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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때

스케이트보드 브랜드 아븐드로트 대표 홍의재 인터뷰

by 아뜨달

홍의재는 늘 세상과 어긋나 있다고 느꼈다. 태어날 때부터 약했던 몸, 작게 들리는 소리, 해외에서의 생활, 그리고 끝내 완벽하기를 강요하는 시선들까지. 그러나 그에게 스케이트보드는 완벽의 시선을 벗어나, 충분히 넘어져도 괜찮고 틀려도 괜찮고 각자의 속도로 달려도 괜찮다는 자유로운 언어로 다가왔다. 바닥을 스치는 각기 다른 진동과 유독 붉게 빛나 끝내 낡은 마음을 위로하고야 마는 저녁노을에서 그는 스스로를 설명하고 사랑할 수 있는 문장을 얻었다.

아븐드로트는 흐린 날 다음 날 유독 붉게 물드는 저녁노을을 뜻하는 독일어다. 홍의재가 붙잡은 그 단어에는 ‘흐려도 내일은 맑다’는 의미를 넘어, 결점과 불완전함은 결핍이 아닌 가능성이라는 외침까지 담겨 있는 듯하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그냥 내가 돼’라는 선언으로 세상과 다시 단단하게 엮이기 시작한다.

우리는 그 확신과 가능성이 어떻게 한 사람의 삶이 되고 또 하나의 문화가 되어 마침내 자신을 사랑할 용기를 만들어냈는지 궁금해졌고, 그 답을 듣기 위해 신촌에서 홍의재를 만났다.



달 아래에서 살아가는 방법


1. 의재 님과 아븐드로트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스케이트보드를 11년째 타고 있는 청각장애인 스케이터이자, 브랜드 아븐드로트를 만든 창립자이자 대표입니다.



2. 아븐드로트가 독일어로 저녁노을을 의미한다고요. 지금은 흐려도 당신의 다음 날은 맑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계신데, 의재 님 스스로가 이 말을 가장 필요로 했던 순간이 있었다면 언제였나요?

저도 사실 브랜드를 만들면서 처음 알게 된 단어예요. 한국어로는 쉽게 번역하기 어려운 말인데, 모든 저녁노을을 뜻하는 게 아니라 흐린 날 다음 날 유독 붉게 물드는 특별한 노을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딱 요즘 같은 노을이요. 노을이라는 게 전 세계적으로 위로의 상징 같은 느낌이잖아요. 나쁜 일, 짜증 나는 일이 있었어도 집에 가는 길에 노을을 보게 되면 ‘그래도 오늘 하루 잘 넘겼구나’하고 위안이 되기도 하고요. 그런 느낌을 브랜드에 꼭 담고 싶었어요. 실제로 등산을 하시는 분들 사이에서도 아븐드로트를 보면 ‘내일 날씨는 맑겠다’라는 신호로 본다고 하더라고요. 아븐드로트의 로고도 이런 것들로부터 나왔어요. 로고는 북미 원주민의 상징인 ‘호피 핸드’에서 영감을 얻었는데, 우리가 어렸을 때 단순하게 태양을 그리던 방식과도 닮아 있어요. 손과 빛(노을)이 겹치면서 이질감 없이 어울렸고, 위로와 치유의 상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브랜드의 메시지가 저에게 어느 한순간 필요했다기보다는, 제 삶 전반에 늘 필요한 말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칠삭둥이로 태어나 인큐베이터에 오래 있었는데, 어머님 말씀으로는 살 확률이 반반이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영향으로 귀가 들리지 않게 된 게 아닌가 추측하고 있고요. 어릴 때는 몸도 약하고 작아서 늘 소외감을 느꼈고, 남들이 만든 벽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반대편에 서 있다는 느낌이 강했던 것 같아요. ‘왜 나만 이런 삶을 살아야 하나’라는 원망의 기도도 많이 했고, 청각장애를 받아들이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던 것 같아요. 당시엔 지금처럼 배리어프리라는 말과 인식이 거의 없었으니까요.

지금은 ‘그냥 내가 돼’라는 슬로건이지만, 처음에는 ‘결점이 있어도 사랑스럽다’라는 슬로건을 썼거든요. 그런데 결점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첫인상이 강렬하다 보니 장애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부작용이 있었어요. “나는 장애인이 아니니 이 브랜드와는 무관하네” 같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제 어머니조차 그 슬로건은 와닿지 않았다고 하셨고요. 친구도 “메인 슬로건으로 쓰기에는 결점이라는 것도 그렇고 완벽하지 않다는 전제를 주고서 전개하고 있는 게 오히려 완벽에 얽매이는 것 같다”라고 조언해 주더라고요. 브랜딩을 공부하면서 제일 많이 듣는 이야기가 뭔가를 시작할 때, 첫 번째 고객이 내가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내가 필요해서 하는 것들이어야 꾸준히 할 수 있다는 거죠. 그런 것부터 시작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흐려도 내일은 맑다는 메시지는 결국 저 자신에게 가장 먼저 해주고 싶었던 말일지도 모르겠어요.



3. 아븐드로트의 콘텐츠에는 단순한 상품 이상의 정서가 담겨 있는 것 같아요. 콘텐츠를 향유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감각이나 경험을 전달하고 싶으신가요?
Just be myself, 완벽하지 않아도 그냥 내가 돼.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자는 거예요. 한국 사회에는 완벽주의, 나이에 대한 강박, 결혼이나 대기업 취업 같은 획일화된 가치가 강하게 깔려 있잖아요. 그런데 제가 원하는 삶은 이게 아니고, 사람마다 원하는 삶의 모양도 다 다를 거고, 그냥 나답게 살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하게 된 만큼 사람들이 각자의 다름을 그대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경험을 전하고 싶어요. 처음에는 제 개인적인 이야기에 가깝게, 결점이나 신체적인 제약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훨씬 더 보편적인 메시지로 확장됐어요. 학업, 사회적 압박, 개인적인 어려움 등 누구나 겪는 불안과 결핍 속에서도 “괜찮아, 그냥 너답게 살아”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깊이는 조금 얕아졌을지 몰라도 그만큼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포용성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이제는 장애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라 모두가 자기만의 색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경험을 전하는 것이 아븐드로트가 추구하는 감각이에요.



4. 낮에는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일하시고, 퇴근 후에는 아븐드로트 브랜드를 운영하고 계시잖아요. 두 가지의 일을 병행하기 쉽지 않은데 꾸준히 의재님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제가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니까요. 취업은 생계를 위해서 한 일이고, 아븐드로트는 자기 계발이라고 해야 할까요… 저만의 사명 같은 거죠. 브랜드 이전에 저희 스케이트보드팀도 일부러 청각장애인 친구들을 포함해서 꾸리게 된 거거든요. 그중에서도 저 같은 경우는 감사하게도 비교적 잘 들리는 편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어느 정도 비장애인과 청각장애인 양쪽의 경험을 이해할 수 있고, 브랜드라는 방식으로 그 간극을 풀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장애를 직접 경험해 본 당사자가 아니면 쉽게 할 수 없는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이런 이야기를 하기에 이보다 좋은 상황이 있을까 싶기도 해요.

원래 캐나다에서 대학교를 다니다가 휴학을 하고 한국에 돌아와서 살고 있는데, 해외에서 경험했던 접근성의 경험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토론토 대학교에서는 장애인 지원을 담당하는 부서를 위해서 건물이 따로 있어요. 수어 통역, 문자 통역, 접근성 시험장, 휠체어 경사로, 접근성이 필요하지 않으면 제한되는 공간 같은 것들이 되게 체계적으로 갖춰져 있어요. 지원 신청 과정도 어렵지 않았고요. 필요한 서류 몇 장이랑 면담만으로 바로 지원이 제공되는 거예요. 일생의 반을 해외에서 보내면서 겪은 이러한 사회적 경험들을 통해, 이게 필요하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고, 가능하다는 것도 알고 있고, 사람의 인식이 바뀔 수 있다는 것 역시 알고 있는 거죠. 결국 제가 직접 겪은 경험에서 나오는 확신이 아븐드로트를 이어갈 수 있게 해주는 거 같아요.



5. 생명공학을 전공하셨지만 그걸 포기할 만큼 인생에서 보드의 영향이 엄청 커진 거잖아요. 보드를 처음 접했던 캐나다 시절부터 지금까지, 타는 감각이 의재 님의 삶과 생각에 끼친 영향은 어떤가요?

한국에 돌아와서 병원에서 연구원으로 일을 했는데, 연구실이 지하 2층에 있다 보니 햇빛을 거의 보지 못했어요. 아침에 들어가면 점심때 잠깐 30분 나오고 다시 들어갔다가 나오면 이미 밤인 거죠, 사람들도 못 만나고. 그래서 주말마다 보드 타러 나가는 시간이 정말 소중했어요.

보드를 시작하기 전에도 저는 다른 나라의 문화나 언어에 관심이 많았어요. 여러 언어를 배우려 시도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보드를 타면서 그 관심을 더욱 넓힐 수 있었어요. 보드로 인해서 외부적인 활동을 접하게 됐고, 스케이트보드가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패션, 음악, 예술까지 이어지는 하나의 문화라는 걸 알게 된 거죠.

저는 보드가 좋았던 것뿐인데 보드를 타면서 자연스럽게 보드를 타기 편한 신발과 패션으로 관심이 넓어지고, 보드 관련 행사가 많으니까 그때 행사에 오는 밴드의 음악이나, 그래피티 같은 예술에도 감각이 열리고요. 취미로 시작한 보드가 제 삶과 생각을 더 열린 방향으로 이끌어준 것 같아요.



6. 알리, 킥플립, 그라인드처럼 보드에는 서로 다른 기술들이 만나 완성되는 라인이 많습니다. 의재 님의 개인 계정이나 활동들을 보면 함께 일하고 만나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아끼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는데요. 조화롭게 완성되는 보드의 라인처럼, 서로 다른 사람들의 감각과 생각들이 어우러지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 혹은 감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내려놓을 수 있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사람이 주관을 갖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잔에 물이 가득 차 있으면 더 이상 무언가를 담을 수 없는 것처럼, 소통이라는 것도 원하든 원하지 않든 무언가를 주고받는 과정인 만큼 내 생각으로만 가득 차 있으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서로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이 사람의 생각이 나와 다를 수 있다’라는 걸 인지할 수 있는 기반이 ‘내려놓음’인 것 같아요.

그리고 이건 비교적 최근에 깨달았는데, 상대를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게 만들려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는 거예요. 결국 ‘내 생각이 이러하니까, 내 생각대로 움직였으면 좋겠다’라는 것은 상대방을 내가 소유하겠다는 마음이 기저를 이루고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렇게는 결코 어우러질 수 없는 것 같아요. 내 생각을 잠시 비워내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진짜 조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같은 곳에 있어도 닿지 않을 때


7. 완벽하지 못하면 비정상이라는 시선에 꾸준히 저항해 오셨습니다. 그 완벽의 기준에 억압받았거나 특히 크게 다가왔던 경험을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사회적인 억압으로는… 한국은 인서울 대학 진학을 목표로 야자 끝나고 학원 가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분위기잖아요. 저는 부모님 덕에 학원을 다니지 않았는데 그 때문에 저희 부모님은 “왜 애 공부를 안 시키냐, 지금부터 해야 한다”라는 말을 끊임없이 들으셨다고 해요. 그리고 사실 또 한 가지 싫었던 건 왼손잡이라는 이유로 오른손을 강요받았던 거예요. 초등학교 때는 밥 먹을 때도, 필기할 때도 무조건 바른 손인 오른손을 써야 한다며 학교 끝나고도 남아서 필사 연습까지 해야 했어요. 오른손을 사용하는 게 정상이라는 그 시선이, 청각장애를 제외하고, 저를 가장 많이 억압한 것 같아요.



8. 옷이 안 팔리는 것보다 힘들었던 건 “그거 해서 뭐 하려고?”라는 질문이었다고 하셨는데, 이런 말이 의재 님께 어떤 마음을 남겼는지, 그리고 그런 말들을 어떻게 넘어섰는지 궁금합니다.
주변에서 “취업해야 하는 거 아니냐”라는 정말 말을 많이 들었어요. 지금은 줄어들긴 했지만요. (웃음) 아까 원동력 이야기랑 연결되는데, 결국에 제가 하고 싶어서 시작한 거고 표면적으로는 브랜드를 만든 거지만 내면적으로는 제 사명감을 찾아가는 과정이잖아요. 메시지를 만들고 고쳐 나가면서 결국 저 자신에게 필요한 한마디를 찾는 일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남들의 말에 흔들린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처음부터 금전적인 목표를 크게 두고 시작한 게 아니기 때문에 압박감이 없었어요. 완벽하게 시작하는 건 불가능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배우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단순해요. 잘 팔리든 안 팔리든, 누가 뭐라 하든 지금 이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로 충분히 괜찮다는 거죠.



9. 알리라는 기술을 연마할 때 일부러 장애물을 세워놓고 연습하듯, 살아가는 데 있어 이건 꼭 부딪혀봐야겠다, 성장을 위한 장애물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던 혹은 도전했던 순간이 있다면요. 그 과정이 어떤 의미였는지도 궁금합니다.
브랜드를 만든 게 가장 큰 도전이었어요. 사업이나 브랜드 같은 무형적인 것을 만들 때는 결과가 보장이 안 되잖아요. 정해진 답도 없고 가이드라인도 없고요. 진짜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동굴에 제 발로 들어가는 느낌이에요. 하지만 실패하게 되더라도 부딪혀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게 있고, 시행착오 속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게 있잖아요. 제 한계를 시험해 보고 동시에 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더 깊이 확인할 수 있게 해 준 장애물이자 기회였다고 생각해요.



10. 스케이트보드에서 실패와 넘어짐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과정이잖아요. 이를 소통에 적용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의재 님은 소통에서의 넘어짐, 다시 말해 불통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시 시도하시나요?

브랜드를 시작한 지 이제 2년 차인데, 사실 계기가 된 게 바로 소통에서의 실패였어요. 예전에 스케이트보드모임을 6~70명 규모로 운영하면서 방장을 했는데, 소통 문제로 크게 다툰 끝에 자발적으로 팀을 나왔거든요. 코로나 때를 포함해서 3년 동안이나 이어온 자리였는데도요.

저는 사람을 심하다 싶을 정도로 좋아했었어요. 저의 존재 이유를 다른 사람을 만나고 즐겁게 해주는 데에서 찾을 정도로요. 그래서 관계에서 한 번도 넘어지지 않으려다 보니 삐끗한 거죠. 항상 모든 상황이 좋게 끝나면 좋겠고, 싸울 때도 중간에 껴서 제가 억지로 끌어오는 스타일… 되게 피곤한 스타일이었어요. (웃음) 불통의 상황을 없던 일로 하거나 되돌리려고 하니 상황이 더 심각해지더라고요.

그런 과정을 겪다 보니 오해나 불통을 피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오히려 그것이 전혀 없는 상태가 더 불가능하고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넘어지지 않으려 애쓰는 게 아니라, 자존심을 내려놓고 상대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태도인 것 같아요. 그게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11. 넘어져도, 틀려도, 달라도 괜찮다는 스케이트보드의 자유를 일상에서 구현하려면 어떤 변화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그 문화에서 어떤 지점을 가져와야 하는지 의재 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스케이트보드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파크장에서 함께 타지만 각자 너무나도 다르다는 점이에요. 수천 가지 기술이 있지만 사람마다 잘하는 기술이 다 달라요. 누구는 알리나 플립을 잘하고, 또 누구는 기물을 잘 타고요. 같은 시간을 보내도 기술을 익히는 속도와 방식도 다르고 애초에 보드를 대하는 태도도 제각각이에요. 사람들을 만나러 오는 사람, 기술 연마를 목표로 하는 사람, 그냥 달리면서 바람을 느끼는 걸 좋아하는 사람 등 모두 달라요. 그 다름이 인정되는 문화가 스케이트보드의 매력인 것 같아요.

사람도 다 다르잖아요. 키, 몸무게,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 심지어 같은 것을 좋아해도 좋아하는 정도까지 다 다르잖아요. 그래서 기준을 하나로 정해두기보다는 각자의 속도와 성향대로 살아가도 괜찮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무언가 이뤄내야 한다는 성취적 목표보다 자기만족이 우선시되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나 싶어요. 그럼 다양성을 받아들이기가 훨씬 쉬워지겠죠. 그래서 저는 한국에 제일 필요한 말이 “그럴 수도 있지”랑 “뭐 어때”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계속 같은 달 아래 살아가야 하니까


12. 아븐드로트는 자기애, 나에 대한 존중, 사랑에 대해 끊임없이 말하고 있습니다. 의재 님은 본인과 어떻게 소통하는 편인가요?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나만 만족할 수 있다면 내가 나다울 수 있게 되잖아요.

나다움에 있어서 나라는 사람에 대한 자부심은 꼭 필요하다고 봐요.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면 나답게 표현할 수 없잖아요. 만약 제가 늘 저를 의심하고 ‘이게 맞나’ 불평만 한다면 남들이 과연 제 나다움을 존중해 줄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결국 내가 나를 존중하고 자신감을 가져야만 그게 다른 사람에게도 진심으로 전달되는 것 같아요. 오늘 이 인터뷰 자리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아븐드로트를 전개하는 방식에 확신이 없었다면 이 자리에 나와서 제 이야기를 꺼내지도 못했을 거예요. 결국 자기 자신을 믿는 태도가 저와의 대화이자 다른 사람과의 소통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13. 사회의 기준과 틀을 거부하는 것이 단순한 반항을 넘어서 나를 지키는 행위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다움을 강조하는 아븐드로트의 메시지처럼, 나다움을 선언하며 나를 지켰던 의재 님의 일화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브랜드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게 그 예시가 될 것 같아요. 부모님이나 주변에서 늘 같은 이야기를 하셨거든요. “그 나이 먹고 졸업했으면 취업을 해야지, 생활비 벌어서 저축하고 결혼할 생각 해야지.” 그 마음도 이해는 가지만 어차피 브랜드 그만둘 거 아니니까, 오히려 끝까지 해내 보겠다고 결심하게 됐죠.

얘기하다가 방금 떠올랐는데, 브랜드 시작한 지 두 달쯤 됐을 때 한 브랜딩 컨설턴트 분에게 피드백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분이 “이 메시지라면 차라리 배리어프리나 자선사업을 하시지, 왜 스케이트보드를 하냐”라고 하시더라고요. 마지막에는 “저는 비장애인이라 의재 님의 브랜드에 해당하지 않으니 팔로우는 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말까지 들었어요. 정말 기분이 나빴는데 사실 맞는 말이어서 할 말이 없었죠. 그래서 그때부터 적어도 이 사람만큼은 팔로우하게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계속 버텼어요.

그 후 1년 반쯤 지나서 그분에게 DM이 온 거예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라는 슬로건을 쓰던 시기였는데, 커피챗을 하자고 하시더라고요.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나갔는데, 실은 몇 달 전부터 팔로우하고 보고 있었다며 너무 좋다고 칭찬을 해 주시고 2시간 동안 구체적인 피드백까지 해주셨어요. 결국 제가 나다움을 지켜낸 거죠. 스케이트보드를 버리라는 조언을 듣고도 제 고집을 지켜낸 거잖아요. 보드는 저를 설명하는 언어이자 제 정체성이니까요. 끝까지 그걸 브랜드에 담아냈기 때문에, 제 나다움을 지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14. 앞서 청각 장애, 스케이트보드, 펑크 음악 간의 연결점을 찾아내는 일을 하고 싶다고 잠깐 언급해 주셨는데요. 최근에 새롭게 던진 질문이 있는지, 색다른 시도를 구상하고 계신지 궁금해요.

스케이트보드는 언어, 나이, 성별을 초월하는 굉장히 자유로운 문화예요. 예전에 태국에 갔을 때 저는 태국어를 못 하고 현지 보더들은 영어를 못했는데도 사나흘 동안 보드를 타면서 친한 친구가 되었어요. 그때 스케이트보드가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사람을 이어주는 비언어적인 언어라는 걸 느낀 거죠.

펑크 음악도 마찬가지예요. 신체적인 조건이나 사회적 배경 같은 걸 내려놓고 본질적인 나다움을 봐야 한다는, 반사회적인 태도를 담고 있거든요. 사실 공익적인 메시지를 좋게, 착하게만 전달하면 잘 와닿지 않을 때가 많아요. 기억에 남으려면 임팩트가 필요하고요. 스케이트보드랑 펑크 음악을 주제로 삼으면서, 브랜드 이미지 자체가 너무 깔끔하고 고상하면 결이 안 맞잖아요. 초기에는 브랜드 콘텐츠를 전개할 때 존댓말도 쓰고 조심스럽게 접근하려 했지만, 지금은 훨씬 자유롭고 직설적인 색을 찾아가고 있어요.

최근 제가 새롭게 던지는 질문은 바로 이 지점이에요. “모두에게 사랑받기보다 소수라도 진심으로 공감하는 사람들과 깊게 연결되는 게 더 의미 있는 일 아닐까?”라는 거죠. 펑크를 브랜드에 들여오면서 오히려 대중성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됐어요. 이제는 아븐드로트의 메시지와 전개 방식에 진심으로 공감하는 팬들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15. 세상이 조용해도 삶을 충분히 크고 선명하다고 말씀하신 걸 봤어요. 의재 님은 어떤 순간에 그 선명함을 가장 강하게 느끼시나요?

저는 못 듣는 소리가 많아요. 초인종도, 알람도 잘 못 듣고, 휴대폰 음악도 귀에 직접 가져다 대야 들을 수 있고, 차 소리나 매미 소리도 잘 안 들려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제가 삶을 충분히 살지 못하는 건 아니에요. 지나치지 않나 싶을 정도로 섬세해서, 순간적이고 사소한 장면을 놓치지 않고 잘 보는 편이거든요. 이건 사진을 찍을 때 특히 많이 느껴요. 제가 찍은 사진을 보면 사람들이 “그걸 어떻게 그렇게 찍었냐”라는 말을 자주 하거든요. 아무래도 남들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다르기 때문인 것 같아요.

보드 탈 때도 많은 분은 기술이나 높이를 얘기하시지만, 저는 보드에서 전해지는 진동을 가장 좋아해요. 바닥의 질감마다 진동이 다 다른데, 길을 달리다가 맨홀을 지나치거나 표면이 달라질 때 그 변화가 발끝으로 전해지는 순간이 있어요. 그때 왠지 모르겠지만 기분이 좋아져요. 세상은 제게 조용할 수는 있어도, 그 조용함 덕분에 남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부분을 더 잘 느끼고 볼 수 있죠. 그래서 저는 그 나름의 방식으로 충분히 크고 선명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16. 아븐드로트를 통해 사람들이 스스로를 더 사랑하게 되고 서로의 차이를 더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면, 그다음에는 어떤 세상을 꿈꾸시나요?

솔직히 구체적인 그림이 뚜렷하게 떠오르진 않아요.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사람들이 스스로를 더 사랑하게 된다면 지금 한국 사회에 있는 많은 문제가 자연스럽게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거예요. 각자가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더 나아가 서로를 존중할 수 있다면, 우리는 더 행복해지고 마음이 편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며 자연스럽게 상호작용을 하게 된다면,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새로운 시너지와 다양성이 피어날 거예요. 차이를 억지로 맞추려 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전혀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는 거죠.

궁극적으로는 배리어프리가 특별히 마련된 장치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너무나 당연한 세상의 일부가 되었으면 합니다.



17. ‘우리는 모두 달 아래 살아간다’라는 문장처럼, 저마다 다른 조건과 감각으로 살아가지만, 그래도 우리가 함께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순간들이 있는 것 같아요. 의재 님께서는 ‘나도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을 가장 선명하게 느꼈던 순간이 있으신가요?

평소에 늘 그런 감각을 느낀다고 말하긴 어려워요.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거니까…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걸 느낄 때는 오늘 같은 날인 것 같아요. 아븐드로트를 보고서 브랜드의 메시지가 너무 좋다고 말씀해 주시거나 오늘 같이 인터뷰를 요청해 주셔서 서로 이야기를 나눌 때요.

저는 제 삶이 다소 마이너하다고 생각해요. 칠삭둥이로 태어나 청각장애를 갖고, 남들이 흔히 가지 않는 길을 걸어왔으니까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제 삶에 공감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제 이야기를 들어주고 메시지에 공감해 주시는 분들이 계시다는 게 큰 힘이 되어요.

작년 봄에 알리 티셔츠를 출시했을 때 유아 사이즈가 없었는데, 1년 동안 만들어달라고 요청하신 보더 가족이 계셨어요. 1년 동안 방법을 강구하다가, 최근에 직접 기계를 사서 직접 제작해 드렸는데, 주말마다 아빠와 딸이 함께 그 티셔츠를 입고 보드를 타는 모습을 보면 정말 뿌듯해요. 또 보드를 타지 않는 분들 중에서도 우울증을 앓고 있는데 브랜드 메시지에 힘을 얻었다거나, 당뇨를 가진 중국 스케이터 분이 용기를 얻었다는 메시지를 보내주시기도 했어요. 저와 연관이 없는 사람들도 어떤 연결고리로 인해서 이런 이야기를 보내주실 때,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 함께 살아가고 있구나”라는 감각을 선명하게 느끼는 거 같아요.





스케이트보드 위에서 반복되는 실수처럼, 홍의재는 삶에서 다름과 불완전함을 오히려 붙들어 매며 일어서는 방식을 배워왔다. 그 과정에서 그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적어도 나는 나를 더 믿고 사랑해 줄 수 있음을 조금씩 확신하게 되었다.

끊임없이 넘어지고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던 그의 몸짓은 이제 보드를 넘어 일상으로 퍼져가고 있다. 다른 속도와 기술로 달리는 사람들이 서로를 기다려 주는 방식, 실패와 다름이 낙인이 되지 않는 사회. 홍의재가 꿈꾸는 세상은 아마 이런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까.

완전하지 않아도,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는 그의 언어는 자신에게는 버팀목이 되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출발점이 된다. 그 언어가 더 많은 사람들의 삶 속에서 발화될 때 우리는 아마 지금보다 조금 더 넓은 길 위에 함께 서 있을 것이다. 발밑에서 울리는, 각자 다른 진동을 느끼면서.



Interviewee 홍의재


Interview 엄나영

Research 배정아

Edit 엄나영

Photography 김윤이, 배정아

Design 김윤이


© 2025 arttdal. 김윤이, 배정아, 엄나영


우리는 분명 듣고 있는데, 왜 서로에게 닿지 못할까.
〈우리는 모두 달 아래 살아가〉는 아뜨달의 인터뷰 시리즈로, 모두가 같은 달 아래 존재함에도 감각의 위계와 소통의 불균형이 지속되는 현실을 은유합니다. 우리는 ‘불통’을 감각의 부재가 아닌 내면에 자리한 위계의 문제로 바라보며, 그 간극을 드러내고 해체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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