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흔드는, 최근 개봉 독립영화2

영화 <최초의 기억>

by 조우주

영화 <최초의 기억> (연출 / 각본 안선경 장건재 )

(상영시간 1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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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아니라 풍경 같은 느낌이라 의미를 찾아내기가 좀 힘든 것 같아요.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분명한 것 같은데. 우리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네 모습이 굉장히 절박해 보였어.

연기를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이렇게 보고. 생각하고 궁금해하고 물어봐주고. 그렇게 마음에 둬봐. 그러면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 얘기가 생기지 않을까?

상영시간이 2시간이 넘는 장편 독립영화이다. 영화는 연기 워크숍에 참여한 일곱 명의 배우들로부터 시작된다. 서로를 연기하는 ‘모방 독백’이라는 과제를 통하여 자신이 맡은 상대방의 ‘최초의 기억’을 만들어내야 한다. 타인의 기억을 마주하고, 그 기억을 자신의 감정으로 되살리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하지만 영화는 이 어색함을 서두르지 않는다. 누군가의 말을 천천히 듣고, 그 기억 속 풍경을 더듬으며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그 기억이 타인의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사건이라기보다는 풍경에 가까운 기억들—누런 땅바닥, 먼지가 떠다니는 공기, 고요한 집 안의 냄새—는 인물들의 말과 침묵을 따라 조용히 스며든다.


<최초의 기억>은 연기를 다루지만, 연기 자체를 과시하지 않는다. 대신 말하기 어려운 감정, 설명되지 않는 외로움, 오래된 기다림 같은 것들을 차분히 꺼내놓는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때로는 너무 사소해 보이지만, 그 사소함이 한 사람의 삶과 태도를 어떻게 만들어왔는지를 영화는 집요하게 따라간다.

서로의 기억을 연기하며 배우들은 조금씩 상대의 마음에 다가간다. 누군가는 오랫동안 혼자였던 시간을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두려움과 상실의 순간을 떠올린다. 그 과정에서 연기는 기술이 아니라,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려는 태도에 가깝다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몇몇 장면과 대사는 쉽게 잊히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의 우리가 되기까지, 어떤 기억들이 우리 안에 남아 있는지, 그리고 그 기억을 타인과 나누는 일이 얼마나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을 남기는 영화로, 감정과 기억, 그리고 연기의 본질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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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연기란, 어쩌면 잊혀져 있던 타인과 내 기억 속 풍경을 찾아가는 여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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