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 대한 기대를 낮추기
나는 언제나 모범생 스타일이었다. 항상 무언가를 배우거나, 준비를 하면서 어느 정도 확신이 생기면 그제야 시도했다. 준비가 덜 된 것 같으면 조금 더 배우고, 다음에 도전하면 됐다. 정해진 기한이 있거나, 시험 커트라인 있을 때는 이 방법이 꽤나 잘 먹혀들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모든 것을 나 스스로 결정해야 했다. 이직을 하거나, 글쓰기를 하거나, 새로운 시도를 하려면 무엇을 할지 시작과 타이밍을 온전히 내가 정해야 했다. 준비된 기준점이 없는 자율적인 방식은 범생이 기질을 가진 나에게 너무 어려웠다. 스스로 ‘지금 시작해도 된다’는 확신이 들지 않으니, 많은 기회를 시작하지 못한 채 주저하기만 했다.
왜 이렇게 매번 시작을 망설이게 될까?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결국 나를 붙잡고 있었던 건 나 자신에 대한 기대였다.
내가 시작을 어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는, 스스로에게 실망하게 될까 봐 두려워서다. 나의 모범생 방식 덕에 나름 뭐를 해도 중상의 결과를 얻었다. 이렇게 쌓아온 ‘무엇을 하든 최소 중상은 간다’는 기대치가 오히려 시작을 망설이게 했다. 그래서 무언가를 시작했는데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할까 봐 불안해했다.
그럴 바엔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조금만 더 배우면 잘할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아직도 준비가 덜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모범생에겐, 다른 사람들의 요령을 배우며 준비하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시험에서 떨어지는 것보다, 차라리 준비하면서 시험을 미루는 게 낫다는 공부쟁이의 태도가 오히려 시작을 막는 큰 장애물이었다.
나에 대한 기대가 높은 이유의 내면에는, 아마도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은 욕구 때문일 것이다. 남들이 나에게 늘 좋은 결과를 기대한다고 착각하면서, '아직 준비가 부족하다'는 핑계로 시작을 미뤘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에 얽매여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것을 놓친 적이 얼마나 많았을까? 실상 주위 사람들은 나에 대해 특별한 기대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남을 핑계 삼아 내 불안을 합리화하며 시작을 미루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이제는 이런 이유들에서 벗어나, 조금 더 쉽게 시작해 보려 한다. 스스로에 대한 기대를 조금 내려놓고,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을 덜어 내고 싶다. 결과가 불확실해도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방향이라면 가보는 것이 의미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남의 시선을 덜 신경 쓰며 나만의 길을 가고 싶다.
아직도 시작은 두렵다. 그래도 나를 주저하게 했던 이유들을 하나씩 알아가며, 조금씩 용기를 얻는 것 같다. 내가 바뀌어야, 비로소 내게 필요한 것들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