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 ‘론다니니 피에타', 미완의 미학

by 나오

쓰다 만 글들이 생각보다 많다.

사실 완벽하게 마무리하는 것이 가능한지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나는 미켈란젤로의 마지막 작품, ‘론다니니 피에타’를 자주 떠올리게 된다.


서양미술사 수업을 할 때면 르네상스 3대 거장 중 가장 애착이 가는 미켈란젤로의 작품들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를 하곤 한다.


6살이란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읜 그는 평생에 걸쳐 여러 점의 <피에타> 상을 만들었다. 피에타는 ‘깊은 슬픔’을 뜻하는데, 당시 죽은 예수 그리스도를 성모 마리아가 안고 있는 도상이 많이 제작되었고 이 도상 자체를 피에타라고 불렀다.


종교적 연유도 있었겠지만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기에 너무도 적합한 주제였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마음… 이보다 더한 슬픔이 있을 수 있을까?


어쩌면 그는 무수히 많은 성모자상을 만들어내며 어머니의 빈자리를 채우려 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수많은 피에타들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작품은 바로 성 베드로 대성당의 <피에타>이다.

미켈란젤로가 24살에 완성한 것으로, 서명을 남긴 유일한 작품이다. 실제 사람을 보는 것처럼 옷의 주름 하나까지도 정말 완벽하게 표현되어 있다.


갓 대학에 입학한 후 떠난 여행에서 이 작품을 실제로 관람할 수 있었다. 황금 비례에 따라 완벽하게 제작된 조각상을 보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경이로움을 느꼈다. 반짝이는 대리석의 질감마저 눈물을 머금은 듯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슬픔을 나타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여운이 가장 짙게 남는 작품은 역시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미완의 피에타’다. ‘론다니니 피에타’로 불리는 이 작품은 미켈란젤로가 죽기 며칠 전까지 조각을 했는데, 결국 완성하지 못한 채 남겨졌다.

성모 마리아가 죽은 예수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일반적인 피에타 도상과는 다르게 이 작품은 서 있는 것 같은 아들을 뒤에서 붙잡고 버티는 엄마의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어찌 보면 아들이 엄마를 업고 있는 것 같기도 한데, 두 사람은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한데 엉켜있어 마치 한 덩어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추상 조각 같기도 하다.

죽기 전 시력이 너무 약화되어 촉각에 의지하며 조각을 해 나갔다고 하는데, 미켈란젤로는 어떤 걸 표현하고 싶었던 걸까.

완성하지 ‘못한’ 작품이지만 시간이 더 있었더라도 완성할 수 있었을까? 완성의 개념이 ‘사실적이고 정교한 묘사‘를 이야기하는 거라면 그는 아마 완성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켈란젤로 수업은 그의 미완성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를 짓게 된다.


아이들에게 커다란 육면체의 돌덩이에서 절반쯤 완성된 조각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돌에서 사람이 살아 나오는 것 같다고, 기회가 된다면 꼭 작품을 보면 좋겠다고 말이다.


조각이 제작되는 과정도 보이고, 완성되지 않은 부분이 신비로움을 자아내는데 학생들도 그 아름다움을 꼭 느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한다.



스무 살 여행길에서는 성 베드로 대성당의 <피에타>를 봤었는데, 그로부터 십여 년 후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는 그의 미완성 작품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메인 홀에 전시되어 있는 다비드 상을 보러 가는 길목 양쪽으로 노예상 시리즈가 쭉 놓여 있었는데, 그 사이를 지나며 형용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완벽하게 사실적으로 묘사된 다비드 상보다도 미완성 작품들이 주는 여운이 더 길게 남았던 것 같다.



미켈란젤로의 미완성 작품은 관람자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작품은 돌에서 ’ 발견‘되는 것이라고 했던 그의 신념이 그대로 느껴진다. 돌 안에 갇혀 있던 사람이 해방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끝끝내 완전히 나오지 못하고 묶여있는 느낌도 든다.

정교하고 어느 한 곳 빠짐없이 완벽하게 묘사되어 완성된 다비드, 피에타 상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이들 작품과 미완성작 들은 각각 완벽한 신과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완벽하게 완성된 작품들은 신의 영역에 가깝고, 끝내 완성되지 못한 조각들은 인간의 시간 안에 머문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던 대학 시절에는 미켈란젤로의 완벽한 작품이 좋았다. 하지만 인생의 굴곡을 겪고 어둠의 시간을 보냈던 이후에는 완성되지 못한 작품들이 더 와닿는다. 완벽한 작품을 향해 가는 길목에 있던 미완성작들…


불완전한, 그래서 아름다운


나는 종종 이 문구에 사로잡힌다.


나는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미완성작이 더 좋은 걸까? 그 작품들은 한 치 앞을 모르는 인간의 삶과 닮아있다. 해방되는 동시에 갇혀있다.


신이 있다면 인간을 그렇게 설계한 필연적인 이유가 있지 않을까? 미완은 끝이 없는 것이기에 영원을 뜻하기도 한다.


빠르게 끝을 볼 것인가, 미완으로 영원을 약속할 것인가. 완성에 대한 욕심을 버리면 영원히 간직할 수도 있지 않을까?



미켈란젤로는 조각으로는 젊은 나이에 이미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작품은 너무도 인간적이다. 그래서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