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에 대한 가설

by 김예린

어릴 때는 작은 일에도 얼굴이 빨개졌다. 틀린 답을 말했을 때, 이름이 불렸는데 대답이 늦었을 때, 모두가 나를 보고 있다고 느껴질 때. 하지만 그런 일은 점점 줄어들었다. 나는 이것이 성숙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어느 날 이런 의문이 들었다. 정말 내가 성장해서 부끄러움이 줄어든 걸까. 아니면 부끄러워질 일을 피하게 된 걸까. 이 질문은 생각보다 불편했다. 왜냐하면 두 번째 가설이 맞다면, 나는 발전한 것이 아니라 단지 안전한 경로로 이동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실험은 간단했다. 일부러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나를 놓아보기로 했다. 회의에서 먼저 의견을 말했다. 확신이 없었지만 말했다. 예상대로 논리는 완벽하지 않았고, 몇 가지 반박이 돌아왔다. 얼굴이 뜨거워졌다. 흥미로운 점은, 그 감각이 예전과 동일했다는 것이다. 심박수가 올라가고, 시야가 좁아지고, 가능한 한 빨리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졌다. 내 몸은 여전히 부끄러움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 집에 돌아와 기록했다.

관찰 결과 1: 부끄러움은 나이가 들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이 생긴다. 왜 어떤 사람들은 부끄러움을 덜 느끼는 것처럼 보일까. 처음에는 그들이 더 자신감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들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라, 부끄러움 이후를 아는 사람들이었다. 즉, 그 감정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것은 중요한 차이다.


부끄러움을 처음 겪는 사람에게 그것은 위기처럼 느껴진다. 사회적 생존이 위협받는 사건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여러 번 겪은 사람에게 그것은 단지 불편한 사건 중 하나일 뿐이다. 나는 이것을 이렇게 정리했다.

관찰 결과 2: 부끄러움의 강도는 경험 횟수와 반비례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부끄러움 자체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이 가진 위협의 의미가 줄어든다.


여기서 흥미로운 역설이 생긴다.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는 방법은 부끄러움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부끄러움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통증에 대한 내성과 비슷하다. 통증을 한 번도 겪지 않은 사람은 작은 상처에도 크게 반응하지만, 여러 번 다쳐본 사람은 어느 정도의 고통을 예상 가능한 범위로 인식한다. 부끄러움도 비슷하다. 그것은 제거해야 할 감정이 아니라, 익숙해질 수 있는 감각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또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게 됐다. 어쩌면 우리가 말하는 '당당한 어른'이란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부끄러움에도 불구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이 정의를 받아들이면, 많은 것이 다시 설명된다. 왜 어떤 사람들은 떨리는 목소리로도 계속 말하는지, 왜 어떤 사람들은 실패 이후에도 다시 시도하는지, 왜 어떤 사람들은 완벽하지 않으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지.


나는 마지막으로 이런 문장을 노트에 적었다.

가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부끄러움이 사라지는 과정이 아니라, 부끄러움이 행동을 멈추게 하지 않게 되는 과정이다.

이 가설이 맞는지 완전히 증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내가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많이 후회한 선택들은 대부분 부끄러워질까 봐 하지 않았던 일들이었다. 반대로, 조금 창피했지만 시도했던 일들은 결과와 상관없이 기억 속에서 덜 후회되는 쪽에 속했다.


이것이 단순한 개인적 경험인지, 아니면 보편적인 경향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하나의 기준이 생겼다. 어떤 선택 앞에서 망설이게 될 때, 나는 이제 이렇게 묻는다. 이 선택이 실패해서 후회할까. 아니면 시도하지 않아서 후회할까. 그리고 더 근본적인 질문도 남는다.


나는 지금 부끄러움을 줄이는 방향으로 살고 있을까. 아니면 후회를 줄이는 방향으로 살고 있을까.


이 둘은 때때로 같은 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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