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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예 Nov 20. 2022

노인들과 독서모임 한 후기

청년x노인세대 독서모임 리얼 후기


2030과 6070이 함께 독서모임을 한다면?



2021년 전자책 <틀니와 싹수>를 집필했던 나는 '세대갈등' 키워드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내 안에는 노인을 향한 사랑과 미움이 공존한다. 어린 시절 어머니 대신 할머니께서 나를 키워주셨기 때문에 노인은 나의 부모라 여기는 편이고, 굉장한 애착을 느끼고 있다.


반면에, 1달도 버티지 못하고 관뒀던 첫 직장에서 늙은 상사에게 성희롱을 지독하게 당한 경험이 있고 살다보니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노인들에 대한 미움도 함께 가져버렸다.


그런 내가 우연한 기회에 청년x노인 독서 모임을 발견하게 되고, 새로운 작품활동에 도움이 될만한 영감을 얻기 위해 참여해봤다. 모 대학원생 분의 연구 과제 프로젝트 중 하나였는데 마침 참가비도 없고 독서 모임을 노인이랑?!!! 한다는 게 너무 신기해서 후다닥 신청했다. 과정은 간단했다. 매주 금요일마다 오전 10시, 마포구 서강도서관에 모인다. 지정도서(동화책)을 읽고 두런두런 담소를 나눈다, 끝!


과연... 어땠을까!



등목할 때 저 바께스로 해야 제 맛인거 아시죠



1) 6070도 2030을 경청해준다!

내 또래들 중에 노인들과 대화하길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대체로 노인이라 하면은, 자신의 가족을 제외하고는 사회에서 별로 만날 일이 없고, 만난다해도 마냥 편한 상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노인혐오'라는 단어까지 등장한 요즘 시대에는 왠지 노인이라고 하면 '태극기부대'가 연상되고, 말이 안통한다는 편견이 있기도 하다. 어딘가 괄괄하며, 무섭기도 하고, 꽉 막혀있는 것 같다고 지레짐작하게 된다.


청년: 어르신들께 배워감~
노인: 우리도 배워감~


하지만 실제로 독서모임을 해본 결과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진리의 케바케, 사바사! 사람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고 노인도 마찬가지였다. 우리의 이야기 차례가 올때는 어떤 방해도 하지 않으시고 경청해주셨다. 고개를 끄덕거리거나, 우리의 이야기에 공감을 한다며 긍정적인 리액션을 해주기도 하셨다. 물론 자신과 견해가 다를 때는, 본인의 근거를 더 이야기하긴 하셨으나 서로 열린 대화의 장에서 상대를 먼저 공격하는 노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2) 인생썰 재미있어!

동화책에서 시작된 독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각자의 인생 이야기로까지 번져나갔는데 노인들의 일명 '인생썰' 이야기는 정말로 재미있다. 진짜로!(ㅋㅋㅋ) 제일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이거다.


할아버지는 20  면접을 보기 위해 '미도파 백화점'이라는 곳을 방문했다.당시 백화점은 정말로 ~~~귀한 장소였는데 할아버지도 그날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백화점을 가본 날이었다고 한다. 거기엔 엘레베이터 안내양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엘레베이터도 처음보고, 안내양도 처음 봤다. @_@ 띠용용~ 눈이 휘둥그레진 할아버지! 하지만 한참 고민 끝에 엘레베이터를 포기하고 높은 계단을  발로 걸어 올라는데...  그러셨을까?  이유는!

' 아가씨가 분명히 돈내라고 하겠지?'

라고 생각해서였다. 엘레베이터 안내양을 보고 당연히 공짜로 못탄다고 생각하셨던 ~  후로 할아버지는 엘레베이터가 공짜 시설인걸 알기 전까지 계단만 사용하셨다고.(실체없는 절약)


사소하지만 그래서 더 우습고 기발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노인들의 삶을 통해서 바라보는 과거의 한국과 그 시대 청춘들의 마음을 듣고 나니 무척 재미있는 소설책 1권을 읽은 기분이었다.



3) 노인이라고 부르지마!

놀랐던 사실 하나. 노인들 중에는 '노인(老人)'이라고 불리는 것을 싫어하는 분이 계셨다. 지금 일부러 이 글에서 제가 '노인'이라는 단어를 꾸준히 사용하고 있는데 여러분들은 어떤 느낌이 드나요? 불편하신가요?


나는 나를 늙은 사람이라 정의하지 않습니다
 내가 '노인(老人)' 돼야 합니까?


실제로 참가자 분이 해주신 말이다. 그는 비록 장성한 아들도 있고, 삶을 오래 살기도 했으나 스스로를 노인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여전히 젊고, 뭐든 할 수 있는 사람. 가능성이 있는 주체로 인식했다. 그러나 사회는 '노인'이라는 단어에 너무나 많은 무기력함을 불어넣기에 그 단어로 불리는 것이 싫다고 하셨다. 차라리 시니어로 불러달라고 주장하시기도 했다.


하긴 생각해보면 공감이 어려운 관점은 아니다. 만약 내가 나이를 먹어 70살이 됐을 때, 나는 언제나 젊고 당당하게 살아가고 싶은데 이 세상이 나를 '노인'으로만 규정한다면? 나를 오로지 '늙은 사람'으로만 분류한다면? 주체성을 박탈당하는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나는 그 참가자의 의견을 '그저 불편한 사람'의 의견으로 점철하지는 않을 것이다.



4) Forever Young!



참가자분들 중에는 다양한 취미활동을 하시는 분이 많았다. 그 중에서 내 눈을 사로 잡은 분은 바로 '동화구연자'였다. 우리 모임 지정도서가 늘 동화책이었던 덕에 이 분이 항상 동화책을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읽어주셨다. 정확한 발음과 부드러운 톤, 스토리 호소력까지. 완벽한 동화구연을 공짜로 들을 수 있었던 기회였다. 꽤나 오래 동화구연을 이어오신 분이라 그런지 전문 솜씨가 느껴졌다. 이것이 바로 베테랑!


또 다른 어떤 분은 교육공무원으로 근무하셨지만 '패션'에 열정을 갖고 계셨다. 화려한 양우산과 프릴, 리본이 가득한 공주 원피스를 입고 오셨으며 밥을 먹을 때는 직접 준비한 에이프런을 꺼내어 착용하셨다. 멀리서부터 개성과 기품이 동시에 느껴지는 '패션피플'이셨다. 유튜브 영상을 편집하거나 소설을 집필하시기도 한다더라.


그러니 이 분들은 내 세상에서 존재하던 노인과는 달랐다. 시대가 바뀌며 MZ세대들이 이전과는 다른 패러다임을 가져왔듯 실버세대도 마찬가지다.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자아를 실현하며 본인의 능력을 당당히 표출하는 분들이었다. 뽀레버영! 영원히 젊게 사는 것을 초월하여 영원히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이 참으로 많으셨다.


그럼에도 MZ세대와의 차이점이 있다면 그들에겐 '공동체를 배려하는 마음' 무척 컸다. 개인주의를 주장하면서 자아실현을 꿈꾸는 MZ 달리 실버들은 다소 보수적인 '공동체주의' 마음 밑에 테이블보처럼 깔아놓고  위에 자아실현의 탑을 쌓는다. 그러므로 집단 생활에 있어서 보다  적극적이고 헌신적인 태도를 보여주셨다. , 공동체와 자신의 공존공영을 꾀하는 세대들이었다. 이러한 에티튜드는 MZ세대를 압도할  있는 장점이라고 생각된다.



5) 총평!


시니어들과 함께 독서모임을 하며 느낀 점은 딱 하나다.


세대갈등이 존재한다 해도
우리는 분명 같은 사회에 살고 있다.


그들도 이제 스마트폰을 쓰고, 카카오톡을 이용한다. 심지어 예쁜 폰케이스를 구매하여 '폰꾸' 하기도 한다. 기성세대를 원망하는 청년과, 청년을 한심하게 보는 기성세대가 존재하긴 하지만  반대편에는 서로를 사랑하는  집단도 공존하고 있다. 할머니와 손녀라는 간극에는 어마어마한 시차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같은 사회에 '함께' 살고 있다.


우리는 하나이고 분리돼선 안 된다. 화합하며 살아가면 사자성어 책에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상부상조'를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시니어세대들에게서 어떠한 가능성을 보았다. 그들에게는 힘이 있다. 이 사회가 천대하는 '독방늙은이' 취급을 받기에는 너무나 창창한 미래가 있다. 나이를 초월하는 내리사랑과 치사랑을 모두 느꼈던 독서모임이었다! 아주~ 즐거웠어요! <틀니와 싹수> 소설에서 내가 선택한 결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직접 체득해본 값진 경험이었다.


여러분도 해보시라!^^

(참고로 제가 참가한 모임은 이제 종료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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