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의 기준
지난 10년 동안 나는 매일이 '쓸모'로 가득 찬 삶을 살았다. 취업에 유리한 공부, 포트폴리오를 채울 경력, 연봉 인상을 위해 높은 평가를 받을 것들로 하루를 채웠다. 이왕 하는 거면 더 나은 결과와 생산성이 높은 것을 선택했다. 30대에 커리어를 위해 '쓸모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에너지와 시간은 철저히 커리어적 성과를 위한 투자였다.
그러나 회사 생활이 10년을 넘어가면서 의문이 생겼다. 성취를 기준으로 나의 삶을 이뤄나가는 것이 정말 맞는 길일까? 여섯 번의 직무를 바꾸고, 다섯 번의 이직을 하며, 매번 안간힘을 써서 얻은 성과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상황과 위치에 따라 전혀 무의미해지는 것을 경험했다. 한 때는 나의 전부였던 것들이 이제는 아무 상관없는 것이 되는 것을 보며, 나는 과연 '쓸모 있는 것'으로 무엇을 얻고자 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 무렵, 장자의 이야기를 접했다. 큰 나무 한그루를 보면서 사람들은 그것이 줄기가 울퉁불퉁하고, 가지는 꼬이고 구부러져있어 쓸모가 없다며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반면 장자는 오히려 그 덕분에 목수의 손길이 닿지 않아 오래 살아남을 수 있고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쉼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은 관점의 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에게 쓸모 있다고 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사람들은 쓸모 있는 것과 가치를 좇느라 고생하지만, 과연 그것이 진정으로 의미 있는 것인가? 그동안 내가 성과를 위해 했던 프로젝트, 발표, 교육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나에게 쓸모가 없어졌다. 반면 한때 쓸모없다고 여겼던 일기 쓰기, 철학 책 읽기, 산책하기 같은 활동들이 오히려 나의 삶을 단단하게 지탱해 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후로 내 삶의 관점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성과와 생산성에 집중했던 나의 우선순위를 '쓸모없어 보이는' 활동들로 채우고 있다. 일주일에 한 권을 목표로 책을 읽기보다, 한 줄을 읽더라도 여운이 남는다면 책을 덮고 산책을 하면서 그 의미를 곱씹는다. 어떤 이유나 의미 없이 하는 활동들이 오히려 나에게 안정감을 주고 삶의 길을 찾는데 도움이 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지금은 오히려 쓸모없어 보이는 것에 눈길을 한번 더 준다. 당장은 의미 없어 보일지라도, 그것이 나에게 어떤 가치와 즐거움을 가져다 줄지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 '쓸모'라는 기준 대신 편견 없이 삶의 가능성을 발견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