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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렉처 ARTLECTURE Feb 13. 2019

모두를 위한 예술을 꿈꾸다

키스 해링 : 모두를 위한 예술을 꿈꾸다 – 여전히 화합과 공존이 필요해

올해 초에 열리는 세가지 블록퍼스터 전시를 기반으로 앞으로 1~3부작으로 기고될 예정입니다.

모더니즘-아방가르드-포스트모더니즘 순으로 이어지는 전시를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1월: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리는 피카소와 큐비즘 전, 소개: https://artlecture.com/project/2167

2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는 마르셀 뒤샹 특별전, 소개:  https://artlecture.com/project/2062

3월: DDP에서 열리는 키스 해링전. 소개: https://artlecture.com/project/1655



전편보기:https://artlecture.com/article/509






키스 해링 : 모두를 위한 예술을 꿈꾸다 – 여전히 화합과 공존이 필요해



*모더니즘-네오다다-포스트모더니즘

여전히 동시대의 감상자들에게 모더니즘 말기 시기의 작품들은 당혹감을 자아낸다. 그들의 의도는 아방가르드와 거리를 두는 예술을 위한 예술과 심미성에 치중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동시대의 감상자들이 회화에 기대하는 '재현'이라는 가치 때문에, 대상이 부재한 당혹감을 느끼곤 한다. 액션 페인팅으로 유명한 잭슨 폴록이나 색면 회화로 유명한 로스코의 작품들에 붙여지는, 무제라는 제목 때문에 지칭하는 바가 없는 당혹감, 혹은 제목으로 이름 붙여진 대상이 부재하여 생겨나는 일련의 당혹감이 이에 대표적인 예시 아닐까. 이렇게 모더니즘 말기시대의 미술은 '예술을 위한 예술'을 천명하다 현실로부터, 그리고 감상자들로부터도 멀어지게 되었다. 이에 대한 반동으로 네오 다다로 이름 붙여진, 다다이즘과 뒤샹의 정신을 다시금 불러오는 50년대의 예술가들은 사회와 예술을, 그리고 감상자와 예술을 다시금 매개하려 하였다. 예술과 감상자 간의 고조된 분열을 다시금 봉합시키고자 한 것으로, 이러한 네오 다다는 이후에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이름 붙여져 발전된다. 또한 네오 다다의 기수들은 이러한 네오 다다 및 포스트모더니즘에서 가장 중추적인 사조인 팝아트의 기수이기도 했다.



*팝아트

팝아트야 말로 그 이름에서부터 현실과 감상자를 예술과 다시금 매개하려는 기수들의 정신과 가장 잘 어울린다. Popular, 즉 대중적이라는 단어에서 그 사조의 이름을 따온 만큼, 그간의 모더니즘에 의해 상업적이랄지, 키치적이라거나, 경박하다며 평가된 대중문화를 순수 예술(fine arts)의 영역으로 들여오며 모든 바가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던 뒤샹의 정신을 되새긴다. 더불어 키치의 정신, 대중적이고 조악한 취향을 가졌으며 그저 통속적으로 유포될 수 있는 바에 관심 가졌고, 이러한 키치야 말로 무한히 멀어지고 있던 예술과 감상자 간의 거리를 좁힐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팝아트의 기수들은 키치적인 정신을 그들의 예술의 정수로 삼았다. 그래서 그간 순수 예술의 영역에서 폄하되어 온 스타와 같은 셀럽들과 같은 대중문화의 이미지들, 카툰 및 애니메이션의 이미지들, 그리고 뒤샹의 정신에 다름 아닌 친근한 공산품들의 이미지를 적극 활용하여, 대중친화적인 예술을 펼쳐냈다.


더욱이 벤야민이 대중예술을 옹호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개념인 '아우라의 파괴'를 적극 활용한다. 원본성을 갖는 현존하는 예술은 그 유일무이한 희소성을 가진 작품이라는, 그 아우라에 압도되어 온전한 집중이 불과하다고 보았다. 벤야민은 무한복제시대의 예술이야말로, 무한복제를 통해서 예술작품으로부터 아우라가 상실되고 작품에 진정으로 근접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아우라의 파괴는 사진 및 영화라는 매체에서도 보여 지지만, 팝아트의 기수들에서도 공통적으로 포착되는 바다. 그들이 적극적으로 수용한 매체가 사진과 영화이기도 하며, 무한복제시대에 걸맞게 무한히 복제되는 매체를 선택하여 대중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보다 친숙하게, 그리고 용이하게 감상하고 구입할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키스 해링

당대 유명인들의 사진을 실크스크린으로 프린팅해내거나, 공산품들의 이미지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온 앤디 워홀, 그리고 당대의 카툰을 예술 영역으로 편입해온 리히텐슈타인과 함께, 키스 해링은 가장 성공적인 팝아티스트들 중 하나이다. 1958년 태생한 키스 해링은 50~60년대를 바람 잡은 팝 아티스트들에 비하면, 70년대부터 창작활동을 시작하고 주목받아, 팝아트의 후기시기를 빛내는 작가라 할 수 있다. 50~60년대의 팝아티스트들은 라우센버그의 방법론에 주목하여 오브제에 주목하거나, 무한히 복제될 수 있는 가능성에 주목하고, 키스 해링도 이 같은 방법론을 계승했다. 단순화되고 직관적인 인물의 형상과, 이 형상을 가득 채우는 화려한 원색에서 기인하는 단순성을 통해, 캔버스 바깥을 넘어 여러 매체를 통해 확장되고 배포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허나 키스 해링은 이러한 캔버스 바깥, 프레임 바깥에 더욱 주목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캔버스는 하얗고 네모난 화폭이 아닌, 거리와 지하철의 벽으로 확장하며 나아갔다. 그림이 그려질 곳이 아닌, 걸려야 마땅할 곳에 그는 드로잉을 시작했고, 이를 통해 대중들과 소통하는 예술가로 거듭나려 했다. 이러한 드로잉들은 훼손되기도 쉬웠고 풍화를 버텨내기도 어려웠지만, 이러한 유한한 속성을 통해서 아우라를 극복해내기도 하였다.


또한 그의 예술 속 주제들은 당대에도 그랬고, 동시대에도 여전히 메워지지 않는 갈등에 다름 아닌 인종 및 성에 대한 고조된 차별을 사랑으로 화합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보다 주제적으로도 친숙한 예술이라 할 수 있으며, 더욱이 삶과 죽음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주제도 탐구하며, 보다 우리 삶을 노래하는 '대중적인 예술가'라 할 수 있다. 대중적인 예술가로서 그는 예술계에서 인정을 받을 법도 했지만, 모더니즘의 영향력이 여전히 잔존하던 시기의 권위자들은 그를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에이즈 판정을 받아 31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였지만,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과 화합에 대한 메시지를 결코 놓지 않았고, 또한 자신의 화풍과 메시지를 결코 굴하지 않으며 우리 삶을 노래하였는데, 어떠한 시련에도 결코 굴하지 않고 대중들의 삶과 현실을 노래한 그의 일대기에서도, 우리는 진정한 팝아트의 정신이 무엇이고 우리 시대에 필요한 예술이란 과연 무엇인지를 진중히 고찰해보게 된다.




*공공예술대중예술

이러한 키스 해링의 일대기를 ddp에서 총체적으로 조망한다. 그가 감상자들에게 친화적인 예술을 펼쳐낸 것처럼, 전시 또한 그러한 친근함을 강조한다. 전시는 결코 감상자들에게 권위적인 태도나 위압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자유분방한 동선 속에서 각자 원하는 감상을 행하고, 사진도 자유롭게 찍을 수 있게 허용하여, 우리 삶에 녹아든 예술이라는 측면, 그리고 우리에게 친근한 예술이라는 측면을 강조한다. 전시를 들여다보면 우선 그가 추구한 공간 및 매체성이 눈에 띤다, 그는 지하철 벽면을 활용한 일련의 공공미술을 펼치기도 하였으며, 앤디 워홀과의 교류 이후에는 보다 상업적인 활동도 활발히 행하였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우리가 포스터 및 앨범아트, 광고 등지에서 손쉽게 접할 수 있다. 이러한 그의 미학은 우리 삶과 결코 결별할 수 없는 인공물로서의 예술의 역할을 강조하고, 이러한 인공물로서 우리 삶을 위하는 예술의 역할을 강조한다.




*만인의 예술

이러한 공간과 매체들을 바탕으로 그의 예술은 전연령층을 대상으로 하고, 감상의 맥락 역시 서구에만 갇히지 않는다. 전연령층을 위하고 그의 예술이 전세계적으로 널리 퍼져 만인의 삶을 위로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의 예술은 원주민 미술, 아프리카 미술, 고대 미술, 동양 미술 등 서구 바깥의 다양한 문화권의 영향력을 다채롭게 흡수해서 발현한다. 또한 전연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그의 미술은 결코 어려워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어린아이에서부터 노인들까지 모든 연령층의 공감과 소통을 자아내기를 바랐다. 그래서 키스 해링의 주요한 주제 중 하나는 곡예이다. 마치 샤갈이 유년기의 추억을 되새김하기 위해서 곡예 및 서커스, 광대들에 주목한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곡예들은 어린 아이들로 하여금 항상 생각하는 풍성한 상상들이 실제로 현현한 것이요, 어른들로 하여금 유년기의 향수에 빠지게끔 만든다. 이러한 곡예들과 더불어 괴물과 같은 기괴한 형상들 또한 주요한 소재가 된다. 메두사 같은 소재들이 등장하곤 하지만, 신화적인 주제랄지 해석 속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저 그 괴물을 만들어낸 자유로운 상상력에 주목하고, 그 대상의 형태에 대한 자유로운 재해석을 선보인다. 그에게서 신화나 설화, 괴물들은 언제나 유희의 대상이요, 열려있는 해석의 대상이다.




*허나 절대적이어야만 하는 것들

그래서 그는 결코 답을 내리지 않는다. 종교에 대한 질문들, 형이상학적인 질문들을 끝없이 내던지더라도 그는 결코 교조적인 대답을 내던지지 않는다. 되돌아오는 질문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할 수 없음뿐이다. 허나 그가 언제나 답을 유보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인류가 비인류로 추락하는 바를 경계한다. 그래서 혐오와 증오, 폭력과 전쟁, 인간을 선행하는 금권주의 등 인류가 비인류로 추락할 법한 바들에 대한 경계는 절대적으로 작품 속에 구축해 놓는다. 그것은 명백한 악이다. 한편 그러한 바들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절대적인 긍정의 가치들을 작품으로 구현해 놓는다. 죽음이라는 유한한 운명 속에서의 탄생이라는 고귀하고 신성하며 숭고한 가치는 가히 절대적이다. 삶의 의미에 대해서는 답을 내리지 않지만, 삶의 고귀함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답을 내리며 개개인의 행복을 열망한다. 이렇게 고귀한 개개의 삶들은 모두 가치 있다. 어떤 인종과 성별, 정체성에 구애받지 않고 말이다. 그래서 그는 인종간, 문화권간, 그리고 성별간의 대화합을 노래한다. 화합이라는 가치 또한 인류를 영위케 하는 절대적인 가치라 할 수 있을까. 이러한 대화합은 개개의 다채롭게 살아있는 인물들이 서로 뒤엉켜있으며 군상을 이루는 형태를 통해서 드러난다. 개인들은 서로를 상호존중하며, 서로 공존하는 자유를 영위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희생되지 않는 개인들 속에서 자연스레 다채롭고 건장한 공동체를 이룩한다.




*화풍

이러한 화합의 가치들은 어떻게 작품 속에서 표현되는가. 그것은 직관성에 다름 아니다. 그는 지하철과 같은 벽화작업을 할 때 에는, 언제나 시간에 쫓기는 빠른 작업속도가 요구되었다. 그래서 그는 단순하고 미니멀한 화풍을 추구한다. 이렇게 빠른 작업이 가능한 미니멀한 화풍 속에서, 드로잉은 곡선을 추구하고, 색채는 원색의 다채로운 조화를 보여준다. 딱딱하고 차가운 직선에 비해 그의 곡선은 부드럽고 포근한 느낌을 자아내며, 또한 배제되는 색 없이 공존과 조화를 이루는 채도 높은 원색들에서 우리는 따스함을 느낄 수 있다. 그의 표현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며 대하는 온화한 태도와, 이 사회에 필요한 화합을 엿볼 수 있다. 또한 그가 창조한 대상들은 언제나 보편적이지 않다. 눈이 세 개가 달려있거나, 팔이 제멋대로 늘어나거나, 성교에 있어서도 대단히 자유로우며, 특정 대상을 모티브로 하더라도 그 대상에게 보편적으로 기대하는 재현을 언제나 엇나간다. 이러한 바는 현실에서 기괴한 것, 기이한 것, 금기되어야 할 것으로 행해지는 소수인종이나 퀴어적인 코드로 읽어낼 수 있다. 해링의 작품 속에서, 언뜻 보기에 그것은 기이하다. 허나 이내 곧 우리는 그 대상의 개성을 존중하게 된다. 그들이 차갑고 딱딱한 화풍으로 우리를 배척하기 보다는, 우리의 긴장을 완화시키는 따스하고 온화한 화풍으로 우리를 보듬기 때문이다. 즉 서로가 서로를 보듬는 화합의 가치야 말로 그의 작품세계에서 언제나 중추적인 테마에 다름 아니다.




 



*정리

정리하며 이렇게 ddp에서 키스 해링의 화합의 예술을 살펴볼 수 있다. 지하철의 벽화미술, 앨범아트, 광고, 포스터 등 그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그의 작품들을 노출시키려 하였다. 그러한 매체들과 친해지는 것이야 말로 대중들과 멀어진 예술의 간극을 다시금 메우는 것이요, 팝아티스트인 그에게서 대중없는 예술이란 결코 생각될 수 없다. 또한 전연령층이 유희할 수 있는 쉬운 테마들과, 다양한 문화권의 미술들을 그이 작품 속에 녹여내어, 전세계적인 화합을 노래한다. 또한 상호공존을 위해서 종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질문들에 쉬이 답 내리진 않더라도, 건전한 공동체의 영위를 위해서 필요한 가치에 다름 아닌 화합은 절대적으로 천명한다. 또한 폭력과 증오와 같은 삶의 영위가 아닌 죽음을 빠르게 촉진시키는 부정적인 가치에 대해서도 절대적으로 규정하여, 이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주제의식과 가치들은 명쾌하고 직관적인 화풍과, 부드러운 곡선의 형태, 다채로운 원색감을 통해서 드러나, 형식을 통해서도 그의 철학을 반영한다.


이렇게 사랑과 화합을 노래하던 팝아티스트가 사망한지 30여년이 다되어간다. 이러한 작금에 그의 미학이 드러나는 구절 하나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나의 드로잉은 삶을 모방하려 하지 않는다. 삶을 창조하기 위해서 삶을 고안해내기 위해 노력한다."


과연 그가 사망한지 30여년이 다되어가는 작금에 우리는 그의 예술을 현실에 반영시키고 있을까. 해링을 위한 태도가 아니라 우리 삶을 위한 삶의 태도, 우리는 그것을 언제나 기억 해야만 한다. 그것이야말로 나의 삶과 너의 삶의 번영, 그리고 공동체의 건장한 영위를 위한 절대적인 가치요, 그러한 예술이야 말로 진정으로 우리 삶을 위하고 노래하는 친근한 대중예술의 목적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아트렉처 에디터_박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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