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물집과 철학, 그리고 새로운 '일의 윤리'
월요일 오후 5시: ‘노동의 현장’에서 터진 작은 물집
일요일, 새벽이슬은 세상의 지혜를 가르치는 ‘지역사회’라는 가장 큰 교실을 발견했다. 하지만 월요일이 되자, 그 ‘교실’은 그녀에게 가장 현실적이고 뼈아픈 시험 무대가 되었다.
새벽이슬은 퇴사 후 경제적 공백을 메우기 위해 화장품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녀의 목표는 단 하나, 칼퇴근하고 야간 대학 강의 출석에 지각하지 않는 것이었다.
"착! 착! 착!"
라인에 서서 쏟아져 나오는 화장품 용기에 캡을 잠그는 단순 반복 작업. 새벽이슬은 하얀 면장갑을 끼고 쉴 새 없이 손을 놀렸다.
점심시간, 모든 작업자가 일제히 손을 멈추고 장갑을 벗었다. 새벽이슬도 장갑을 벗었다. 순간, 손바닥에 느껴지는 뜨거운 통증에 그녀는 숨을 들이켰다.
오른손 엄지 아래 볼록한 부분과 손바닥 전체에 크고 작은 물집이 잡혀 있었다. 그중 가장 큰 물집은 이미 터져 피가 꽤 많이 나와 면장갑 안쪽까지 붉게 물들어 있었다. 까진 살갗이 훤히 드러난 채 따끔거리는 통증이 밀려왔다.
"어이쿠, 새댁! 손이 왜 이래! 피가 이렇게..."
옆 라인에서 일하던 중년의 반장님이 놀라 달려와 그녀의 손을 살폈다. 그의 투박하고 거친 손이 새벽이슬의 상처 입은 손을 조심스레 감쌌다.
"며칠 안 돼서 그래. 피부가 약한가 보네. 잠깐 쉬어요. 당장 의무실로 가요!"
반장님은 그녀를 구내식당 옆 작은 의무실로 데려가 소독하고 능숙하게 밴드를 붙여주었다. 밴드가 붙여진 손을 내려다보는 순간, 새벽이슬은 목이 꽉 막히는 기분을 느꼈다.
중소기업 품질관리로 일할 때, 그녀의 손은 늘 깔끔했지만, 지금은 '일'의 대가가 선명한 상처와 피로 나타났다. 이건 몸으로 새기는 증명이었다.
"새벽이슬 씨, 오늘은 저쪽에서 단상자 접는 일 해요. 그건 손에 무리가 덜 갈 거야. 빨리 퇴근해서 학교 가야지." 반장님이 배려해 주었다.
그의 따뜻한 배려에 참고 있던 서러움이 왈칵 터져 나왔다. 품질관리 경력을 내려놓고, 세상의 지혜를 찾아 나선 '멋진 퇴사'라고 스스로 위로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지? 칼 퇴근 하고 강의 출석 지각 안 하겠다고… 내 손이 이 지경이 되도록…내 배움의 열정이 이렇게 아픈 대가를 치러야 하나.’
터진 물집만큼이나 마음속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서러움이었다. 눈물이 찔끔 새어 나왔지만, 그녀는 재빨리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훔쳤다. 아직 아무도 자신의 다친 손과 서러움을 눈치채지 못했으면 했다.
월요일 저녁 6시 30분: 야간 대학 '사회복지 윤리와 철학' – 인간의 존엄
공장에서 퇴근한 새벽이슬은 곧장 야간 대학 강의실로 향했다. 손바닥의 욱신거림이 마치 '노동의 대가'처럼 느껴졌다. 오른손에 붙은 밴드는 최대한 보이지 않게 감추었다.
오늘 강의는 하필이면 ‘사회복지 윤리와 철학’.
강단에는 그녀의 멘토이자 교회 사모님인 사회복지학과 교수님이 서 있었다. 교수님의 얼굴을 보자마자, 새벽이슬은 또 한 번 울컥했다. 힘든 시기에 늘 자신을 감싸 안아주던 멘토의 존재 자체가 지금의 서러움을 폭발시킬 것만 같았다. 그녀는 눈물을 꾹 참고 고개를 숙여 필기할 준비를 했다.
교수님은 칠판에 '인간 존엄성(Human Dignity)'이라는 단어를 크게 적었다.
"여러분, 사회복지 윤리의 핵심은 인권입니다. 칸트가 말했듯, 인간은 그 자체로 목적이지, 결코 다른 무엇의 수단이 될 수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그 어떤 환경과 조건에서도 존엄한 가치를 지니죠. 하지만 우리 사회는 종종 사람을 '수단'으로 다룹니다."
교수님의 목소리가 단호하게 울렸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도구', '기업의 이익을 위한 부속품', 또는 '대학 입시를 위한 점수 기계'로 말입니다. 사회복지는 이처럼 도구화된 인간을 다시 존엄한 목적으로 세우는 일입니다."
새벽이슬은 밴드가 붙은 자신의 손을 보이지 않게 허벅지 아래로 내렸다.
‘도구… 부속품…’
오늘 공장 라인에서 캡을 잠그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의 손은 분명 '생산의 도구'였다. 하지만 정말 자신이 '목적'이 될 수 없는 존재였을까?
그때, 그녀의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반장님!
피를 보고 놀라 서둘러 치료해 주고, 그녀의 강의 출석 시간을 배려해 업무를 바꿔준 반장님의 모습. 반장님은 그녀를 캡을 잠그는 기계가 아니라, '빨리 퇴근해서 공부해야 하는 동료'로 대했다. 반장님이야말로 '인간의 존엄'을 현장에서 실천한 사람이었다.
새벽이슬은 더 이상 서러움에 눈물을 쏟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밴드 아래로 상처 입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녀는 울지 않았다. 교수님도, 반장님도, 그리고 공장의 누구도 그녀의 깊은 깨달음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의 '새로운 노동의 증거'는 조용히 그녀의 손에 새겨진 채였다.