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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연휴, ‘혼추족’에게는 여유일까 공허일까

긴 시간을 쓰는 법

by 야인 한유화

점심시간 40분을 활용해 사무실 근처 피트니스 센터에서 짧은 근력운동을 하고, 퇴근길에는 영어 학습 앱을 켠다. 시간을 잘게 쪼갠 다음, 마치 작은 퍼즐 조각을 맞추듯 일상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요즘 우리의 ‘갓생’.

그렇게 살던 우리에게 ‘최대 10일’이라는 거대한 단위의 시간이 생겼다. 평소에는 혼자만의 시간을 갈망하지만, 막상 계획 없이 다가오는 연휴에는 당황하거나 공허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평소에는 일상의 작은 틈에서 만족을 찾다가도, 갑작스럽게 주어진 시간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함을 느낄 수 있다. SNS에 휴가를 즐기는 친구들의 사진이 올라오면 자신도 모르게 초조함이 스며들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설레는 ‘여유’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지나친 ‘여백’으로 느껴질 수 있다.


시간을 짧게 쓸 줄 아는 것이 ‘생존의 기술’이라면, 길게 쓸 줄 아는 것은 ‘삶의 기술’이다. 한 권의 책을 완독 하거나, 여행을 다녀오거나,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일처럼 큰 목표를 세우고 장기적으로 소화해 내는 힘. 그런 힘이 부족한 상태라면, 무한한 선택지 속에서 오히려 자기 시간을 설계하기 버거울 수 있다. 시간적 여유가 ‘회복’이 되느냐, ‘고립’이 되느냐. 어떤 1인 가구에게는 어쩌면, 이번 연휴가 ‘혼삶력’을 시험하는 장이 될 수도 있겠다.





점점 다양해지는 ‘명절 경험’


모두가 여행지로 향하는 긴 연휴, 복잡한 교통과 붐비는 관광지 속에서 사람들이 서로 부딪히며 시간을 쓰는 동안, 집에 혼자 남은 사람에게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거실의 소파, 주방의 테이블, 베란다의 작은 화분 하나까지, 평소에는 지나쳤던 공간들이 오롯이 자신의 시간으로 채워진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누구와 경쟁할 필요도 없는 이 공간에서 사람들은 한동안 잃었던 자신만의 리듬을 다시 발견한다.


한적한 동네 골목, 사람이 드문 카페, 평소라면 스쳐 지나쳤을 도서관과 공원은 새로운 활동의 장이 된다. 산책을 하며 도심 속 풍경을 천천히 음미하거나, 카페 한편에 앉아 몰입할 수 있는 글을 쓰고, 평소 시도해보지 못했던 취미를 탐구하는 것도 가능하다. 모두가 ‘휴가’를 즐기러 떠날 때, 남아 있는 사람은 오히려 도시 전체를 자신만의 리조트로 바꾸는 힘을 가지게 된다. 관광지의 혼잡과 집 안의 고요라는 대비 속에서, 혼자 남은 집과 도시의 풍경은 외로움의 공간이 아니라 새로운 자유와 자기 설계의 장으로 변한다.






낯설지만 반가운, 회복의 기회


이번 연휴에는 평소 바쁘게 지내던 생활 패턴에서 벗어나, 여유로운 자기만의 계획을 설계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아침에 느긋하게 책을 읽고, 점심에는 집 근처 산책로를 따라 걷고, 오후에는 OTT로 영화를 보거나 홈파티를 즐긴다. 평소라면 몰입할 시간조차 없었던 글쓰기, 그림 그리기, 요리 실험 같은 활동도 가능하다. 누군가에게는 혼자만의 성찰과 회복의 시간으로,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취향과 경험을 실험하는 낯선 여유가 될 수 있겠다.


언론은 여전히 ‘혼추족’을 ‘외로움’이라는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의 혼추족은 오히려 보란 듯이 새로운 명절 문화를 창출하는 역할을 한다. “혼자 즐기는 명절용 콘텐츠”, “1인 전용 명절 마케팅” 등은, 시장이 이미 혼삶 세대를 별도 소비 주체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연휴 때 뭐 했어?”라는 대답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대답과 후기가 나올 것 같은 이번 명절. 도시에서, 시골에서, 해외에서 벌어질 다채로운 명절 풍경을 기대한다. 평소와 다른 방식으로 명절을 즐기는 혼추족의 시간이, 전통적 문화와 충돌하기보다 오히려 새로운 경험으로 문화를 확장하는 역할을 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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