보고서야 알았다...(ㅠㅠ) 그리고 체계를 잘 잡아주는 인강 교사가 왜 그렇게 아이들로부터 각광받는지도 알게 되었다. 다수 아이들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셋째, 45~50분짜리 수업을 이끌고 가기에는 학습지만큼 좋은 도구가 없다. 선생님한테도 이 시간은 길다... (후) 교과서만 읽는 것과, 교과서를 참고하여 학생들이 빈칸을 채우는 것. 굳이 두 가지만 비교한다면 당연히 후자가 수업하기 여러모로 수월하다.
그렇지만... 나는 이를 따르지 못했다.
첫째 이유는, 내가 싫으면 학생들에게도 싫어하는 것을 줄 수 없다는 고집으로. 왜 싫어했는지는 위에서 이미 언급했다.
둘째, 공부 또한 시행착오를 충분히 거쳐야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선생님의 요약정리 방식이 아닌 각자만의 방식으로, 느리더라도 심지어 그 방식이 틀렸더라도 말이다. 20년 이상 한국스타일의 공부만은 잘했던 본인이 내린 결론은... 한 방에 최상의 공부를 할 수는... 없다, 이다.
셋째, 호흡이 긴 글 읽기 연습은 교과서라는 교재를 활용하여 지속적으로 훈련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과서가 호흡이 긴 글이라고? 라고 반론을 제기할 분들이 많겠지만, 아이들은 생각보다 읽기 훈련이 안 되어 있으며 2문단이 넘어가는 글을 스스로 읽는 것도 버거워하는 학생들이 많다.(ㅠㅠ) 물론 교과서 문장이 완벽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적어도 치열한 논의 끝에 검인정을 받은 검증된 문장이니 교사로서는 그나마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교재에 속한다.
그렇다면 현재 내가 활용하고 있는 학습지는 무엇인가? 각자의 방식으로 교과서 내용을 읽고 요약할 수 있도록 빈 공간을 최대한 많이 준다. 기특하게도 올해 만난 아이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공부해낸다.
이를 악용(?)하여 대충대충 작성하는 학생들도 물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학기 초반에 아이들의 습관(?)을 잘 잡아야 한다. 학습지 채우는 데에 있어 조금의 노력도 보이지 않으면... 확인 도장을 주지 않고, 채워 올 때까지 아이들을 귀찮게 구는 것이다.^^ 다행히도 대부분의 성실한 학생들은 시간을 주면(보통 7분~10분)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교과서 내용(1~2페이지 분량)을 읽고 정리한다. 그리고 이후에는 꼭 모둠의 다른 친구들과 각자 요약한 방식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한다. 학생들은 친구들을 통해 배우는 바가 크다. 그리고 다음 차시 수업을 시작할 때, 지난 시간 요약한 내용을 꼭 물어본다. 제대로 공부했는지 점검하는 차원에서.
물론 나에게는 여전히 딜레마가 존재하고 있다. 몇몇 학생들은 요약정리식 학습지를 받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었고, 그것을 좋아했고, 그리고 요구했다. 시험공부할 때 활용하기 좋다는 거였다. 아이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방식은 애초에 설득의 작업이 필요하다(공부의 다양한 방법에 대해, 요약정리 학습지가 없으므로 시험 범위가 축소된다는 장점 등에 대해). 모든 선생님이 나와 같은 방식으로 수업할 필요가 없다. 아이들은 다양한 수업 방식을 통해 다양한 공부 방법을 배운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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