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oshi Kon Perfect Blue

Perfect Blue by Satoshi Kon

by 김시연

기존 애니메이션의 틀을 깨는 새로운 표현의 방향성 모든 것은 만화에서 시작되었다

『퍼펙트 블루』의 감독 제안을 받은 이유는, 제작의 모든 과정에 직접 손을 댈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기 때문입니다.

그전에도 애니메이션 작업에는 참여했지만, 각본, 콘티, 연출까지 전부 담당한 적은 없었거든요.

하지만 음향 관계나 더빙 같은 것은 감독의 일인데도 저는 관여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부분까지 포함해 모든 과정을 한번 경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이것도 해보고 싶고 저것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의 출발점은 제가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원래 저는 그림을 그리는 걸 좋아해서 낙서를 하다가 만화를 그리게 됐고, 그것이 점점 발전하면서 한 편의 이야기를 만드는 형태가 되었습니다.

처음 작품을 완성했을 때는 코단샤(講談社)의 “모닝” 상을 노리고 진지하게 작업했었고, 그 이후에는 취미가 아니라 직업으로 만화를 그리게 되었죠.

하지만 어느 정도 그리다 보니 이야기를 만드는 방법이나 연출 능력이 부족하다는 걸 느끼게 됐습니다.

그때 도움을 준 것이 바로 영화였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이야기의 전개 방식이나 연출 방법을 흡수했고, 그것을 종이 위의 만화 작업에 반영하려고 했습니다.

제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Katsuhiro Otomo의 『童夢(동몽)』과 『AKIRA』의 영향이 컸습니다.

특히 『동몽』을 좋아했어요. 만화 안에서 영화 같은 표현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연재만화 같은 형식에는 별로 흥미가 없었습니다.

어느 정도 결말이 정해진 상태에서, 그 안에서 피드백을 받으며 장면을 만들고 긴장감을 조절하는 방식,

즉 전체가 완결된 구조 속에서 생각하는 방식이 제 성향에 맞았습니다.


실사에서 찾은 시나리오·구성·연출

고등학생 시절에는 Gundam 같은 작품이나 Hayao Miyazaki의 애니메이션을 많이 봤고,

만화 단행본도 많이 샀습니다.

하지만 대학교에 들어간 이후에는 거의 실사 영화만 보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비디오로 보는 일이 많았고, 만화를 그릴 때 참고하기 위해서 시나리오, 구성, 연출 같은 것들을 테마를 가지고 분석하면서 보려고 했습니다.

영향받은 감독이 특별히 한 사람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때그때 자신에게 끌리는 요소를 조금씩 흡수해 왔다고 할 수 있겠죠

예를 들어 Akira Kurosawa 감독의 구성은 굉장히 치밀하고 이해하기 쉽습니다.

보고 바로 흉내 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구성으로 영화를 만든다는 점에서 큰 공부가 됐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쿠로사와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조금 과장일지도 모르겠네요. (웃음)

오히려 작품적으로 자극을 받은 것은 테리 길리엄 같은 감독입니다.

Brazil이나 The Adventures of Baron Munchausen 같은 작품을 특히 좋아합니다.

판타지이긴 하지만 이야기 전개가 굉장히 변칙적이고,

평범한 편집 방식이 아니라 전혀 다른 장소로 갑자기 무대가 옮겨가면서 선명하게 주제를 드러내는 방식이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연결의 재미 ― 만화의 칸 분할이 가진 묘미

만화를 그리면서 특히 재미있다고 느낀 것은 구성도 그렇지만 연출로서의 칸 분할이었습니다.

한 페이지 안에서도 여러 장면이 이어지고, 페이지를 넘기면 다음 장면이 시작되고 마지막 컷에서 결말이 나오는 흐름이 있습니다.


컷의 연결 방식, 즉 구성과 연출의 위치에 따라 독자의 시선을 유도하는 방법을 항상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장면에서 사람이 떨어지는 동작을 표현한다면 위쪽 컷에서 그 동작을 시작하고, 대각선 아래쪽에 다음 컷을 배치해 자연스럽게 시선이 이동하도록 합니다.

이런 식으로 독자의 시선을 조절하는 것이 만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설정에 대한 집착에서 레이아웃, 그리고 컷 설계로

제가 애니메이션과 처음 본격적으로 관계를 맺게 된 것은 老人Z의 미술 설정 작업이었습니다.

설정 작업은 만화가 경험만으로도 어느 정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에서는 등장하는 방이나 가게 같은 공간, 생활의 흔적 같은 것까지 전부 설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 그려줄 사람이 필요하다”

고 했고, 제가 맡게 됐습니다.

설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순히 그 물건이 거기에 있다는 것이 아니라 왜 그 물건이 거기에 있는가라는 ‘과거의 흔적’입니다.


예를 들어 더러운 아파트가 나온다면 그 방에는 이전에 살던 사람의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벽에 붙어 있던 포스터 자국이 남아 있다든가.


처음에는 설정만 맡았지만 모든 컷에 설정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고 차라리 레이아웃 단계에서 직접 그리는 편이 빠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게 제가 애니메이션 작업에 빠지게 된 계기였습니다.

레이아웃을 만들려면 인물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이해해야 하고 그 움직임이 컷 안에서 어떻게 이어지는지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 컷에서 이 물체가 이렇게 움직이고 다음 컷에서 이렇게 이어진다” 같은 시간의 흐름을 계산하는 작업이 중요해졌습니다.


컷 편집에 대해

『퍼펙트 블루』는 컷의 연결이 매우 강조된 작품입니다.

특히 후반으로 갈수록 컷의 연결이 점점 더 복잡해집니다.

예를 들어 초반의 콘서트 장면과 주인공 미마의 일상 장면이 병렬 구조처럼 배치되어 있습니다.


시나리오 ― 기초 공사로서의 중요성

처음 올라온 플롯에 큰 위화감은 없었지만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계속 이야기했습니다.


기본 소재는 이미 있었기 때문에 재배치 작업에 가까웠습니다.

한 번 완성된 시나리오를 거의 전부 다시 읽어보고

구성을 다시 점검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숨어 있거나 복선이 자연스럽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당신, 누구?”라는 드라마 속 대사는 처음에는 별 의미 없는 대사였지만 반복 사용되면서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회의는 보통 5~6시간 정도 이어졌습니다.

서로 영화 이야기를 하면서 과거 영화의 장면이나 컷 이야기가 공통 언어가 되어

대화가 점점 깊어졌습니다.

현실과 꿈, 그리고 극중극 구조는 이미 시나리오 단계에서 상당히 완성되어 있었습니다.


콘티 작업은 정말 즐거웠다

콘티 작업은 고민할 일이 거의 없을 정도로 굉장히 즐거운 작업이었습니다.

시나리오 2차, 3차 회의 단계에서 이미 장면의 핵심 이미지가 많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다만 처음에는 TV용 작품의 감각으로 만들다가 극장용 작품이 되어버려서 약 100컷 정도를 삭제해야 했습니다.

삭제된 컷 대부분은 시간의 흐름을 점진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미마의 불안이 점점 커지는 부분처럼 ‘조금씩 변하는 느낌”을 표현하는 장면들입니다.

하지만 영화의 길이를 맞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잘라야 했습니다.


애니메이션의 정형화된 표현을 깨는 컷 연결

시나리오와 연출은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컷 연출도 시나리오 단계에서 이미 생각합니다.


정신적 혼란이나 기억의 뒤섞임 같은 것을 표현하기 위해 액션 컷을 전혀 다른 장면 연결에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콘서트 장면과 미마의 일상 장면을 단순한 대비가 아니라 그녀 안에서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처럼 병렬로 연결했습니다.


또한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더 비정상적인 컷 연결을 사용했습니다.

애니메이션에는 정형화된 표현이 너무 많습니다.

예를 들어 회상 장면이면 화면이 흐려지거나

커피 컵에서 소용돌이가 생기거나 눈 클로즈업이 나오거나 하는 식이죠.

그런 클리셰는 재미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컷이 바뀌어도 관객이 바로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편집이 더 흥미롭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방식은 연극의 영향도 받았습니다.

연극에서는 컷이 없기 때문에 조명 변화나 배우의 움직임으로 장면이 전환됩니다. 그 방식이 흥미로웠습니다.


현실감을 희석시키는 시각적 키워드

이 영화의 대부분 장면은 실내입니다. 미마의 방, 스토커의 방, 촬영 스튜디오 등입니다.

미마의 방에는 세 개의 모니터가 있습니다. TV와 컴퓨터, 그리고 또 하나의 화면입니다.

모니터 안에서 보이는 미마의 모습과 실제 미마의 모습이 겹치도록 설계했습니다.


이것은 모든 사건이 화면 속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연출이었습니다.


색채 설계

타이틀에서는 파란색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빨간색을 상징색으로 사용했습니다.

빨간색은 생리적인 불안감이나 도망칠 수 없는 공포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미마의 의상도 빨간색입니다.

클라이맥스 장면에서는 미마가 쫓기는 동안 앵글을 계속 바꾸면서 현기증 같은 감각을 만들었습니다.


해외에서의 평가와 애니메이션의 위치

이 작품은 일본 아이돌 문화를 소재로 하고 있기 때문에 외국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외국에서는

폐쇄적인 문화의 이야기라는 점이 흥미롭다고 평가했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 문화는 상당히 특수합니다.

로봇이 나오고 화려한 전투가 있으면

해외에서도 쉽게 이해됩니다.

하지만 『퍼펙트 블루』는 그런 방식이 아니라

영화적인 리얼리티를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하려는 작품입니다. 굳이 “현실적인 그림”을 그리려고 한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필요한 리얼리티를 사용한 것입니다.


앞으로도 애니메이션을 계속 만들고 싶습니다.

『퍼펙트 블루』에서 배운 것과 아직 부족한 부분을 정리하고 다시 도전하고 싶습니다.


흥미로운 이미지만 있다면 어떤 매체에서도 표현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여전히 애니메이션에 대한 흥미가 매우 큽니다.


(1998년 9월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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