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가구의 AI 상담, 위로인가 고립의 신호인가
메신저 단체 대화방에 꼬박꼬박 “좋은 말씀”을 공유하는 지인, 주변에 한 명쯤은 있지 않았을까. 노을 지는 풍경이나 꽃밭 같은 친자연적인 사진과 함께 책이나 TV 프로그램에서 인상 깊게 본 문장을 널리 전파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 명언의 출처가 심상치 않다. “AI가 해 준 얘기인데 은근히 공감되더라”는 이야기를 일상 대화에서도, SNS에서도 흔하게 마주칠 수 있다는 것도 이제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AI가 들려주는 명언의 깊이 자체보다 놀라운 것은, 일과 후에 AI와 사적인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1인 가구는 잠들기 전에 누군가와 도란도란 ‘필로우 토크(pillow talk)’를 나누는 대신, 혼자서 차분하게 일기를 쓰거나 책을 읽거나 혹은 콘텐츠를 소비하며 ‘자신과 대화’하고 ‘자신과 노는’ 시간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곤 했다. 이제는 1인 가구도 AI와 ‘필로우 토크’를 나누다 잠드는 것이 낯설지 않다. 얘기 꺼내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사소하게 느껴지는 감정, 아무도 몰랐으면 하는 내밀한 고민을 챗봇에게 털어놓는 것이다. AI와의 대화를 갑자기 끝내야 할 때 미안함을 느낀다는 지인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이제 AI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심리적 상대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고요한 자신의 공간에서 기댈 존재를 찾는 것. 그렇게 말을 거는 대상이 AI라는 것. 이러한 고민상담은 위로일까, 아니면 더 깊은 고립의 신호일까.
AI에게 했던 이야기, 친구에게도 할 수 있나
오늘 회사에서 내가 얼마나 바보 같이 굴었는지, 연인과의 관계에서 얼마나 사소한 걸로 서운했었는지. AI에게 털어놓은 내밀한 고민이나 사소한 감정을, 우리는 과연 친구에게도 쉽게 꺼낼 수 있을까.
AI는 판단하지 않고, 거절하지 않고, 언제나 반응해 준다. 그래서 마음속 깊이 담아두었던 이야기조차 편안하게 풀어낼 수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오해와 긴장, 때로는 거절과 갈등까지 감내해야 한다. AI 앞에서는 그런 리스크가 없지만, 인간관계에서는 반드시 존재한다. 반복적으로 AI에게만 마음을 열다 보면 우리는 점점 실제 관계에서 솔직해지는 훈련을 잊게 된다. 결국 AI 상담은 안전한 공간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진짜 인간관계에서의 용기와 사회적 경험을 대체할 수는 없는 양면성을 지닌다.
AI는 감정을 흉내 내고 공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체온과 반응이 없는 '안전한 환경'일뿐이다. 그런 반응에 익숙해지면서 이미 충분한 위안을 받았다는 착각에 빠지고, 실제 인간관계에서 배우고 성장해야 하는 사회적 기술 습득이 제한될 수 있다.
더 나아가, AI와 보내는 시간이 반복될수록 인간과의 교류가 줄어들고, 정서적·사회적 근육이 약화되는 경향이 생긴다. 친구와의 대화, 동료와의 논쟁, 가족과의 불편한 감정 조율 같은 경험은 더 이상 일상의 일부가 되지 않는다. 이럴 때의 AI는 위로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고립을 은밀히 심화시킬 가능성을 가진, 양면적인 존재인 셈이다.
당연하게도, AI 심리 상담이 전문 상담과 치료를 완전히 대체할 수 없으며, 반복적 습관 교정이나 초기 심리적 지원 등을 위한 ‘1차적인 보조 도구’로 사용할 때 효과적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약국에 간다고 나을 병인지 생각해 보자. 빠르게 감기약을 먹어야 할 때인지, 시간을 내서 병원에 들러야 할 일인지 말이다. AI 상담도 마찬가지다. 일상적인 고민을 다루고 감정을 점검하는 것은 ‘약국에서 약을 먹는’ 수준의 초기 대응에 가깝다. 그러나 전문적인 치료와 진단, 깊은 심리적 개입이 필요한 경우에는 병원에 가야 한다.
일상에서 AI와 고민을 나누는 것을, 마치 기초 체력 운동을 하는 것처럼 여기면 어떨까. 스스로 감정을 정리하고 반복적으로 마음을 점검하는 과정에서 심리적인 기초 체력을 다지도록 돕는 ‘운동 메이트’ 같은 존재가 있다면 참으로 든든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